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차가운 바람 문틈을 가만히 스치면
나뭇가지 앙상히 제 몸 드러내고
짧아진 해는 일찍 잠자리에 듭니다
세상 온통 하얀 옷으로 갈아입고
언 강물은 깊은숨을 고르듯
발자국 없는 길은 고요함만 흐릅니다
작은 창에 피어난 하얀 서리꽃
따뜻한 차 한 잔 온몸을 녹이고
긴 밤의 이야기는 아늑히 쌓여갑니다
땅속 깊이 뿌리내린 생명은 잠들고
희미한 새의 울음 먼 산에 번져도
묵묵히 시간의 무게를 견딥니다
문득 스며든 아침 햇살 하나에
다시 깨어날 희망의 씨앗을 품고
겨우내 굳었던 마음을 조용히 다독입니다
[창작 노트]
정익송
월간『시사문단』시로 등단, 한국시사문단작가협회 회원, 빈여백 동인, 경상남도문인협회 회원, 창원문인협회 회원, 창원특례시 푸른도시사업소 공원녹지과 녹지조성팀장, 풀잎문학상, 북한강문학제 신인상, 국무조정실장상, 법제처장상, 서울특별시장상 등 35회 수상
이 시는 어느 겨울날 아침, 창밖을 내다보다가 문득 깨달은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앙상한 나뭇가지들, 하얗게 뒤덮인 세상, 그리고 그 고요함 속에서 느껴지는 묘한 평화로움. 겨울은 춥고 쓸쓸하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멈춤과 성찰의 시간을 선물하는 계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의 구조와 의도
첫 번째 시선: 자연의 섭리 앞에 서다
"차가운 바람 문틈을 가만히 스치면"이라는 첫 구절은 겨울의 도래를 감각적으로 포착하려는 시도였습니다. 바람이 '스친다'는 표현에 '가만히'를 더한 것은 겨울이 요란하게 오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우리 곁에 다가온다는 느낌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제 몸을 드러내는 모습, 세상이 하얀 옷으로 갈아입는 장면은 겨울이 지닌 투명함과 정직함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잎사귀로 가려졌던 나무의 본질이 드러나듯, 겨울은 우리 삶의 본질을 마주하게 하는 계절입니다.
두 번째 시선: 작은 온기의 발견
혹독한 추위 속에서 발견하는 작은 행복들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창에 핀 서리꽃의 섬세한 아름다움, 손을 감싸는 따뜻한 찻잔의 온기, 긴 밤을 채우는 이야기들. 이런 소박한 순간들이야말로 우리가 겨울을 견디게 하는 진짜 힘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아늑히 쌓여갑니다"라는 표현에는 시간이 주는 위안을 담고자 했습니다. 눈이 조용히 쌓이듯, 우리의 기억과 경험도 그렇게 차곡차곡 내면에 쌓여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어줍니다.
세 번째 시선: 보이지 않는 생명력
겨울의 진정한 의미는 땅속 깊이 숨어 있는 생명력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이 죽은 듯 보이지만, 실은 가장 강렬하게 살아있는 시간. 뿌리는 더 깊이 내리고, 씨앗은 때를 기다리며, 생명은 침묵 속에서 자신을 단련합니다.
"묵묵히 시간의 무게를 견딥니다"라는 구절은 제게도, 독자에게도 주는 메시지입니다. 우리 삶에도 겨울 같은 시기가 있습니다. 그때 필요한 것은 조급함이 아니라 인내와 믿음입니다.
마지막 시선: 희망의 씨앗
시를 마무리하며 가장 고민했던 부분입니다. 진부한 희망의 메시지가 되지 않으면서도, 독자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문득 스며든 아침 햇살 하나"는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작은 빛 한 줄기에서 시작되는 희망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다시 깨어날 희망의 씨앗을 품고"로 끝맺은 것은 겨울이 끝이 아니라 준비의 시간임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견디는 이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으며, 반드시 봄은 온다는 자연의 약속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시어 선택에 대하여
이 시를 쓰며 특별히 신경 쓴 것은 과도한 수식을 피하는 것이었습니다. 겨울의 본질은 군더더기 없는 간결함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고르듯", "아늑히", "묵묵히" 같은 부사들은 겨울의 고요함과 내면성을 강조하기 위해 선택했습니다.
또한 "스치다", "드러내다", "갈아입다", "녹이다", "쌓이다", "견디다", "품다" 같은 동사들은 모두 능동적이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말들입니다. 겨울의 차가움 속에서도 생명의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독자에게
이 시가 추운 겨울날,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겨울을 지나고 있습니다. 그 시간이 춥고 외롭더라도, 그 안에서 발견하는 작은 온기들을 놓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 견디고 있는 이 시간이 헛되지 않으며, 반드시 봄은 온다는 것을 기억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겨울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소중한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