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자연이 만난 '2025 서울전통문화예술대전

인사동 한국미술관 3층 전시실에서 17일 개막한 '2025 서울전통문화예술대전'에 이례적인 작품들이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한국자연예술가협회가 출품한 이끼 정원을 비롯해 정원·조경·환경예술 작품 50여 점이 전시됐다. 작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는 이들 작품은 회화 등 전통 예술품 사이에서 독특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살아 숨 쉬는 자연 소재를 활용한 작품이 전통문화예술대전에 포함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기후위기 시대에 탄소중립의 메시지를 예술로 풀어냈다는 점이 관람객의 관심을 모았다.

탄소 저감의 행동대장, 이끼

이끼는 공기 정화, 탄소 흡수, 수분 조절에 탁월한 원시적인 선태식물이다.

"이끼는 탄소 저감의 상징적인 행동대장입니다." 김현규 한국자연예술가협회 서울지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조경을 전공하고 예술 활동을 취미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이끼를 활용한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이끼의 탄소 흡수 능력은 놀랍다. 1제곱미터당 소나무 10그루에 맞먹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김 회장은 "이끼가 가로수 수십 그루가 흡수하는 탄소량과 맞먹는 정화 능력을 갖고 있다"며 "기후위기 시대에 탄소중립에 기여할 수 있는 소재"라고 강조했다.

일본에서는 잔디 대신 이끼를 심는 정원이 많다. 하지만 관리가 쉽지 않다. "해보니까 굉장히 어려운데, 이 겨울에 저렇게 붙어서 살아남을 정도면 보통 실력이 아니다"라는 게 김 회장의 말이다.

20여 가지 이끼로 빚은 예술

강일창 작가의 '이끼정원'


우리나라에 일반적으로 쓰이는 이끼 종류만 40~50가지 정도 된다. 이번 전시에는 '털깃털 이끼'를 주재료로 초록이끼, 비단이끼 등 약 20여 가지가 활용됐다. "이끼는 산에 많이 서식하면서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사람들이 잘 모른다"는 김 회장의 말처럼, 이끼는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지만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소재였다.

전시장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강일창 작가의 '이끼 정원'이다. 강 작가의 분경(盆景)은 나무뿐 아니라 돌, 이끼 등 여러 요소를 함께 사용하여 '화분 속에 자연 풍경 전체를 축소해 담아낸' 미니어처 정원 예술의 백미였다.

김현규 작가가 자신의 작품인 '이끼정원-탄소그물'을 설명하고 있다.

김현규 작가의 '이끼 정원-탄소그물'은 우주를 말하면서 동시에 탄소가 공기를 정화하는 기능까지 보여주는 복합적 의미를 담았다. 수직정원으로 꾸며진 이 작품은 두께만 5cm에 달해 혼자서는 들 수 없을 정도로 무겁기도 했다.

"이렇게 세워놓고 붙이기가 힘들다. 무거우니까 주저앉아 흘러내린다." 김 회장이 개발한 특허받은 판이 없었다면 이런 작품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프레임만 30만 원, 소재를 하나하나 추가하면 원가가 더 들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이끼를 소재로 한 작품은 단순한 전시용이 아니다. 실내에 놓으면 습도 조절과 함께 탄소 저감, 공기 정화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 "가로수길을 걷는 느낌을 준다"는 김 회장의 말처럼, 실용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생활형 창작품이다.

살아있는 자연의 작품은 생명력 관리가 필수

이끼를 활용한 자연 작품은 분무기 등으로 수분 유지를 해줘야 한다.

살아있는 작품이기에 관리가 필수다. 전시 기간 중 하루나 이틀에 한 번씩 분무기로 물을 뿌려 습도를 유지한다. "이렇게만 관리해주면 계속 살 수 있다"며 "영하 3~4도까지는 견딜 수 있다"고 설명한다. 지금 전시된 작품들은 만든 지 석 달가량 됐지만 여전히 생생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꽃도 전시 시기에 맞춰 핀다. "전시 기간을 생각해서 먼저 피고 한 3일 지나 피도록 꾸민다"는 김 회장의 말에서 작품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엿볼 수 있다.

전통 미술품과 조경·환경 작품의 어울림

꽃도 개화시기를 전시 기간에 맞춘다

"제가 하자고 그랬죠. 다른 전시와 같으면 재미가 없잖아요." 김 회장은 이번 전시의 컨셉을 직접 제안했다. 보통 분재나 분경은 별도로 전시회를 하는데, 전통 회화·조각 작품과 함께 전시하는 것은 서울전통문화예술대전에서 처음이다.

"조경예술하고 같이 융합 전시 작업을 하면 실제 살아있는 모습을 보여줘 생명력이 있고 다양한 분야의 경계를 허물어 새로운 차원의 경험을 제공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고궁에도 분재와 수석이 있듯이, 조경 같은 예술 요소를 전통 예술 대전에 접목한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이끼 작품뿐 아니라 허남천 한국자연예술가협회 회장 등 30여 명의 분경 작품, 솟대 등 다양한 자연예술 장르의 작품 50여 점이 함께 전시됐다.

분경·솟대 등 다양한 자연 작품 50여점이 출품됐다.

20년 키운 나무, 6개월 공들인 돌로 만든 자연친화 예술

전시장에는 20년 동안 키운 분재도 있다. "조그마한 씨를 하나 뿌려가지고 10년 정도 키워서 만든다. 쉬운 게 아니다. 세월도 걸리고 정성도 필요하다."

6개월 동안 만든 분경도 눈길을 끈다. "어디서 돌덩어리만 갖다 놓고 뭘 올려놨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작가적 창작력으로 볼 때 자연의 생태계 모습을 하나에 담았다"는 김 회장의 설명이다.

일본이나 중국에서 들어온 분재 기법에 우리만의 예술적 멋을 더했다. 공모전의 성격에 맞춰 단순한 소장품이 아닌 생활형 창작품을 추구한다. 하트 모양으로 의자를 감싸 사람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한 작품처럼, 응용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자연의 생태계 일부를 조형화한 이 작품들은 기후위기 시대에 탄소중립의 가치를 예술로 승화시킨 의미 있는 시도다. 전시는 23일까지 계속된다.

기후위기 시대에 탄소중립의 가치를 예술 작품으로 표현한 전시회는 23일까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