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빛이 완연한 부산 사상구 낙동강변 삼락생태공원이 꽃과 나무, 그리고 사람으로 가득 찼다. 흙냄새가 스미는 바람을 따라 걸음을 옮기면 자연이 말을 건다.
16일 개막한 ‘2025 부산가든쇼’는 부산의 첫 지방정원인 삼락생태공원에서 펼쳐지는 녹색 축제다.
부산 사상구가 주최하고 부산도시공사와 부산은행 등 지역 기관과 기업이 함께한 이번 행사는 ‘정원도시 부산’을 향한 선언이자 시민참여형 생태문화축제다.
행사는 오는 19일까지 나흘간, 삼락생태공원 연꽃단지 일원에서 진행된다.
올해부터는 기존 ‘부산정원박람회’에서 이름을 바꾸며, ‘정원’의 의미를 보다 생활 속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취지를 담았다.
이번 가든쇼에는 지역 시민작가들의 참여가 돋보였다.
“자연 속 안식처에서, 도시의 미래를 보다”
주차장이 협소해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하라는 안내에 따라 부산역에서 지하철을 두번 환승해 부산김해경전철 괘법르네시떼역에 내렸다. 하지만 역사에는 그 어떤 가든쇼 안내판도 없었다. 무작정 공원방향으로 걸어가 공원입구 엘리베이터에 내리니 그제서야 안내원이 왼쪽으로 가라고 했다. 오른쪽으로 가면 부산 전국체전 럭비경기장이라고 했다.
아침에 제법 많은 비가 내려 오전 11시로 예정됐던 개막식은 취소됐다. 행사 관계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가운데 행사장 한켠에서는 저지대의 물을 퍼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일부 시민 정원작품은 물에 잠길 듯 했다.
늘 그렇듯 정원 박람회는 잘 차려진 한식 정식 밥상같다. 어느 것부터 먹을지 망설여지는 밥상처럼 정원 박람회를 가면 "무엇부터 볼까"라는 선택장애에 걸리고 만다. 그러면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혹은 발길가는데로 가는 편이다.
기업과 시민이 함께 만든 ESG 녹색정원
멀리 ESG 기업동행정원 배너를 보고 그쪽으로 발을 옮겼다. 부산도시공사, LG전자, 부산조경협회 등 7곳의 후원으로 만든 정원이다. 이들 작품들은 낙동강 하구의 습지와 철새 도래지, 수생식물 군락을 주제로 한 지속가능한 녹색경관을 선보였다.
맨먼저 만난 작품은 부산조경협회 김용희, 김성완 작가의 '공간경험 물가'란 작품이었다. 행사장인 삼락생태공원이 낙동강변임에 착안해 낙동가 물가 풍경들을 정원에 담았다. 둥근 길을 따라 걷는 순간 일곱가지 물가의 이야기가 차례로 펼쳐져 마치 강의 흐름속을 함께 거니는 착각이 들게 한다. 작가는 이 여정이 단순한 산책을 넘어 자연과 삶을 잇는 사유의 길이 되기를 소망한다고 했다.
옆에는 김지은, 안주현 작가(한국수자원공사)의 '세 물, 시간을 품다'란 작품이 기다렸다. 밝은 지혜의 기억을 품은 과거와 실아 숨쉬는 생태의 현재, 그리고 수자원공사가 펼쳐갈 미래를 하나의 흐름으로 잇는 공간이라고 했다. 강을 따라 이어지는 그린 네트워크는 자연과 도시, 그리고 인간을 잇는 길이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윤빈 작가(LG전자)의 작품 '마빈글라스 정원'는 해양도시 부산의 정체성과 투명한 빛의 이미지를 담아냈다. 바다의 물결과 유리의 반짝임을 공간 속에 구현해 빛과 바다가 어우러진 부산 앞바다의 윤슬을 보여준다.
발길 잦은 서울 정원...겸재 정선의 '사계산수도첩'을 재해석
서울 정원 '선의 풍경'을 시공한 이주은 작가가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발길은 서울시가 부산시와의 교류차원에서 출품한 '선의 풍경'이란 작품에 닿았다. 산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압권이었다.
조경업을 하며 전국 정원박람회는 꼭 찾아 다닌다는 한 관람객은 "이번 가든쇼 최고의 작품'이라며 엄지척을 했다.
서울시립대 김영민 교수가 설계하고 정원작가 이주은 씨가 조성한 이 정원은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의 수묵화 ‘사계산수도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작품은 수묵화 특유의 선을 지형으로 옮겨, 한강변의 곡선과 언덕, 정자의 형태를 정원 안에 담았다.
돌과 식물이 마치 붓의 획처럼 이어져 있고, 곳곳에 흰 자갈길이 ‘여백의 미’를 완성한다.
서울의 한강과 부산의 낙동강이 정원으로 이어지며, 도시 간의 상징적 교류를 시각화했다.
작품을 시공한 이주은 작가(공간이오 대표)는 "외부에서 흙이나 나무 등 어떤 것도 보태거나 반출하지 않아야 한다는 설계자의 뜻을 따르는데 고충이 있었다"면서 "다행히 공원에 버드나무들이 있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역 시민작가들의 작품을 관람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시민이 즐기는 생활 속 정원문화
이들 전문 작가들의 작품 외에도 시민참여 정원들도 눈길을 끌었다.부산대, 동아대, 경남정보대, 동래원예고, 한국마스터가드너협회 등에서 참여했다.
저명 정원작가들을 초청해 시민들과 함께 꾸려가는 '정원 토크쇼'도 부산가든쇼를 빛냈다. 첫날 이주은 작가의 토크쇼에는 70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해 경청했다.
이번 가든쇼는 단순히 전문가의 전시회가 아니라,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생활형 축제로 기획됐다.
행사 기간 동안 ▲가든 음악회 ▲가든 요가·필라테스 ▲생태 녹색관광 체험 ▲꼬마화가 그림 한마당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주말에는 가족 단위 관람객이 몰리며 삼락생태공원은 그야말로 ‘녹색 놀이터’로 변신한다.
아이들은 풀잎을 만지고 꽃잎을 그리며 자연과 가까워지고, 어른들은 도시의 피로를 내려놓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