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 상류에 조성된 영동군 이원심천로의 캠핑장
영동 심천에 뿌리내린 캠핑장, 주말만 찾는 손님들로는 운영에 한계
금강 상류를 따라 펼쳐진 충북 영동군 심천면 이원심천로의 작은 언덕을 오르면 지난 4월 문을 연 그림 같은 캠핑장이 눈에 들어온다. 직장을 은퇴한 박범식(65) 대표가 고향 땅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다 직접 땅을 일구고 나무를 심어 만든 7개 사이트 규모의 작은 캠핑장이다. 인기 TV 프로그램 “텐트 밖은 유럽”처럼 강과 산이 어우러진 경관 덕에 주말이면 가족 단위 캠퍼들이 자주 찾고 있다.
“입소문을 타고 주말엔 만석에 가까워요. 그러나 평일은 거의 비어 있어요.” 박 대표는 현실적인 고민을 먼저 말했다. 전국에 등록된 캠핑장이 약 3,800곳에 이르지만, 이 가운데 상당수가 수익을 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캠핑 열풍 덕에 관련 시설은 늘고 있지만, 차별화된 콘텐츠 없이 주말 손님만 바라보는 운영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캠핑장 주변으로 지역문화와 자연친화적인 명소가 많다
국악·자연·이야기가 있는 체류형 명소로 ‘작은 도전’
박 대표는 이곳을 찾았던 캠핑족들의 소감과 전문가들의 컨설팅을 토대로 한계를 넘어설 방향을 찾고 있다. 작지만 강한 느낌을 주는 ‘동화 나라 같은 명소’를 만들겠다는 것이 1차 목표다. 무리한 투자 대신, 자연과 이야기가 있는 공간으로 차별화를 꾀할 계획이다. 그 시작은 그네 하나다. 금강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 나무 사이에 걸린 그네는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감성을 더하고, 캠핑의 밤을 밝히는 ‘모닥불’과도 잘 어울려 SNS 속 대표 포토 존이 됐다.
박 대표의 캠핑장은 단순한 자연 명소를 넘어선다. 바로 밑 강변에서는 다슬기를 줍고 민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 물놀이와 캠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자연 친화적인 곳이다. 또 강 건너편에는 전래동화 '금도끼 은도끼' 마을로 불리는 ‘날근이 마을’이 있다. 하늘에서 본 땅 모양이 도끼처럼 생겨 유래된 곳으로 곳곳마다 금도끼, 은도끼와 관련된 벽화나 조형물로 구성된 ‘녹색농촌체험마을’이다.
금강 줄기를 타고 국악의 장단을 따라가는 여정도 캠핑장의 차별화를 돋보이게 하고 있다. 캠핑 사이트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왕산악, 우륵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으로 꼽히는 난계 박연 선생의 생가와 사당, ‘국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의 국악을 전승하고 보전하기 위한 영동 국악체험촌이 함께 조성되어 있다. ‘얼쑤!’하는 추임새가 절로 나오는 우리 소리와 장단 익히기, 민요 따라 부르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오는 9월 12일부터 한 달간, 영동에서는 “2025 영동 세계 국악 엑스포”가 열릴 예정이라, 국악 체험과 캠핑을 함께 즐기려는 가족 단위 관광객의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아이들과 함께 국악기를 만들어 보고, 밤에는 전설도 듣고, 체험이 있는 캠핑장이 되면 훨씬 오래 기억될 거예요.” 박 대표는 천혜의 자연조건과 전래동화를 접목한 가족 단위의 연계형 프로그램도 추진하고 있다.
강건너에는 금도끼 은도끼 마을로 조성된 '날근이 마을'이 있다
전설 따라, 장단 맞춰 달리는 자연 체험 탐방로도 차별점
레포츠를 즐기는 가족들을 위한 맞춤형 관광도 실현해 보겠다는 구상도 있다. 캠핑장에서 자전거로 약 6km 거리에는 옥계리 폭포가 있다. 탁 트인 물줄기 아래에서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자연경관을 즐길 수 있는 이 폭포는 여름철 인기 명소다. 심천면에서 주말마다 대여해 주는 자전거를 타고 가족 단위 관광객은 자연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자전거 여행을 할 수 있다. 길 중간에는 영동의 대표 관광지인 ‘와인터널’도 있어, 시원한 터널 속에서 지역 와인을 시음하는 특별한 체험도 가능하다. 장차 금강 물길을 활용한 보트 체험, “금도끼 은도끼 전설”의 길 산책 등 박 대표가 기획하는 프로그램들이 자연 체험을 더욱 풍성하게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전문가들과 차별화 방법을 찾는 박범식 대표(왼쪽 두번째)
“시설보다 정성, 유행보다 지역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어요. 오래 머무는 사람이 더 많아지면, 이 마을도 더 활기를 띠겠죠.”
전국의 캠핑장이 생존 경쟁에 내몰린 지금, 박 대표의 시도는 지역성과 문화 콘텐츠가 결합한 지속 가능한 캠핑장의 모델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금강의 물소리와 천년의 전설, 국악의 장단이 어우러지면서, 조용한 마을에 어떤 변화의 풍경을 만들지 캠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