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의 완성은 시설물이 아니라 사람이 남기는 기억이에요.”


도시의 가장자리에서 들려오는 작은 움직임이 있다. 시장의 천막이 바람을 품고 펼쳐지는 순간, 오래된 거리는 다시 살아난다. 디자인기업 '두다' 신은주 대표가 설계한 공간들은 조용하지만 강하게 사람을 끌어당긴다. 바뀐 것은 시설이 아니라 흐름이다.

그는 말한다. “디자인은 지역의 맥박을 되살리는 일”이라고. 그의 작업은 오늘도 한 지역의 숨결을 되찾으며, 미래의 길을 준비하고 있다.

버려진 하천 부지에 설치된 곡성 뚝방마켓은 '사람'을 중심에 놓고 설계한 신 대표의 대표작이다. 두다 제공


곡성 뚝방마켓 ― 폐공간에서 지역 플랫폼으로

곡성 뚝방마켓은 신 대표의 철학이 입체적으로 실현된 대표작이다. 처음 현장은 버려진 하천부지였다. 그러나 그는 그 배경에서 사람의 동선과 경제적 흐름을 읽었다.

“눈에 보이는 건 공간이었지만, 제가 본 건 ‘사람이 어떻게 모여들까?’였습니다.”

뚝방마켓은 단순 벼룩시장 조성 사업이 아니었다.
신 대표는 PM 역할을 맡아 사업을 총괄했다.

마켓 브랜드 디자인, 운영 매뉴얼 및 판매자 트레이닝, 주민 참여 기반의 협동조합 설계, 상권·관광·문화 연계 기획, 행사 배너·부스·동선 등 서비스 디자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초기 월 1회 시범 운영은 지역 반응으로 인해 주기적으로 확대되었고, 현재는 매주 토요일 열리는 곡성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좋은 디자인은 지자체 예산이 없어도 유지됩니다. 주민이 운영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게 지속성의 핵심이죠.”

진도의 국가유산 야행에서 신 대표는 지역의 문화정체성을 ‘거리’로 끌어냈다. 두다 제공


진도 국가유산 야행 ― 길 위에서 펼쳐진 지역 문화의 재탄생

진도의 국가유산 야행에서 그는 지역의 문화정체성을 ‘거리’로 끌어냈다.
진도는 국악·민속예술의 본고장이지만 공연장이 아닌 길에서 문화가 살아날 때, 주민과 관광객의 몰입이 극대화될 수 있다고 그는 판단했다.

247명의 명인·명창이 참여한 거대 퍼포먼스는 지역 문화의 재발견이자 관광 콘텐츠 혁신 사례가 됐다.

“문화는 무대 위보다 거리에서 더 자연스럽게 호흡해요.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북소리에 끌려가는 그 순간, 문화는 완전히 살아납니다.”

그는 여기에 지역 도예작가와 협업해 ‘진돗개 에스프레소 잔’을 제작했다.
이는 야행의 상징적 오브제가 되어 문화+상품의 연계를 성공적으로 시현했다.

고흥에서는 아이들의 시각에서, 아이들이 원하는 새로운 놀이터를 만들어냈다. 두다 제공


‘어린이 사용자 참여 디자인’의 정석 ― 고흥 어린이 놀이터

고흥에서는 아이들이 참여한 설계 워크숍을 통해 새로운 놀이터를 만들었다.

“어른이 설계한 놀이터와 아이가 원하는 놀이터는 전혀 달라요. 아이들은 숨을 곳, 모험할 곳, 이야기할 공간을 찾아요.”

아이들과 만든 모형과 의견은 놀이터의 구조와 동선에 직접 반영됐다.
설치 후 이 공간은 지역 가족의 일상 커뮤니티 장소로 빠르게 자리잡았다.

지난 해 광주디자인진흥원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AI 기반 디자인 실험. 신 대표는 2015년에 AI 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해 디자인에 반영해왔다. 두다 제공


AI 기반 디자인 실험 ― ‘문제를 읽는 기술’로의 확장

두다는 AI 적용에서도 선도적이다.
지난 해 광주디자인진흥원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AI 타운 프로젝트는 단순 드로잉 생성이 아니라 문제 해석과 미래 시나리오 분석을 위한 AI 활용을 보여준다.

“AI는 형태를 만드는 도구가 아닙니다. 도시의 패턴, 사람의 이동, 미래의 수요를 읽어내는 ‘분석 도구’죠.”

그는 AI가 기획 단계에서 설계 효율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핵심 기술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영암 한옥비엔날레에 참가한 신 대표(맨 오른쪽)가 관계자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두다 제공


조경·건축·산업디자인의 융합 ― 미래 도시 설계의 새로운 기준

신 대표는 한국 공공디자인·도시정책에서 각 분야의 칸막이가 공간 혁신을 가로막는 실제 문제라고 지적한다.

“공원을 다 만든 후 ‘여기 시설물 좀 넣어주세요’라고 하면 늦습니다. 기획 초반부터 조경·건축·디자인이 같은 테이블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흡연부스 실험 등은 조경과 서비스 디자인, 시설물 디자인이 결합될 때 도시문제 해결력이 높아진다는 사례로 평가된다.

글로벌 전략 ― 두다의 정체성은 ‘디자인 회사’가 아니라 ‘플랫폼’

신 대표는 두다의 미래를 이렇게 정의한다.

“우리는 디자인 회사가 아니라 지역의 문화·산업·기술을 잇는 플랫폼이에요. 기술이든 문화든 연결되면 글로벌 확장도 가능합니다.”

그는 향후 ▲해외 디자인 어워드 출품 ▲자체 디자인 제품의 해외 전개 ▲지역 기반 플랫폼 구축 ▲조경·건축·디자인 연계형 R&D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두다가 디자인한 목포 하당 중계 하수처리장. 동화속 그림같은 건물에서 하수처리장의 느낌은 전혀 없다. 두다 제공


“결국 사람의 기억이 공간을 완성한다”

신 대표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만든 공간에서 사람들이 기억을 만들고, 그 기억이 다시 공간을 바꿉니다. 결국 공간의 완성은 시설물이 아니라 사람이에요.”

그의 디자인은 지역의 삶을 바꾸고, 그 변화는 다시 새로운 디자인의 씨앗이 된다. 두다가 그려낸 길은 이미 많은 지역을 움직였고, 더 큰 무대로 향할 준비를 마쳤다.

신 대표는 기술·문화·산업을 결합해 디자인을 플랫폼으로 확장하려는 전략가에 가깝다.


인터뷰를 마치며...“디자인은 결국 사람이다”

신은주 대표와의 인터뷰는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를 다시 묻는 시간이었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설명할 때 ‘공간’, ‘시설’, ‘예술’이라는 익숙한 언어보다 ‘사람’, ‘흐름’, ‘기억’, ‘지속성’ 같은 단어를 더 자주 사용했다. 이 점에서 이미 그는 전통적 의미의 산업디자이너가 아닌 듯 했다.

그의 디자인은 결과 중심이 아니라 과정 중심이라는 사실이다. 뚝방마켓이 9년간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예쁜 시설물을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에게 권한을 돌려준 구조를 설계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신 대표의 프로젝트는 공공디자인의 형식을 확장하는 동시에, 지역 주민의 주체성과 스스로의 운영 능력을 사업 안으로 끌어들인다.

신 대표는 단지 실험적인 디자이너가 아니다. 그는 지역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기술·문화·산업을 결합해 디자인을 플랫폼으로 확장하려는 전략가에 가깝다.

인터뷰 도중 특히 인상 깊었던 말이 있다.

“디자인의 완성은 시설물이 아니라 사람이 남기는 기억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