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양현 코아람 대표(왼쪽)가 고탄력의 코르크 제품을 이형철 어반톡 대표에서 설명하고 있다.

'술을 한 잔도 못 한다.'

기업하기 어려운 약점이다. 우리 정서상 사업 초기부터 '사람을 얻는 일'을 중시한다. 자본과 기술보다 먼저 '신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회식과 술자리는 공식 회의나 계약서로 얻기 어려운 비언어적인 공간으로 작용한다. 상대의 속내를 확인하고, 감정의 벽을 허무는 도구로서의 술이 '소통의 윤활유' 역할을 해온 셈이다.

기업인이 이런 자리를 두려워 하면 결정적이다. 그럼에도 관련 업계가 주목하는 이른바 '잘 나가는' 중소기업CEO다. 남들은 알지 못하는 그만의 경영 비법은 무엇일까? 코아람 문양현 대표를 만나 궁금증을 풀어본다.

문양현 대표는 2012년 야자 매트 시장에 발을 들였다.

야자매트 시장의 명암을 헤쳐나간 '신의 한수'

문양현 대표가 야자매트 시장에 발을 들인 2012년은 격동의 시기였다. 당시 야자매트는 친환경 보행 매트로 각광받았고, 시장은 빠르게 확대하고 있었다. 인조잔디 회사에서 근무하던 그는 야자매트 업체로 이직해 영업이사로 활약하며 업계 1,2위를 다툴 정도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시장 이면에는 심각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직접 생산 능력 없이 수입산을 국내산으로 둔갑시켜 판매하는 업체들이 대거 적발된 것이다.

"옛날에는 기계가 없었어요. 누가 투서를 넣은 거예요. '이거 다 생산 안 해요. 다 사다 팔아요'라고요."

조달청의 점검이 시작됐다. 부랴부랴 500만 원을 주고 기계를 임시로 만들어 두 사람이 짜는 시늉을 했지만, 담당자의 헛웃음만 샀다.

"이렇게 많이 판 회사가 둘이서 하는 걸 보더니 웃더라고요. 5미터도 제대로 못 짰어요."

야자매트 시장은 직접 생산 위반 파동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야자매트는 시장에서 한때 퇴출되다시피 했고, 소비자들의 불신도 깊어졌다.

2016년, 문 대표는 자본금 500만 원으로 코아람을 설립했다. 이전 회사에서 약속받았던 지분이 지켜지지 않자 독립을 결심한 것이다. 그러나 자립은 쉽지 않았다. 곧바로 조달청의 직접 생산 증명 문제에 직면했다.

국내 최초로 개발된 북 없는(Shuttleless) 직조기로, 특허까지 받은 코아람의 자동 직조기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했다.

코바늘식 특허 기술을 개발해 국내에서 직접 생산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했다. 기계를 빼오기 위해 직조기 제조를 주문했던 회사의 3천만 원의 채무를 떠안고 야밤에 공장을 옮긴 일화는 지금도 '신의 한 수'로 회자된다.

"그 판단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못했을 거예요."

야자매트 시장은 서서히 회복됐다. 직접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10년 만에 시장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하지만 '맨발 걷기'열풍으로 2차 타격이 찾아왔다.

"맨발로 걷기 때문에 야자매트를 다 걷어내고 황토길로 바꾸는 거예요. '야자매트 왜 깔아? 여기 맨발길은 흙이 돼야 되는데'라는 민원이 엄청 들어오면서 야자매트가 다시 빠져나가기 시작했죠."

야자매트 제조업체들은 급격히 줄고 있다. 문 대표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문대표가 코아람의 코르크 생산공정을 설명하고 있다.

코르크와의 운명적 만남

2021년, 전환점이 찾아왔다. 코르크 사업을 추천받았다.

"조달 등록을 준비하는데 복수 업체가 필요하니까 협력할 회사를 찾더라고요. 안정된 회사를 추천해 달라고 해서 저를 소개한 거예요."

문 대표는 준비된 사람이었다. 코르크 사업에는 도장면허가 필수였기에 부인과 함께 건축도장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면허를 냈다. 조달 등록은 예상보다 오래 걸려 3년이 소요됐지만, 그 시간 동안 철저히 준비했다.

"3년 동안 코르크로는 매출이 전혀 없었어요. 하지만 설비투자와 공정 개발에 집중했죠."

