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바위 등정에서 하강 준비를 하는 '청산암벽산악회'. 용재욱 제공
“우리는 자연의 일부다. 자연과 함께하는 삶은 자연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 우리를 위한 것이다.”
2000년 창립 이후 ‘청산암벽산악회’를 이끌어온 용재욱 대장의 지론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주말마다 인수봉, 선인봉, 설악산을 오르며 자연 속에서 자신을 단련해온 수십 년의 실천에서 나온 결론이다.
절벽 위에서 배우는 겸손과 도전
암벽등반은 단순한 체력 단련이 아니다. 매 순간 발끝과 손끝으로 바위를 짚으며 균형을 잡는 과정은 곧 삶의 축소판이다. 돌발 상황을 맞아 돌아가야 할 때도 있고, 정면 돌파로만 해결되는 길도 있다. 회원들은 “바위에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자연의 흐름을 읽고 호흡을 맞출 때 오히려 길이 열린다”고 말한다. 자연은 도전하는 이에게 겸손을 가르치고, 협력하는 이에게만 정상의 감격을 허락한다.
절벽마다 마주치는 고비를 넘어서는 과정은 인생 그 자체다. 주도면밀한 끈기와 대담한 도전, 그리고 무엇보다 자만심을 버리고 동료와의 배려와 협동에 몰입하는 시간이다.
'티롤리안 트래버스(tyrolean traverse)'로 협곡을 건너는 모습. 용재욱 제공
회원들이 자주 선보이는 '티롤리안 트래버스(tyrolean traverse)' 기법을 보면 그들의 경험과 기술을 실감할 수 있다. 로프 하나에 몸을 맡기고 골짜기와 골짜기 사이를 건너는 모습에서 스릴과 함께 인생의 성취감이 느껴진다.
몸과 마음을 살리는 ‘건강 암벽등반’
청산암벽산악회 회원들은 대부분 60대 후반. 그러나 수십 년을 바위와 함께한 이들은 여전히 날렵하다. 손끝과 발끝을 총동원해 전신 근육과 관절을 쓰는 암벽등반은 일반 운동보다 몇 배의 효과를 준다. 노화 방지와 치매 예방에도 탁월하다는 게 회원들의 체감이다.
특히 매주 서대문 안산 암장에서 무료로 열리는 등반 교육은 ‘안전한 장비 사용법’부터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걷는 법’까지, 몸과 마음을 동시에 단련하는 건강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일부 근육만 과도하게 쓰는 생활 습관에서 벗어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통해 신체 전체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다.
용재욱대장(왼쪽)과 청산암벽산악회원들이 울산바위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용재욱 제공
울산바위에서 만나는 ‘자연의 경이로움’
오는 26일, 회원들은 '청산암벽산악회 설악산 울산바위 나들이'에 나선다. 암벽인들의 로망이자 성지인 그곳에서 오랜 수련의 성과를 점검하고, 대원 간 협업의 끈도 다진다. 울산바위의 변화무쌍한 날씨와 지형은 매번 긴장과 집중을 요구한다. 하산길 또한 낙석과 험한 지형을 대비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두려움과 고통을 넘어 섰을 때만 맛볼 수 있는 희열이 있다. 그것이 바로 암벽등반의 진정한 매력이다. 단순히 정상에 오르는 성취감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다시 성장하는 경험이다.
자연은 협력하는 자에게만 정상의 등정의 감격을 허락한다. 용재욱 제공
자연과 함께하는 목표, 행복의 비밀
청산암벽산악회원들은 “목표를 갖고 사는 것은 행복”이라고 말한다. 이번 울산바위 등정 역시 단순한 등산이 아니라 ‘행복한 목표’다. 자연은 늘 변하고, 그 안에서 인간은 늘 배운다. 발끝으로 바위를 딛는 순간, 인간은 자연과 하나가 된다. 그것이야말로 암벽등반이 선물하는 삶의 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