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날 — 사세보, 바다와 철도의 하루
아침은 선내 사우나에서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욕탕 창밖으로 부서지는 파도가 보였다. 물속에서 몸이 풀리자, 바다 위라는 사실이 새삼 벅차게 느껴졌다.
이날은 자유여행. 오무라 선을 따라 JR 철도를 타고 치와타 역으로 향했다. 작은 역 앞에는 조용한 바닷가가 펼쳐져 있었고, 파도 소리는 가만히 시간을 늘려주는 듯했다. 한참을 바다를 바라보다가 사세보 시내로 돌아와 다운타운 투어를 이어갔다.
오무라 선을 따라 치와타 역으로 달리는 열차.
점심은 나가사키 짬뽕과 우동 사이에서 고민 끝에 딸이 미리 찜해둔 라멘집에서. 세 종류의 라멘을 시켜 서로 국물을 나눠 맛봤다. 진한 돈코츠, 간장 베이스, 매콤한 미소 라멘까지, 그 풍미의 차이를 느끼는 재미가 쏠쏠했다.
사세보에 왔으니 文明堂 카스테라도 빼놓을 수 없었다. 분메이도 카스테라는 일본 나가사키를 대표하는 명물 중 하나. 17세기 에도 시대에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일본에 전한 카스텔라(Castella)가 원형인데, 분메이도는 1900년대 초 나가사키에서 창업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부드럽고 촉촉하며 녹진한 계란 향, 윗면의 진한 갈색 껍질이 은은한 단맛과 구수함을 더한다.
워킹 네비게이션을 따라 총본점까지 걸어가니, 이미 많은 한국 여행객들이 포장백을 양손에 들고 나오는 모습. 발걸음을 옆으로 옮겨 우리는 라멘의 아쉬움을 ‘빅맨’에서 사온 큼지막한 사세보 버거로 달랬다. 오번가 쇼핑몰에서는 아내가 쯔유와 몇가지 일본 식재료를 사들고 나왔다.
마지막 밤 — 바다 위의 축제
저녁에 다시 배로 돌아오니 갈라 디너가 기다리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반짝이는 크리스털 글라스와 은빛 커틀러리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전채로는 부드럽게 익힌 훈제 연어가 레몬 딜 소스와 함께 나와, 혀 위에서 은은한 향을 남겼다. 이어진 수프는 구운 호박의 달콤함과 크리미한 질감이 어우러져, 입안을 따뜻하게 데웠다.
잠시 후, 메인 코스인 스테이크가 등장했다. 겉은 바삭하게 구워진 갈색빛 크러스트, 안쪽은 미디엄 레어로 고운 분홍빛을 품고 있었다. 버터에 향을 입힌 아스파라거스, 허브로 향을 살린 로스트 포테이토, 그리고 발사믹 글레이즈를 뿌린 구운 채소들이 색감과 풍미를 더했다.
마무리로, 진한 다크 초콜릿 무스와 라즈베리 퓌레가 올려진 디저트가 테이블에 놓였다. 부드럽고 농밀한 초콜릿의 쌉싸래함이 식사의 끝을 깔끔하게 장식했다.
밤이 되자 대공연장에서는 ‘세계의 댄싱 뮤직 콘서트’가 막을 올렸다. 브라질 삼바, 아르헨티나 탱고, 스페인의 볼레로, 인도의 볼리우드 댄스, 프랑스의 캉캉 같은 경쾌발랄한 스텝이 무대 위를 수놓았다. 리듬이 바뀔 때마다 조명도 변했고, 관객석은 박수와 환호로 들썩였다.
밤이 되자 대공연장에서는 브라질 삼바, 아르헨티나 탱고, 스페인의 볼레로, 인도의 볼리우드 댄스, 프랑스의 캉캉 같은 경쾌발랄한 스텝이 무대 위를 수놓았다.
‘세계의 댄싱 뮤직 콘서트'를 기다리고 있는 대공연장.
마지막 밤의 아쉬움은 생맥주의 거품과 함께 사그라졌다. 항구로 돌아가면 일상으로 복귀해야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나는 알았다.
크루즈 모드란, 목적지가 아니라 그 사이를 만끽하는 여행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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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후반이 되면, 인생은 종종 ‘크루즈 모드’로 접어든다. 이 항해에는 전쟁도, 폭풍도, 죽음의 레이스도 없다. 대신, 바람의 결을 느끼고 창문 너머로 스치는 풍경의 색을 음미할 시간이 있다.
크루즈 모드의 삶은 멈춤이 아니다.
속도를 줄이지만, 항해를 멈추지 않는다.
목적지가 아니라, 항해 그 자체에서 기쁨을 찾는 시기. 바람은 여전히 불고, 바다는 여전히 깊다.
그리고 그 위에서, 사람들은 웃고, 이야기하고, 오래된 꿈의 잔향을 들려준다.
인생의 크루즈 모드는, 어쩌면 젊은 날보다 더 깊이 있는 바다를 보여준다.
그 바다는, 서두르지 않아도 도착할 수 있는,
그리고 도착한 후에도 여전히 떠날 수 있는 바다다.
내 삶도 별일 없으면 순항 모드일 것이다. 가끔 역경이 찾아오겠지만 이 또한 시간과 함께 지나갈 것이다.
크루즈 모드의 삶은 멈춤이 아니다. 인생의 크루즈 모드는, 어쩌면 젊은 날보다 더 깊이 있는 바다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