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바위 전망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청산암벽산악회' 용재욱 제공

청산암벽산악회는 해마다 한 번 이상 설악산을 찾는다. 이제 60대 후반이 된 우리 회원들에게 설악산 암벽 등반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삶을 성찰하는 의식과도 같다. 올해 우리는 울산바위 정상부를 가로지르는 '나드리 길'을 향해 나섰다. 허가받은 전문 산악인만이 오를 수 있는 그 길은 수십년 호흡을 맞춰 암벽을 탄 우리에게도 여전히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14시간이 넘는 험난한 여정

새벽 다섯 시, 설악동 숙소에서 출발했다. 계조암을 지나 울산바위 능선이 시야에 들어오자, 거대한 바위는 오늘의 시련을 예고하듯 우뚝 서 있었다.

좁은 바위굴을 기어가며 몸을 낮추는 순간부터 본격적인 나드리 길이 시작됐다. 팔꿈치와 무릎은 바위에 부딪히고 흙먼지가 옷에 묻었다. 마치 특공대가 어둠 속을 뚫고 침투하는 기분이었다.

첫 출발 하강을 하는 김미자(67) 대원

좁은 바위굴 크롤링, 밧줄 확보 후 바위 점프 등 고난도의 구간이 이어져 암벽등반은 '무인도 탐험''영화 인디아나존스와도 같은 영화 속 장면'에 비유되기도 한다.

정오 무렵에는 허공을 옆으로 건너는 암릉 '트래버스' 구간이 우리를 시험했다. 밧줄 하나에 몸을 맡긴 채 한 발자국씩 옮길 때마다 발아래는 아득했다. 그러나 서로의 로프를 확인해주고 격려하는 목소리가 두려움을 지워주었다.

김옥자(64)대원이 트래버스 구간을 건너고 있다.

오후에는 바위 사이를 뛰어넘는 구간과 좁은 굴을 연속으로 통과해야 했다. 땀과 흙이 온몸에 묻었지만, 그 속에서도 웃음이 터졌다. 고난 속에서 오히려 즐거움이 피어났다. 끊임없이 훈련하고 암벽타기를 연구해 온 결과이기도 하다.

믿음과 협력으로 이뤄낸 안전 등반

이번 나드리 길 등반에는 총 5명의 회원이 참가했다. 용재욱(69), 김미자(67), 김광면(67), 오형진(66), 김옥자(64)가 그 주인공들이다.

나드리 길은 기어가는 좁은 동굴과 건너 뛰는 아슬아슬한 구간이 많다.

암벽등반에서는 선등자와 후등자를 정하고 도전해야만 서로 호흡을 잘 맞추고 안전한 등반을 할 수 있다. 이번에는 필자가 선등자 역할을 맡았고, 김미자 회원이 선등자의 안전을 확보하는 확보자 역할을, 김광면 회원이 후등자로 따르며 마지막에 안전장비를 회수하는 중요한 임무를 담당했다.

선등자는 루트를 개척하며 앞서 나가지만, 확보자 없이는 한 발자국도 안전하게 나아갈 수 없다. 특히 위험한 트래버스 구간에서는 확보자의 세심한 로프 조작이 생명줄과 같았다. 마지막 장비 회수자 역시 다음 등반자들의 안전을 위해 꼼꼼히 장비를 점검하며 회수하는 책임을 다했다.

팀을 이끌며 먼저 오르는 선등자와 안전 장비를 회수하며 따르는 후등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나이를 넘어선 도전 정신

석양이 골짜기를 붉게 물들일 무렵, 우리는 마침내 나드리 길의 끝에 닿았다. 14시간 넘는 여정이었지만 낙오자도, 부상자도 없었다. 모두가 손을 맞잡고 환호했다.

정상에서 필자는 잠시 명상에 잠기기도 했다. 발아래로 펼쳐진 설악산의 웅장한 산세와 오늘 하루 겪었던 온갖 시련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소감을 동료들과 나누었다.

명상을 하고 있는 청산암벽산악회 용재욱 대장

"연꽃은 진흙에서 피어요. 행복은 고통에서 피어요. 지혜는 번뇌에서 피어요.

변화는 슬픔에서 피어요. 고통을 지혜와 자비로 탈바꿈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도망가지 않으면 고통보다 더 훌륭한 스승이 없어요."

동료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우리가 겪은 극한적인 체력 소모와 두려움을 걷어낸 용기는 바로 그런 의미였다는 것을, 모두가 가슴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60대 후반의 나이에도 이런 험난한 길을 완주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개인의 체력 때문이 아니었다.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팀워크, 그리고 각자의 역할에 대한 책임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수십년 쌓은 훈련과 팀워크로 울산바위 등정에 성공한 '청산암벽산악회'

나드리 길에서 우리가 얻은 것은 정상 정복의 성취감만이 아니다. 인생의 황혼기에도 여전히 도전할 수 있다는 용기, 그리고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도 함께라면 해낼 수 있다는 지혜였다.

설악산은 늘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또다시 그 부름에 응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