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열린 한국종합기술 초청 세미나에서 테마파크를 주제로 열강중인 김혁 테마파크공작소 대표.


가을 햇살이 부드럽게 스며든 지난 5일, 서울 상일동 한국종합기술 2층 교육장은 잠시 현실을 벗어난 상상의 공간이 되었다. 테마파크 컨설턴트 김혁 테마파크공작소 대표의 목소리는 놀이기구의 굉음 대신, ‘이야기와 상상력’이라는 단어로 가득 찼다.
“테마파크는 놀이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실험하는 공간입니다.”
그의 말은 현실의 도시를 ‘상상의 도시’로 바꾸는 주문처럼 들렸다. 한 장의 설계도 위에 꿈을 그리고, 기술과 스토리가 어우러진 세계를 상상하는 시간—그곳에서 우리는 테마파크가 단지 유희가 아니라 ‘미래 산업의 시(詩)’임을 깨닫게 되었다.

통영관광개발공사 사장을 역임한 김 대표는 "테마파크는 단순히 놀이기구를 돌리는 곳이 아니라, 소비가 놀이가 되는 실험실"이라며 청중을 웃기고, 놀라게 하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번 세미나는 한국종합기술 60주년과 조경레저부 창립 40주년을 맞아 국내 조경인들의 자기개발을 위해 마련됐다. 이날 세미나에는 한국종합기술 임직원은 물론 외부 전문가와 업계 관계자 등 70여 명이 참석해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진 강연에 귀를 기울였다.

국내 테마파크 권위자인 김 대표는 "놀이공원 관람객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실험자"라고 말한다.


소비를 놀이로 바꾸는 실험실

"놀이공원에 가면 관람객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실험자입니다. 줄을 서서, 뛰어다니며, 먹고, 사는 모든 행동이 하나의 실험이죠."

김 대표는 테마파크의 본질을 '소비의 전환'으로 정의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의 팝콘 판매량이 일본의 한 도시 전체보다 네 배나 많은 이유도 여기 있다. 배고픔이 아니라 즐거움을 소비하는 것이다.

그는 테마파크 방문객을 두 부류로 구분했다. 새벽부터 달려와 놀이기구만 타는 '스릴 매니아'와 아이나 손주를 따라온 '패시브 스트롤러'. 흥미로운 건 후자의 객단가가 전자보다 4~6배 높다는 사실이다.

"테마파크의 경제는 '누가 놀고 누가 지불하는가'를 정확히 읽는 데서 출발합니다."

통영의 '기피랑' 프로젝트에서는 LED 장난감 매출이 입장료의 절반을 넘긴 적도 있다. 놀이공원의 부가상품은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라 감정의 촉매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던 세미나장.


테마파크는 도시를 살리는 엔진

그는 "테마파크란 단순한 오락산업이 아니라 지역경제의 촉매제"라고 주장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로스트 월드'는 폐금광을 관광단지로 전환해 유럽과 미국의 보석상을 유치했고, 그 결과 GDP가 2.1%나 상승했다. 도시재생의 성공 모델이다.

일본 하우스텐보스는 물 부족이 없는 지역임에도 중수도 시스템을 구축했다. '환경을 사랑하는 도시'라는 스토리로 방문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그 데이터는 일본 60개 도시에 판매됐다. 테마파크가 환경산업의 테스트베드가 된 셈이다.

"테마파크는 놀이시설이 아니라 하나의 실험 도시입니다. 고용을 만들고, 기술을 실험하고, 문화를 확산시키는 복합 플랫폼이죠."

이번 세미나는 한국종합기술(KECC) 60주년과 조경레저부 40주년을 기념해 5주간에 걸쳐 개최한다.


상상력과 스토리텔링의 힘

그는 이어 "테마파크는 결국 이야기로 완성된다"는 주장을 폈다.

김 대표는 부산 해운대 LCT 개발 당시 "잠수함 타고 가는 수중 레스토랑을 만들자"고 제안했다가 "미친 소리"라는 반응을 들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두바이 버즈 알아랍 호텔에는 실제로 잠수함 시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레스토랑이 있다.

"사람들은 진짜 바닷속에 들어왔다고 믿어요. 그 환상을 파는 게 바로 테마파크의 상상력이죠."

그는 설문대할망(제주도 신화에서 제주도를 만들었다고 하는 거인형 여신)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미국 감독이 이를 모티프로 영화를 만들어 돈을 벌었지만, 한국은 민속설화로만 두었다. 같은 문화자산이라도 시각을 바꾸면 세계적인 IP(Intellectual Property·지식재산권)가 된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테마파크의 상상력은 결국 문화산업의 상상력과 일치하는 것이다.

김 대표는 최근 테마파크의 트렌드는 영상, 로봇, 진동, 향기까지 결합된 '감각의 시대'가 열렸다고 주장한다.


기술이 스토리를 만날 때

최근 테마파크 트렌드는 '하이브리드화'다. 단순한 회전·낙하 중심의 놀이기구 시대는 끝났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영상, 로봇, 진동, 향기까지 결합된 '감각의 시대'가 열렸다.

디즈니의 '에베레스트 롤러코스터'는 철길이 끊어진 설정 하나로 스릴을 극대화한다.

해리포터 라이드의 좌석 뒤에는 로봇 암이 달려 있다. 로봇이 관객을 움직이며 스펙터클을 연출한다. 테마파크는 기술을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기술이 이야기를 연기하는 무대라는 것이다.

테마파크 산업은 자동차 다음으로 로봇을 많이 쓰는 산업이다. AI는 단순 운영을 넘어 고객의 행동을 예측하고 맞춤형 체험을 설계하는 수준까지 진화했다.

도쿄 디즈니랜드 공연장면. 김 대표는 "수도권 대형 테마파크의 시장성은 있지만 대형 IP 의존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한국 테마파크의 길

강연 뒤 국내 테마파크의 시장 가능성에 대한 한 참석자의 질문에 김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희망적입니다. 한국 인구의 절반이 사는 수도권에는 세계적 규모의 테마파크는 충분히 시장성이 있습니다. 다만 대형 IP 의존은 위험합니다."

대형 IP란 레고랜드, 미키마우스, 쥬라기월드처럼 유명 캐릭터·브랜드·세계관 등 이미 대중에게 알려진 콘텐츠 자산을 뜻한다.

결국 외국 브랜드에 절대 의존하게 되면 매출액의 일정비율을 로열티로 돌려줘야 하는 구조여서 결국 운영비가 발목을 잡는다는 것이다.

반면 프랑스 '아스트릭스 파크'와 미국 '식스플래그'는 자체 스토리로 승부한다.

"미키마우스가 100년 넘게 살아남은 건 단순히 캐릭터가 아니라 이야기의 힘 때문이에요. BTS나 한류 IP는 훌륭하지만, 20년 뒤에도 유효할지는 모르죠."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정리했다.

"테마파크는 꿈을 파는 산업이지만, 그 밑에는 사람의 감정을 읽는 과학이 있습니다. 기술과 조경, 이야기와 상상력—이 모든 것이 어우러질 때 비로소 진짜 테마파크가 완성됩니다."

이번 세미나를 준비한 한국종합기술 하병규 전무는 "조경레저부 40주년이란 경사를 맞아 사내 조경레저부 직원은 물론 국내 조경인들의 발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이번 세미나를 개최하게 됐다"면서 "매주 한 차례씩 주제를 달리해 총 5번에 세미나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두번째 세미나는 14일 오후 2시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주)HEA공간디자인 이하나 연구소장이 강사로 나서 '조경설계 프로세스와 생성형 AI의 창의적 융합'이란 주제로 주제 강연을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