나무의사 박화식 원장은 드론방제를 위해 소형드론으로 조종 연습을 하고 있다.


흙과 생명을 읽는 사람

30년 공직을 마친 뒤, 그는 다시 숲으로 향했다.
퇴직을 휴식이 아닌 ‘두 번째 현장’으로 바꾼 나무의사 박화식 원장(탑나무병원)은 오늘도 병든 나무의 잎을 살피며 진단서를 쓴다. 전남 나주시 우정로 ‘탑나무병원’이 그의 인생 2막을 연 일터다.
그의 직함은 단순한 ‘방제인’이 아니다. 나무의 생리와 토양, 병충해와 미생물의 언어를 읽는 ‘생태의사’다.
“나무도 사람처럼 아픕니다. 병의 원인을 알아야만 살릴 수 있어요.”
그의 목소리는 흙 냄새와 함께 단단한 확신을 품고 있었다.

"나무의사는 생태의학자"

‘나무의사’라는 직업부터가 궁금했다. 어떤 공부를 해야할까.

“나무의사 시험에는 토양학, 수목병리, 해충학, 농약학, 미생물학, 수목생리 등 여섯 과목을 공부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나무의 인체해부학’을 배우는 셈이죠.”

나무의사 제도는 2023년 법제화됐다. 현재 전국 약 1,700명의 나무의사가 활동 중이며, 호남권에도 100여 명이 일하고 있다. 나주 혁신도시에는 그가 유일하다.
“나무의사 제도는 단순한 방제가 아닙니다. 병든 나무를 진단하고, 원인을 분석해 처방하는 생태의학이에요.”
박 원장은 나무의사 제도의 본질을 이렇게 정의한다.
“공원수, 가로수, 아파트 단지의 나무까지, 모두 전문가의 처방이 필요합니다. 진단서 없이 약을 쓰면 과태료가 부과되죠”

그에겐 대충이란 없다. 인터뷰 도중 미심쩍은 부분에 대해 자료를 보며 설명하고 있다.


이제 나무의사 제도는 도시 생태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장치가 되었다.

그의 주장은 명료하다.
“과거엔 약을 ‘세게’ 써야 효과가 있다고 믿었어요. 하지만 그건 사람으로 치면 과용량 항생제예요. 나무의 생태계와 토양까지 망가뜨리죠. 이제는 병해충의 원인과 환경을 함께 진단해야 합니다.”

나무의 병은 대부분 흙의 병

박 원장은 대학 시절부터 토양학을 전공했다.

“흙은 모든 생명의 출발점입니다. 흙이 병들면 나무도 병들죠. 그래서 나무의사 시험에는 토양학을 중요시합니다.”

그는 병든 나무의 진단 과정에서 흙을 더욱 유심히 살핀다고 했다.
“우선 잎의 색, 수피의 갈라짐, 뿌리의 부패 상태, 가지의 성장 패턴을 면밀히 살핍니다. 저는 현장에서 토양을 채취해 산도와 미생물 활성을 측정합니다. 진단의 70%는 흙이 알려주는 셈이죠.”

어반톡(주) 이형철 대표(오른쪽)가 드론 작동에 대해 묻고 있다.


“나무는 잎의 색과 냄새로 신호를 보냅니다”

최근 그는 드론을 활용한 병해충 방제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그의 방에는 몇 대의 소형 드론이 있었다. 드론 조종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라고 했다. 들판의 농약 살포는 평지여서 상대적으로 쉽지만 산지는 평탄하지 않기 때문에 세심한 조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드론으로 약제를 살포하면 인력 부담이 줄고, 산악지형 접근도 쉬워집니다.
하지만 기술이 만능은 아닙니다. 바람, 온도, 습도 등 많은 변수가 따릅니다. 나무의사는 기술보다 생태 감각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의 책상에는 토양시료와 병든 잎 표본이 있고 벽에는 각종 병든 나무와 기생충 사진, 그리고 울긋불긋한 예쁜 단풍나무 사진들이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

“나무는 말하지 않지만, 잎의 색과 냄새로 신호를 보냅니다.”

박 원장은 자신을 “숲의 통역사”라고 표현한다.
“나무의 병을 이해하려면 인간 중심의 시각을 버려야 합니다. 나무는 우리보다 훨씬 오래 살고, 느리게 변화합니다. 그 속도를 존중해야 진짜 치료가 가능하죠.”

병든 나무를 살리는 것은 사람을 되살리는 일이다. 박화식 원장이 살충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숲을 고치는 일은 사람을 살리는 일”

나무의사라는 직업은 그에게 철학을 선사했다.

“나무는 단순한 식물이 아닙니다. 도시의 폐이자, 사람의 마음을 정화하는 존재죠.
병든 나무를 살리는 건 결국 사람의 삶을 되살리는 일이 됩니다.”

퇴직 후 시작한 나무의사 생활은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꿨다.
“처음엔 쉬려고 했어요. 하지만 밭에 심어둔 나무들을 돌보다 보니 흙이 다시 말을 걸더군요. 그때 알았습니다. 나무는 내 운명이라는 걸.”

그의 하루는 여전히 바쁘다.
공원 가로수 진단, 병해충 시료 분석, 수목관리 교육까지 쉼이 없다.
“나무는 말을 하지 않지만, 언제나 대답을 해줍니다. 그 대답을 듣는 게 제 일이죠. 숲을 살리려면 의학과 예술, 기술과 감성이 함께 가야 해요.”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