코아람의 코르크 생산 공정은 업계에서 독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가장 큰 차별점은 '미분 제거'와 '코팅'이다. 코르크 칩에는 미분(가루)이 섞여 있다. 이를 제거하지 않으면 시공 시 문제가 발생한다.

"미분이 있는 걸 시공했을 때와 미분 제거하고 코팅한 코르크로 시공했을 때 현장에서 느낌이 다르다는 거예요. 흙손으로 붙일 때 확연히 차이가 나죠."

코팅도 필수다. 천연 소재인 코르크는 시간이 지나면 색이 바래 시멘트색으로 변한다. 일부에서는 "천연 소재인데 자연스러운 게 더 좋지 않냐"고 하지만, 소비자들은 시각적으로 보기 좋은 제품을 선호했다.

코아람 코르크 제품의 미분제거와 코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양현 대표

"코팅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포장재에 그렇게 써놨어요."

바인더 개발에도 공을 들였다. 과거 고무칩 바인더를 사용하면 시간이 지나 알갱이가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코아람은 전용 바인더를 개발해 탄성과 접착력을 대폭 향상시켰다.

"예전에는 조금만 휘면 부러졌어요. 지금은 크게 휘어질 정도로 탄성이 좋아졌죠."

한국경관포장공업협동조합 심사위원들이 코아람을 방문했을 때의 반응은 놀라웠다.

"20여 개 업체를 심사했는데 대부분 주먹구구식으로 하고 있더래요. 미분 제거하고 코팅하고 자동포장하는 시스템을 다 갖춘 회사는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정말 최고다'라는 평가를 받았죠."

조합에서도 코아람의 생산 공정을 널리 홍보하며 "코르크 시장을 안정화시키자"는 방침을 세웠다. 소문이 나자 코르크 사업에 관심 있는 업체들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미분 제거는 고품질의 일관된 코르크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코아람의 필수 공정이다

수익에 앞서 시장 안착이 우선

품질에 집착하다 보니 원가는 상승했다. 미분 제거, 코팅, 전용 바인더 사용 등 추가 공정에는 모두 비용이 든다. 하지만 문 대표는 흔들리지 않았다.

"10년 전 코르크가 한 번 나왔다가 퇴출됐어요. 제대로 시공이 안 되고 하자가 생겼기 때문이죠. 지금도 가서 영업하면 '나 옛날에 이거 써봤는데 안 좋았어요'라는 인식이 많아요."

그는 시장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품질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한다.

"단순하게 코르크 칩만 싸게 공급해서는 나중에 하자가 생겼을 때 이 시장은 또 금방 옛날처럼 아픔을 겪을 수 있어요. 우리만이라도 미분 제거하고 코팅도 하고, 비싸지만 코르크 전용 바인더를 쓰자고 같은 업계 공급 업체들한테 얘기했죠."

가격 차이도 두지 않았다. 내추럴 제품과 투톤 브라운 코팅 제품의 가격을 동일하게 책정했다.

"더 비싸다고 하면 사람들이 다른 것을 쓰잖아요. 그러면 나중에 코르크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져요. 제 주목적은 좋은 품질의 코르크 칩을 공급하는 거예요.“

현장을 뛰는 CEO, 품질개선에도 솔선수범하는 경영

문 대표의 경영 철학은 솔선수범이다. 직원들에게 일을 시키기 전에 자신이 먼저 현장에 나간다.

"야자매트 시공이 있으면 제가 나가요. 코르크 시공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직접 해봐야 직원들한테도 뭐라고 할 수 있고, 현장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있어요."

최근 밀양군 체육시설 시공 현장에서는 직접 작업에 참여했다가 "허리가 아파 쓰러지는 줄 알았다"고 한다.

"내가 힘든데 대부분 손 기술이 있는 분들은 연세가 많으세요. 젊은 사람들은 이런 일을 안 해요. 그분들이 얼마나 허리 아프고 힘들겠어요."

시공 전 사전 현장 미팅도 필수다. 토목업체와 협업해 기층 작업부터 배수 처리까지 꼼꼼히 챙긴다.

"기층 두께가 맞지 않으면 턱이 생기고, 배수가 제대로 안 되면 물이 고여요. 토목업체는 자기네 공정만 생각하지 다음 공정을 잘 모르니까 우리가 현장에 꼭 가서 시공 지도를 해야 해요."

