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송이 버섯 박사’로, ‘산림 혁신리더’로 주목받는 오득실 전라남도 산림연구원장
오득실 전라남도산림연구원장. 버섯 하나로 시작된 그의 이야기는 이제 전남의 숲 전체를 무대로 펼쳐지고 있다. 연구실에서 묵묵히 균사를 배양하던 연구사가 어떻게 산림행정의 혁신가가 되었을까? 그 비밀은 30년 공직 인생 곳곳에 새겨진 '현장'과 '사람'이라는 두 단어 속에 있다.
26일 전남 산림연구원에서 열리는 팬타곤과 함께하는 숲속힐링 탄소중립음악회.
숲이 무대가 되다 - 사람과 음악의 힐링 화음
오는 26일, 전남산림연구원의 명품숲이 야외 음악당으로 변신한다.
팬플룻 연주그룹 '팬타곤'과 함께 하는 숲속 힐링 탄소중립 음악회. 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와 플룻의 청아한 선율이 교차하는 이 무대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다. 자연과 문화, 환경이 하나로 융합되는 '살아있는 예술'이다.
지난 12일 '숲나들이 힐링 음악회'에 이은 명품 숲을 추억하게 만드는 연속 무대. 오득실 원장은 숲을 단순히 쉬는 공간이 아닌, 예술이 숨 쉬고 생태가 노래하는 무대로 가꿔 나가고 있다.
"숲은 침묵하지 않습니다. 귀 기울이면 가장 아름다운 교향곡을 들려주지요."
오원장은 작품 하나라도 직원들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구성한다
행정에서 시작된 불씨
1991년, 전남대 4학년.
여성 임업 공무원이 손에 꼽히던 시절, 그는 녹지직 공무원으로 공직에 첫발을 내디뎠다. 행정 서류 속에서 산림정책을 수립하고, 현장을 누비며 나무를 세던 날들. 하지만 곧 한계가 보였다.
"서류로는 숲의 문제를 풀 수 없었습니다. 뿌리를 보려면 땅을 파야 했지요."
1999년, 그는 과감하게 연구사로 전직했다. 행정에서 과학으로, 정책에서 실험실로. 선배의 권유도 있었던 이 선택이 그를 '꽃송이 버섯 박사'로 만들었다.
오원장은 2022년 한국버섯생산자연합회에서 받은 '버섯인의 상'을 최고의 영예로 생각한다. 오득실 제공
일본의 비밀을 한국의 기술로
2009년, 한 가지 집념이 결실을 맺었다.
일본에서만 재배되던 고급 식재료 '꽃송이 버섯'. 수년간의 실험 끝에 오 원장은 이를 국내 환경에서 대량 재배하는 기술을 완성했다. 국산화 성공. 임업계는 들썩였다.
"버섯 하나가 임업인 가족의 1년 생계를 책임질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논문은 서랍 속에 남지 않았다. 그의 연구는 곧바로 현장으로 옮겨졌고, 임업인들의 소득으로 연결됐다. 연구의 끝은 논문이 아니라 삶의 변화라는 그의 철학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 성과로 그는 '꽃송이 버섯 박사'라는 별칭과 함께 전국적 주목을 받았다.
연구자에서 리더로 - 현장을 아는 행정가
직급 승진을 하고 행정을 관리하면서 오 원장의 진가는 더 드러났다.
연구사 시절 쌓은 현장 감각과 초기 행정 경험이 결합되며 '현장 중심형 산림행정'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했다. 보고보다 실행을, 지시보다 협업을 택했다. 조직은 움직였고, 숲은 응답했다.
완도수목원 시절, 그는 숲과 문화를 접목한 실험을 본격화했다. 한옥 산림박물관을 배경으로 연 '숲속 음악회'는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대표 문화행사로 자리 잡았다. 숲은 더 이상 연구 공간이 아니었다. 문화와 경제, 복지가 만나는 플랫폼이 되었다.
