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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파트
서울시 신축 아파트 10곳 중 9곳에서 실내 공기질이 권고 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나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5일 서울시의회 환경수자원위원회 국민의힘 이봉준 의원(동작1)이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실내 공기질 검사를 받은 44개 신축 아파트 단지 중 38개 단지(86.4%)가 권고 기준을 초과했다.
세대수로는 259세대 중 154세대(59.5%)가 기준치를 넘겼으며, 이 중 114세대는 재검사에서도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이는 지난해(31.5%)와 비교해 거의 2배 수준으로 악화된 수치다.
톨루엔·라돈, 주요 유해물질로 지목
검사 결과 가장 많이 검출된 유해물질은 톨루엔(128개소)과 라돈(40개소)으로 나타났다.
톨루엔은 페인트, 접착제, 벽지, 바닥재 등 각종 건축자재에서 발생하는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이다. 단기 노출 시 두통, 어지럼증, 구토, 눈·코·목의 자극 증상을 유발하며, 장기간 노출되면 중추신경계 손상, 간 및 신장 기능 저하, 청력 손실 등 심각한 건강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임산부가 노출될 경우 태아 발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일부 주택에서는 권고 기준치(1,000㎍/㎥)의 5배가 넘는 5,400㎍/㎥가 검출되기도 했다.
라돈은 토양, 암석, 콘크리트 등에서 자연 발생하는 무색·무취의 방사성 가스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로, 폐암 발병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흡연자가 라돈에 노출될 경우 폐암 발병률이 급격히 증가한다. 라돈은 지하층이나 1층에서 주로 검출되지만, 건축자재나 지하수를 통해 상층부에서도 발견될 수 있어 전 세대 관리가 필요하다.
신축 아파트 실내 공기질 악화 원인으로 건축자재에서 발생하는 화학물질 등 다양한 요인이 있다.
신축 아파트, 왜 공기질이 나쁜가
전문가들은 신축 아파트의 실내 공기질 악화 원인으로 여러 요인을 지목한다.
첫째, 건축자재에서 발생하는 화학물질이다. 벽지, 페인트, 접착제, 바닥재, 가구 등에 사용되는 화학물질들이 완전히 휘발되지 않은 상태에서 입주가 이뤄지면서 톨루엔, 폼알데하이드, 벤젠 등 유해물질이 실내에 축적된다.
둘째, 에너지 효율을 위한 고기밀 구조다. 최근 아파트들은 에너지 절약을 위해 기밀성을 높인 설계를 채택하는데, 이로 인해 자연 환기가 어려워지면서 실내 오염물질이 배출되지 못하고 농축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셋째, 공사 기간 단축으로 인한 충분하지 않은 환기 기간이다. 건설사들이 공사 일정을 맞추기 위해 마감 직후 바로 입주를 진행하면서, 건축자재에서 발생한 유해물질이 충분히 제거되지 않은 상태로 입주민들이 이사를 오게 된다.
넷째, 지하 주차장과 연결된 구조적 문제다. 지하 주차장의 자동차 배기가스나 토양에서 올라오는 라돈이 승강기, 계단실 등을 통해 각 세대로 유입될 수 있다.
청년임대주택은 더 심각
상황은 청년층이 주로 거주하는 임대주택에서 더욱 심각했다. 역세권 청년주택, 청년안심주택 등 올해 9월까지 검사받은 15개 임대주택 단지 전부(100%)가 기준을 초과했으며, 72세대 중 61세대(84.7%)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됐다.
전문가들은 임대주택의 경우 일반 분양주택보다 저렴한 자재를 사용하거나 공사 기간이 촉박한 경우가 많아 실내 공기질 관리가 더욱 취약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현행 제도, 강제성 없어 실효성 의문"
문제는 현행 제도가 실효성이 없다는 점이다. 현재 '환경보건법' 및 '실내공기질 관리법'에 따르면, 신축 공동주택은 입주 전 실내 공기질 측정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기준 초과 시 시공사에 개선 조치를 '권고'할 뿐 법적 강제력이 없다. 또한 입주 지연에 따른 페널티나 재검사 비용 등을 우려해 시공사들이 적극적으로 개선에 나서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봉준 의원은 "청년층을 포함한 입주민들이 건강을 위협받고 있는데도 현행 제도는 권고에 그칠 뿐 강제성이 전혀 없다"며 "기준 초과 시 입주 연기 의무화, 과태료 부과, 개선 비용 시공사 부담 등 법적 규제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청년임대주택의 경우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공공이 발주하는 만큼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는 친환경 건축자재 사용 의무화, 입주 전 최소 환기 기간 설정, 지속적인 사후 관리 체계 구축 등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서울시는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실내 공기질 개선을 위한 종합 대책을 마련하고, 정부에 관련 법령 개정을 건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