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양식의 미라벨궁전은 화려한 정원과 함께 로맨틱한 장소로 유명하다. 조태영 제공
유럽을 향한 첫 발걸음,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미라벨궁전 앞에 섰다. 정원으로 들어서는 순간, 눈앞의 풍경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다가왔다. 계단과 분수, 조각상과 꽃길이 펼쳐지자 귀에서는 익숙한 선율이 들려오는 듯 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OST Do-Re-Mi (도레미송)이다.
60여 년 전, 이곳에서 촬영된 사운드 오브 뮤직의 ‘도레미송’은 지금도 여전히 미라벨 정원의 공기 속에 살아 있었다. 아이들이 계단을 뛰어오르던 장면, 줄리 앤드루스가 환하게 웃던 순간이 바람결에 겹쳐 보였다. 영화는 단순히 스크린 위에 머물지 않았다. 그것은 장소의 운명을 바꾸고, 세대를 넘어 울림을 남겼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날개 달린 천마 '페가수스' 조각상
영화가 만든 성지, 미라벨 정원
1606년 잘츠부르크 대주교 볼프 디트리히 폰 라이테나우가 연인을 위해 지은 미라벨궁은 오랫동안 바로크 예술의 정수를 간직한 건축물이었다. 하지만 세계적 명소로 발돋움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바로 한 편의 영화였다. 사운드 오브 뮤직 이후, 이 정원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팬들의 순례지가 되었고, 페가수스 분수 앞에서 사진을 남기며 “줄리 앤드루스가 서 있던 자리”라 속삭이는 사람들의 행렬이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탁월한 로케이션 선택은 영화에 현실감을 불어넣었고, 영화는 정원에 영원의 생명을 부여했다. 위대한 영화와 위대한 장소가 만들어낸 공생의 순간이었다.
명작의 힘은 스크린을 벗어나 삶 속으로 스며드는 데 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이 1965년 3월 미국에서 첫 개봉된 이래, 한국에서도 여러 차례 재개봉을 거치며 세대를 초월한 감동을 이어온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사랑과 가족, 자유를 향한 용기라는 보편적 메시지는 시대가 달라져도 여전히 관객의 마음을 두드린다.
미라벨 궁전과 그 정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영화유산과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미라벨궁
미라벨 정원의 의미는 영화적 향수에만 머물지 않는다. 잘츠부르크 도시는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선정 이유는 명확했다. 바로크 건축의 조화로운 집합, 모차르트의 고향이라는 문화사적 가치, 그리고 알프스의 풍경과 어우러진 탁월한 경관적 아름다움. 미라벨궁과 정원은 이 세 가지 가치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단순한 영화 배경지를 넘어 인류가 지켜야 할 유산의 일부로 인정받았다.
여행객이 “현장에 서 있으니 저절로 도레미송이 흥얼거려졌다”고 말했듯, 미라벨 정원은 여전히 영화의 감성과 역사의 무게가 공존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스크린 속 환상이 현실의 풍경과 만나는 곳, 그리고 예술과 유산이 조화를 이루는 자리.
미라벨 정원은 오늘도 도레미송의 선율과 함께 우리에게 속삭인다.
명작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위대한 장소는, 그 기억을 영원히 간직한다.
미라벨 정원은 다양한 종류의 꽃을 심어 예술작품처럼 꾸며 놓았다.
특히 한국 관객에게 사운드 오브 뮤직은 더욱 특별하다. 1965년 첫 개봉 이후 무려 여섯 차례나 재개봉된 외화로, 세대를 이어 가족이 함께 즐긴 ‘국민 뮤지컬 영화’였기 때문이다. 미라벨 정원에 울려 퍼진 멜로디가 세월을 넘어 한국 관객의 마음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까닭은, 바로 이 작품이 가진 시대를 초월한 감동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