초기에 비용이 들더라도 사후 AS 비용과 하자를 원천 차단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2년 보증만 보내면 되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지만 2년만 쓰고 하자 나온다고 수요기관에서 다음에 또 써주겠어요? 최소한 5년 이상은 버텨줘야 포장재로써 괜찮다고 인정받을 수 있어요."

코아람은 매일 네트워크 파일을 보며 신용 중심의 업무를 우선 추진한다.

미지급금 제로, 신뢰로 쌓는 네트워크

문 대표의 또 다른 원칙은 '미지급금 제로' 경영이다.

"줘야 될 돈은 바로바로 다 줘요. 남의 돈을 내 돈처럼 막 쓰는 성향이 아니에요. 남한테 피해 끼치지 않고 사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벌이나 스펙이 좋지 않다는 그는 성실함과 책임감으로 신뢰를 쌓았다. 술 한 잔 못하는 핸디캡을 품질과 신용으로 극복한 셈이다.

"장기 고객을 만드는 게 중요해요. 처음 스타트를 누구와 손잡고 도움받느냐에 따라 달라지죠. 나를 소개받은 업체들은 서포트가 제대로 되니까 '욕은 안 먹겠다'고 생각하면서 저를 찾아와요.“

현재 코르크 시장은 전환기를 맞고 있다. 기존 고무칩 포장재를 대체하려는 움직임과 기득권을 지키려는 저항이 충돌하고 있다.

"고무칩은 산업폐기물이라 무게도 엄청 무겁고 폐기 비용이 몇천만 원씩 나와요. 코르크는 밀도도 가볍고 재활용도 가능하며 일반 쓰레기로도 처리할 수 있어요. 시작과 끝을 보면 비용이 그리 높지 않아요."

초기 비용이 고무칩보다 비싸다는 점은 약점이지만, 내구연한과 폐기물 처리 비용까지 고려하면 경쟁력이 있다는 게 문 대표의 설명이다.

"7,8년 내구연한을 고려하고, 나중에 폐기물 처리 비용까지 보면 세이브가 됩니다. 이 부분을 우리는 강점으로 얘기하고 있죠."

체육시설용 코르크는 KS 인증을, 놀이시설용은 단체표준 인증을 받았다. 시장 규모는 800억~1000억 원으로 추산되며, 특히 놀이터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크다.

"고무칩 업체에서도 코르크로 넘어가고 싶어 하는 곳들이 있어요. 하지만 눈치를 보고 있죠. 같이 하는 고무칩 업계를 버리고 먼저 넘어가면 시장이 무너질까 봐요."

친환경으로 가는 추세는 분명하지만, 초기 저항을 잘 이겨내야 한다는 게 문 대표의 판단이다.

문양현 대표는 '친환경 소재를 다루려면 마음부터 맑아야 한다'는 경영철학을 갖고 있다.

"혼자만 잘해서는 안 된다"

문 대표는 자신만 잘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업계 모두 함께 가야 시장이 커진다고 믿는다.

"몇 개 회사를 선별해서 우리랑 같이 갈 수 있는 회사를 찾고 있어요. 여기저기 막 해서 판매에만 집중하다 보면 품질이 떨어질 수 있으니까요."

그의 목표는 명확하다.

"친환경 바닥 포장재의 선두 기업으로서 타사들의 모범이 되는 표본이 되고 싶어요. 덜 남더라도 품질이 우선이에요. 그게 오래 갈 수 있고 결국 돈 버는 거라고 생각해요."

조합에서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코르크 사업을 하고 싶다는 업체가 있으면 적극 추천해주겠다"는 분위기다.

"친환경 소재를 다루려면 마음부터 맑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양현 대표의 이 한 마디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야자매트 시장의 부침을 온몸으로 겪으며 깨달은 철학이자, 코르크 시장을 건강하게 키우겠다는 다짐이다.

수입산 둔갑 파동으로 한 번 무너졌던 시장, 10년 만에 부활했지만 '맨발 걷기' 열풍으로 다시 흔들리는 와중에도 그는 품질 하나만 믿고 달려왔다. 술 한 잔 못하는 CEO지만, 신뢰와 품질로 업계 최고의 평가를 받으며 친환경 바닥재 시장의 미래를 개척하고 있다.

"지금은 경기가 어렵지만, 친환경으로 가는 흐름은 막을 수 없어요. 이 초기 저항을 잘 이겨내면 우리의 먹거리는 더 커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