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열린 한국조경학회 국가도시공원특별위원회 간담회에서 김승환 명예교수가 소견을 말하고 있다.
8월 4일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번 법 개정으로 국가도시공원 지정의 법적 기반이 마련돼 부산 등 4개 광역 지자체가 추진중인 국가도시공원 지정이 눈앞에 다가왔다. 26년간 국가도시공원 조성을 위해 숨가쁘게 달려온 김승환 명예교수(동아대)의 감회는 남 달랐을 터이다.(편집자 주)
도시는 인간의 손으로 세워졌지만, 숨결은 언제나 자연으로부터 온다. 바다와 산이 감싸는 부산은 겉으론 풍요로워 보였으나, 정작 사람들의 마음을 쉬게 할 숲은 비어 있었다.
회색 건물 숲속에서 26년전 한 교수가 던진 물음은 단순했지만 깊었다.
“부산에는 왜 뉴욕의 센트럴파크 같은 대공원이 없는가?”
1999년 부산시 공원녹지 마스터플랜을 맡은 김승환 교수(국가도시공원 전국민관네트워크 상임대표)의 질문은 곧 '100만평 공원'이라는 비전을 낳았다. 시민이 언제든 찾을 수 있는 거대한 녹지가 도시의 심장부에 있어야 한다는 구상이었다.
땅을 사고, 나무를 심으며 시민의 손으로 미래를 준비한 25년. 그 긴 시간은 단순히 공원을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도시와 자연이 다시 만나는 길을 찾는 여정이었다.
낙동강하구 국가도시공원 범시민추진본부 등 회원들이 지난 4월 국회에서 열린 정책포럼에 참가한 뒤 낙동강 하구에 제1호 국가도시공원을 조성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사)100만평문화공원조성범시민협의회 제공
시민의 힘으로… 범시민협의회와 한평 운동
하지만 당시 부산시의 반응은 차가웠다.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제안은 묻혔다. 좌절에도 불구하고 김 교수는 방향을 틀었다.
"행정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시민이 직접 나서야 한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김 교수는 ‘아시안게임 기념공원’을 제안했고, 이를 계승한 ‘100만 평 공원 범시민협의회’가 결성됐다. 종교계, 원로 인사, YMCA·YWCA 등 각계 시민단체가 참여했다.
시민운동은 곧 ‘한평 운동’으로 구체화됐다. 시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직접 토지를 매입하는 방식이었다. 실제로 1만4천 평에 달하는 부지가 매입됐다.
김 교수는 개인 주택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으며 운동을 이어갔다. 결과적으로 1만 평은 부산시에 기부돼 공원으로 지정됐고, 나머지는 일부 매각을 통해 잔금으로 충당됐다.
그러나 부산시의 태도는 여전히 미온적이었다. “좋은 운동”이라는 격려는 있었지만, 실질적 행정 지원은 따르지 않았다.
김승환 명예교수가 국가공원 조성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있다.
국가공원으로 확장, 법제화의 첫걸음
2000년대 초반, 운동은 ‘부산’이라는 지역을 넘어섰다. 김 교수는 중앙언론 기고를 통해 ‘국가공원’ 개념을 제시했다. 이후 ‘국가공원 범시민추진본부’가 발족, 부산의 크고 작은 단체 300여 곳이 참여했다. 서명운동에는 100만 명이 동참했고, 이 과정은 국가도시공원 제도의 필요성을 공론화하는 계기가 됐다.
2011년 정의화 의원(전 국회의장)이 '국가도시공원법'을 발의하며 제도화의 물꼬가 트였다. 그러나 국토위원회와 법사위의 높은 벽은 예상보다 단단했다. 여러 차례 법안이 폐기되는 좌절을 겪은 끝에, 2016년에서야 법이 통과됐다.
하지만 내용은 크게 축소됐다. 원안은 국가가 토지를 매입·조성하는 방식이었으나, 최종안은 지자체가 매입·조성하고 국가는 관리비 일부만 지원하는 형태였다. 김 교수는 이를 두고 “반쪽짜리 법”이라고 평가했다.
재도전, 그리고 을숙도의 등장
전환점은 2021년 찾아왔다. 보궐선거로 박형준 시장이 취임하기 전, 김 교수와 학계·시민단체는 새로운 구상을 제안했다. 과거의 둔치도(강서구)는 지역 반발이 심했기에, 이번에는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을숙도(사하구) 일원 약 250만 평을 대상으로 한 계획이었다.
박 시장은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고, 부산시는 추진 조직을 팀 → 과 → 국 단위로 확대하며 본격 추진에 나섰다. 기본 구상 용역이 발주되고, 시민협의체도 구성됐다. 범시민 차원의 운동과 행정이 비로소 연결된 것이다.
전국으로 번지는 국가도시공원 운동
입법 보완 움직임도 속도를 냈다. 부산의 이성권 의원이 법 개정안을 발의해 면적 요건 완화, 국가 소유지 활용 허용, 국무회의 심의 규정 삭제 등을 추진했다. 인천·대구·광주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며 전국적 확산 조짐을 보였다.
특히 대구는 녹지시민단체인 그린트러스트와 협력해 자체 추진위원회를 발족했다. 현재 부산에서는 ‘국가도시공원 범시민추진본부’가 250여 개 단체의 참여 속에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김 교수는 “시민운동에서 제도화로 이어진 이 과정이야말로 한국 도시공원의 새로운 역사”라고 말한다.
(사)100만평문화공원조성범시민협의회는 시민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해 지난해 11월부터 '국가도시공원뉴스'를 발간하고 있다.
국가도시공원, 단순한 공원이 아니다
김 교수는 국가도시공원을 단순한 도시녹지 사업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그는 이를 21세기형 공원 모델로 정의한다. 국가·지자체·시민·기업이 함께 주인이 되어 만들어가는 공간, 기후위기 대응과 ESG 경영,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담아낼 플랫폼이라는 것이다.
“국가도시공원은 대한민국 미래 모델이 될 수 있다. 단순히 숲과 나무를 심는 차원이 아니라, 시민과 기업, 지자체, 국가가 함께 만드는 새로운 공원의 시대를 여는 것이다.” (김승환 교수)
이처럼 부산의 국가도시공원 추진 역사는 곧 한 명의 학자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사회운동의 궤적이다. 이제 ‘국가도시공원’이라는 이름으로 피어나는 그 꿈은, 도시가 자연을 품고, 자연이 인간을 품어내는 공존의 서사로 이어지고 있다. 마침내 그 꿈은 8월 4일 법으로 보상을 받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