2018년 전남산림자원연구소로 자리를 옮긴 후에는 피톤치드 연구, 산림치유 프로그램, 토종 다래·체리·대추·떫은 감 등 소득형 산림작물 개발을 주도했다.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숲은 생명력을 얻었고, 임업인들에게는 희망이 싹텄다.
산림치유와 산림교육 프로그램으로 산림복지서비스를 완성해 나가는 '전남 산림연구원'. 오득실 제공
"나무는 백 년을 내다보는 투자입니다"
"임업은 단순히 나무를 심는 일이 아닙니다.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일이지요."
오득실 원장은 대화 내내 '현장'과 '사람'을 강조했다.
30년, 100년 뒤 숲의 모습을 미리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숨 쉬고 살아가는 방식을 고민한다. 나무 한 그루가 자라는 데 걸리는 시간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이기에, 긴 호흡으로 미래를 설계한다.
현재 그가 추진 중인 '명품숲 재조성 프로젝트'는 연구원의 숲을 도민 모두가 즐기고 치유받는 열린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작업이다. 산림은 연구소의 자산이 아니라 도민의 자산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30여 년의 공직 여정은 한국 여성 임업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있다.
1990년대, 유리천장을 깨다
여성 임업 공무원이 희귀하던 시절, 오 원장은 홀로 남성 중심의 산림 현장을 누볐다. 행정 서류와 현장 점검을 오가며 산림정책의 기초를 다졌다. 하지만 그는 서류 속 정책만으로는 숲의 진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깨달음이 그를 연구의 길로 이끌었다.
2000년대, 연구로 증명하다
연구사로 전직한 그는 실험실과 재배사를 집처럼 드나들었다. 꽃송이 버섯 국산화 성공은 단순한 연구 성과가 아니었다. '여성도 임업 분야에서 핵심 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한 사건이었다. 전국 임업계가 그를 주목했고, '꽃송이 버섯 박사'라는 별칭은 여성 임업인들에게 하나의 롤모델이 되었다.
2010년대, 리더십으로 확장하다
관리직으로 승진하며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연구 성과를 정책으로 연결하고, 조직을 이끌며, 예산을 기획하는 일. 많은 이들이 여성 리더의 행정 역량을 의심하던 시절, 오 원장은 완도수목원과 산림자원연구소를 거치며 '현장 중심형 산림행정'이라는 독자적 모델을 구축했다. 숲속 음악회, 산림치유 프로그램, 소득형 작물 개발까지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혁신이 일어났다.
12일, 국악과 프랑스 공연이 어우러져 국제 문화교류의 장이 되었던 '숲치유 힐링음악회'. 오득실 제공
2020년대, 미래를 설계하다
이제 그는 전라남도산림연구원장으로서 전남 산림정책의 중심에 서 있다. 명품숲 조성, 탄소중립 실현, 산림문화 확산까지 그가 그리는 청사진은 한 세대를 뛰어넘는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주저앉지 않고, 오히려 섬세함과 포용력으로 조직을 이끄는 그의 리더십은 후배 여성 임업인들에게 '가능성의 증거'가 되고 있다.
오득실 원장의 발자취는 한국 여성 임업사에 뚜렷한 이정표를 남기고 있다. 그가 걸어온 길은 전남 산림의 미래를 밝히는 살아있는 나침반이다.
그가 꿈꾸는 '문화가 있는 명품숲'은 더 이상 구호가 아니다.
연구와 현장, 사람과 자연, 그리고 문화가 함께 호흡하는 숲.·
오득실 원장은 오늘도 그 숲 한가운데서 조용하지만 확고하게 미래를 빚어내고 있다. 그의 손끝에서 숲은 황금빛으로 물들어간다.
"나무의 시간은 느립니다. 하지만 그 느림 속에 가장 확실한 미래가 있습니다."
— 오득실, 전라남도산림연구원장
산림자원 활성화와 공급 폴랫폼 체계화로 미래를 준비하는 오득실 전라남도 산림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