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소나무 재선충 방제와 관련한 다양한 접근법을 제시했다. 그의 눈은 소나무의 상처를, 손은 흙의 숨결을 읽는다.
나무의사인 그는 '숲의 의사'이기도 하다. 그가 보는 한국의 숲은 "살아 있는 환자"이다.
대부분 소나무로 이뤄진 한국 산이 재선충으로 몸살을 앓고 있어 그의 마음은 편치못하다. 인터뷰의 상당 시간을 재선충 방제에 할애했을 정도다.
“소나무는 우리 민족의 상징이지만, 지금은 가장 아픈 나무이기도 합니다.”
박화식 원장(탑나무병원·나무의사)이 소나무에 쏟는 애정은 각별하다. 그의 최애 나무도 '금송'이다.
그는 자주 방제복을 입고 산을 오른다.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를 찾아내고, 뿌리 근처의 흙을 헤쳐본다.
그의 눈은 나무의 상처를, 손은 흙의 숨결을 읽는다.
외래 침입종 재선충은 1988년 국내에서 처음 발생한 이후 감염세가 잦아들다 최근 들어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전남·광주도 예외가 아니어서 전남은 최근 5년 사이 재선충 감염이 2배나 늘었고, 광주는 무려 12배가 늘었다.
현재까지 치료제가 없고 감염시 100% 고사해 치명적인 산림병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약으로 병을 죽이는 게 아니라, 환경을 되살리는 게 본질"이라고 말한다.
“하늘소가 옮기는 재선충, 20일이면 산이 죽는다”
그가 설명하는 재선충의 실상은 충격적이다.
“하늘소(솔수염하늘소·북방수염하늘소)가 재선충을 옮깁니다. 암수 두 마리가 침투하면 20일 만에 20만 마리로 번식하죠. 기온이 높을수록 확산이 빠릅니다. 여름엔 산 하나가 순식간에 누렇게 변해요.”
그는 하늘소의 생태를 연구해 ‘향기 백신’을 개발 중이다.
“하늘소는 죽어가는 나무의 냄새를 쫓아요. 그 향 성분을 분석해 ‘기피제’를 만들고 있습니다.
냄새의 언어를 바꿔 접근 자체를 막는 겁니다. 이건 약이 아니라 소통이에요.”
전남도 공직자 시절 그는 하늘소 사체에서 추출한 미생물을 이용해 동충하초형 방제균을 개발했고, 특허를 냈다.
“효과가 입증됐지만, 공무원이라 상용화는 포기했습니다. 그래도 연구는 이어가야죠. 숲이 병드는 속도를 인간의 지식이 따라잡아야 합니다.”
박 원장이 가장 좋아하는 소나무 금송. 수피가 터져 나오는 모양이 거북을 닮아 장수와 복을 상징한다고 해 30년째 키워오고 있다. 박 원장 제공
“흙이 살아야 나무가 삽니다”
그는 나무의 병을 ‘토양의 병’으로 본다.
“나무가 죽는 이유는 뿌리 때문이에요. 흙이 산성화되거나 미생물이 줄면 나무는 면역을 잃습니다. 토양의 건강이 나무의 건강이에요.”
박 원장은 방제를 ‘치료’가 아니라 ‘회복’ 차원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약으로 병을 죽이는 게 아니라, 환경을 되살리는 게 본질입니다. 살충제보다 흙의 생명을 살리는 미생물이 더 큰 역할을 합니다.”
매사에 최선을 다했던 그는 완도수목원과 순천만국가정원 조성의 핵심 실무자로 활약했다. 그는 1988년 초창기 완도수목원이 477헥타르 규모로 조성될 당시, 기반시설 확충과 면적 확대를 주도했다. 당시 도로, 관리사 등 기초 인프라조차 미비했지만 그는 실무 책임자로서 도청 내부 반대와 복잡한 행정 절차를 돌파하며 수목원을 조성했다. 그 결과 비교적 이른 39세에 사무관 승진을 할 수 있었다.
김경섭 한국정원조경연합회 회장(왼쪽)이 재선충 문제를 두고 박 원장과 대담하고 있다.
“숲의 세대교체가 이미 시작됐다”
그는 최근 산불 피해지도 자주 찾는다.
“의성, 안동 산불 현장을 보면 소나무는 다 탔는데 활엽수는 살아 있습니다. 소나무의 송진은 불을 키우고, 활엽수는 불길을 막아요.”
박 원장은 "지금은 숲이 스스로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이어 “소나무의 도태는 자연의 순리”라고 말한다.
“소나무는 양수라서 그늘에선 못 자랍니다. 떡갈나무, 단풍나무 같은 활엽수의 시대가 오고 있어요. 인간이 멈추라 해도 자연은 이미 변화를 선택했습니다.”
그는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추진 과정에서도 중심적 역할을 했다. 국회와 기재부를 수차례 방문해 예산을 확보하고, 행사 직전 대통령 방문을 성사시키며 박람회의 국가적 위상을 높였다. 그는 당시 전남도청 산림과장으로서, 정원박람회가 단순한 지역 행사가 아니라 ‘정원문화 도시 순천’을 세계에 알리는 전환점이 되도록 실무 전반을 조율했다.
전국적으로 확산 중인 소나무 재선충 감염을 막기 위해 그는 '향기 백신'을 개발중이다.
“도시의 나무도 바뀌어야 합니다”
나무의사 박 원장은 도시조경에도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이제는 키 큰 가로수보다 소형화, 컬러화된 수종이 필요합니다. 외국은 품종 개발이 활발해요. 일본은 동백만 4,000품종이 넘죠. 우리는 동백을 다 똑같이 봅니다. 새 품종을 인정하고 이름을 붙이는 문화가 있어야 조경 산업이 자랍니다.”
그는 연구자들의 도전 정신이 산업의 씨앗이라고 강조한다.
“잎 모양 하나, 색감 하나 달라도 새로운 품종이에요. 그걸 인정해줘야 나무의 세계가 확장됩니다.”
인터뷰의 마지막, 그는 조용히 말했다.
“나무는 인간보다 오래 삽니다. 하지만 병이 오면 인간의 손길이 필요하죠. 우리가 숲을 지킨다는 건, 결국 우리 자신을 지키는 일입니다.”
나무의 병을 지키는 나무의사는 결국 환경과 사람을 지키는 진짜 의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