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 국립수목원(원장 임영석)이 국내 주요 풍혈지를 대상으로 지속적인 생물상 조사 및 생태 연구를 수행한 결과, 풍혈지가 기후위기 시대 생물다양성 보전의 핵심 거점임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풍혈지는 여름철에도 지하에서 차가운 공기가 흘러나오는 독특한 지형으로, 일반 산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희귀·특산식물과 기후민감종이 살아가는 특별한 서식처다. 이러한 자연 냉각 시스템 덕분에 북방계 식물들이 남쪽 지역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생태적 피난처 역할을 하고 있다.
1,204종 자생종 중 희귀·특산식물 143종 서식
국립수목원의 조사 결과, 현재까지 확인된 풍혈지 자생종은 총 1,204종에 달한다. 이 가운데 ▲희귀식물 82종(월귤, 흰인가목 등) ▲특산식물 61종(병꽃나무, 백운산원추리 등) ▲북방계 식물 212종(돌단풍, 야광나무 등)이 포함되어 있어 풍혈지의 생태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우리나라 대표 풍혈지인 밀양 얼음골은 무더운 여름에도 얼음을 관찰할 수 있는 곳으로, 여름철 한낮에 풍혈지 내부와 외부의 온도가 20~30도까지 차이를 보인다. 이곳에서는 총 236종의 식물이 조사되었으며, 이 중 희귀식물 8종, 특산식물 13종, 북방계식물 37종이 포함되어 있다.
꼬리말발도리 등 국가적색목록 취약종도 서식
밀양 얼음골에서 발견된 꼬리말발도리는 우리나라 희귀·특산식물이면서 국가적색목록 취약종(VU)으로 등재되어 보호가 시급한 식물이다. 또한 주저리고사리는 기후변화에 민감한 북방계식물로, 풍혈지가 기후변화 적응을 위한 중요한 서식처임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발견은 풍혈지가 단순한 관광 명소를 넘어 생물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생태계임을 증명하는 것으로, 체계적인 보전 관리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탐방객 증가로 생태계 훼손 우려 확산
그러나 최근 풍혈지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탐방객 증가에 따른 생태적 훼손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탐방로 붕괴, 무분별한 출입과 식물 채취 등으로 인해 식물군락이 실제 감소한 사례가 보고되었다.
의성·진안·정선 등지에서는 풍혈지 생태계의 퇴보가 나타나고 있어 즉각적인 보전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희귀식물과 특산식물의 서식지가 훼손될 경우 복원이 매우 어려워 선제적 보호 조치가 시급하다.
밀양 얼음골 여름철 풍혈지 내외부 온도차는 20~30도나 된다. 국립수목원 제공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지정 추진해 체계적 관리
국립수목원은 이러한 훼손을 막기 위해 ▲출입 제한 및 보호구역 설정 ▲정밀조사 및 모니터링 강화 ▲생태해설 프로그램 강화 등 체계적 관리 방안을 마련했다. 풍혈지가 지닌 '생물서식지'와 '경관 자원'이라는 이중적 특성을 균형 있게 고려한 관리 전략이다.
아울러 생태적 가치가 뛰어난 풍혈지를 대상으로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절차를 추진하고 있으며, 지역별 맞춤형 보전 전략 수립을 위해 조사와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임영석 국립수목원장은 "풍혈지는 이상고온 등의 기후변화에서 생물다양성을 보전할 수 있는 중요한 생태적 피난처이자 아직 보고되지 않은 생물종들이 서식하고 있는 생물다양성의 보고"라며 "지속적인 연구와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미래세대를 위한 산림자원을 보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기후변화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풍혈지는 생물종들이 기온 상승에 적응할 수 있는 마지막 피난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며, 이에 대한 과학적 연구와 보전 정책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