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가 국가도시공원으로 추진중인 낙동강 하구 일대의 을숙도와 맥도 생태공원.


2016년 도입된 국가도시공원 제도가 9년 만에 현실화의 전기를 마련했다. 국회는 지닌 4일 본회의에서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을 의결하며, 그동안 단 한 건도 지정되지 못했던 국가도시공원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 전반을 정비했다.

이번 개정안은 맹성규·이성권·권영진·윤영석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4건의 법안을 국토교통위원회가 통합·조정해 위원회 대안으로 마련한 것이다. 법적 기반이 마련되면서 전국 지자체 간 제1호 국가도시공원 지정을 위한 경쟁 구도가 본격화되고 있다.

지정 요건 대폭 완화로 진입 장벽 낮춰

개정안의 핵심은 지정 요건의 대폭 완화다. 지정 최소 면적 기준은 기존 300만㎡에서 100만㎡ 이상으로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부지 소유권 확보 요건도 크게 완화돼 중기지방재정계획에 포함된 향후 확보 계획까지 인정되도록 변경됐다.

공원시설 설치기준 역시 기존 도시공원보다 완화된 기준을 적용할 수 있게 해 지자체 부담을 줄였다. 특히 부지 매입비를 제외한 설치·관리 비용에 대한 국고 보조가 가능해지면서 지방재정 여건에 따른 진입 장벽이 크게 낮아졌다.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공원정책 수립을 위해 '국가공원녹지기본계획'이 신설되고, 국토교통부 장관 소속으로 '중앙도시공원위원회'가 구성된다. 위원회는 국가도시공원 지정과 예산지원, 연접 공원·녹지와의 연계 사업 등 주요 정책을 심의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한시적으로 5년간 운영된다.

인천시가 국가도시공원으로 추진중인 소래습지생태공원 일대


4개 광역시, 제1호 지정 경쟁 본격화

제도적 기반 마련과 함께 전국 주요 광역지자체들이 제1호 국가도시공원 지정을 목표로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했다. 인천, 부산, 광주, 대구는 각각 지역의 생태·문화·역사 자원을 기반으로 한 국가도시공원 지정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부산시는 낙동강 하구 일대의 을숙도와 맥도 생태공원을 중심으로 558만㎡ 규모의 국가도시공원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을숙도는 국가도시공원 지정 운동의 출발점으로 평가되며, 생물 다양성과 하구 경관을 갖춘 국가급 생태관광자원으로서 상징성과 발전 가능성이 높다.

인천시는 총 665만㎡ 규모의 소래습지생태공원 일대를 중심으로 국가도시공원 지정을 추진 중이다. 소래염전·시흥갯골·송도랜드마크시티 등을 잇는 5개 권역 주제공원 플랫폼 구상을 통해 염전, 습지, 유휴 산업지 등 이질적 공간을 복합 생태문화공간으로 통합할 계획이다. 인천은 국내 최초의 도시공원인 자유공원이 조성된 도시로서 상징성도 보유하고 있다.

대구시는 도심 속 대표적 녹지인 두류공원(약 118만㎡)을 국가도시공원 후보지로 설정했다. 지하주차장 설치, 시민 피크닉 공간 조성, 통합관리체계 구축 등의 구체적 실행계획을 마련하며 공원 중심의 도시브랜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광주시는 279만㎡ 규모의 중앙근린공원을 1호 국가도시공원 후보지로 검토하고 있다. 해당 부지는 지자체 소유로 행정적 제약이 적고, 5·18 민주화운동의 역사성과 생태적 잠재력을 갖춘 공원으로 평가받는다. 문화자산과 도시녹지를 결합한 복합형 공원 모델을 제시하며 지정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대구시가 국가도시공원으로 추진중인 두류공원 일대.


국토부 변화와 전문가들의 제언

지자체들이 정책 변화에 맞춰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반면, 법 개정 직후 국토교통부의 소극적 태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국토부도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원·공원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코로나19, 기후위기 등의 사회적 이슈와 맞물리면서 증가했고, 조경직 공무원(국가직)이 본격 선발되면서 관련 정책 추진이 보다 전문적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평가다.

안승홍 한국조경학회 국가도시공원특별위원회 위원장(한경국립대학교 교수)은 "과거 국토부가 미온적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제2차 조경진흥기본계획 수립 과정에서 국가도시공원 과제가 포함되는 등 제도적 기반이 점차 마련되고 있다"며 "특히 중앙도시공원위원회 신설과 국가도시공원 기본계획 수립이 이뤄진 점은 제도 운영의 큰 전환점"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지금이야말로 국가도시공원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할 골든타임"이라며 "법적 기반은 마련됐고, 제도적 구조도 갖춰졌다. 이제는 국가공원청 신설을 통해 체계적인 관리와 정책 리딩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용산공원추진기획단을 확대 개편해 국가공원청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광주시가 국가도시공원으로 추진중인 중앙근린공원.


제도 성공의 열쇠는 중앙정부 역할

국토교통부는 "국가도시공원을 비롯해 도시공원 평가, 국가공원녹지기본계획, 도시공원 정보체계 구축, 중앙도시공원위원회 운영 등 공원녹지 분야 전반에 걸친 국가 차원의 정책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관련 법령 개정과 하위 법령 정비를 차례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1호 국가도시공원이 특정 도시가 아닌 인천·부산·광주·대구 등 여러 광역시가 공동으로 지정되는 방식도 논의되고 있다"며, "이는 단순한 경쟁을 넘어 향후 전국 확산을 위한 상징적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제1호 국가도시공원이 어느 도시에 조성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지역의 여건과 행정 역량, 공원의 비전뿐 아니라 중앙정부의 실질적인 의지와 역할이 지정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9년간 표류했던 국가도시공원 제도가 진정한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