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서울 남산에서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한 폭염 속의 시내 모습. 연합뉴스

예년보다 빠른 폭염, 정부가 먼저 움직였다

올해 여름은 다르다. 7월 중순이 되기도 전에 전국이 찜통더위에 휩싸였고, 기상청은 당분간 체감온도 33℃, 일부 내륙지역은 35℃까지 오르는 무더위가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평년보다 높은 기온이 예상되는 가운데, 정부는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폭염 대책 관계기관·전문가 합동토론회'는 그 신호탄이었다. 김광용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을 비롯해 중앙부처, 지자체, 현업 종사자, 민간전문가 등 1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는 단순한 정례회의가 아니라, 폭염이라는 재난 앞에서 사회 전체가 머리를 맞댄 '총력전'의 시작을 알리는 자리였다.

김광용 재난안전관리본부장 주재로 열린 폭염 대책 관계기관·전문가 합동토론회. 연합뉴스

사각지대 없는 대응,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이번 토론회가 주목받는 이유는 참석 기관의 다양성에 있다. 재난안전연구원, 한국방재협회 같은 전통적인 재난 대응 기관부터 한국기후변화학회, 한국기상산업기술원 등 기후·기상 전문기관, 그리고 한국사회보장정보원, 중앙노인돌봄지원기관 등 사회복지 분야까지 망라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현장 근로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으려는 노력이다. 한국도로공사, 대한건설협회, 한국생활물류택배서비스협회, 전국배달업연합회 등이 참석해 폭염 최전선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실상을 전했다. 배상운 대한건설협회 실장은 "현장 근로자의 온열질환 예방을 위해 정기적인 휴식과 적절한 휴게공간 확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폭염 속에서도 땀흘리며 짐을 나르는 오토바이 배달노동자. 연합뉴스


취약계층 보호, 정책의 최우선 과제

토론회에서 가장 심도 있게 다뤄진 주제는 폭염 취약계층 보호 방안이었다. 김현미 중앙노인돌봄지원기관 센터장과 최영민 돈의동쪽방상담소 소장은 독거노인과 쪽방촌 거주자들이 높은 실내 온도와 습도로 인해 온열질환, 호흡기질환 등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현실을 생생하게 전했다.

이들 취약계층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에어컨 사용을 꺼리거나, 아예 냉방시설이 없는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 특히 독거노인의 경우 폭염 위험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 많다는 것이 현장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었다.

무더위 속의 쪽방촌. 연합뉴스


5대 기본수칙부터 무더위 쉼터까지, 촘촘한 대응망 구축

각 기관에서 발표한 폭염 대책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질적이었다. 고위험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폭염안전 5대 기본수칙' 지도점검 강화, 온열질환 취약계층 보호대책, 야외 공연·체육활동 안전대책 등이 그것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민간과의 협력 확대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4월 29일 10개 민간기업과 업무협약을 체결해 '생활밀착시설 무더위 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기존 공공시설 위주의 무더위 쉼터의 한계를 극복하고, 국민들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피난처를 제공하려는 시도다.

대통령의 특별 지시, 범정부 차원의 대응 의지

김광용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토론회에서 "대통령께서 취약계층이 폭염으로 고통을 받지 않도록 가능한 대책을 신속 집행하고, 무더위 쉼터의 점검을 강조하셨다"며 최고 지도부의 관심과 의지를 전했다. 이는 폭염 대응이 단순한 부처별 업무가 아니라, 국가 차원의 우선순위 정책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부평소방서119구급대원들이 폭염 대비 물품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후변화 시대, 새로운 재난 대응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이번 토론회는 단순한 폭염 대책 논의를 넘어, 기후변화 시대 재난 대응의 근본적 패러다임 전환을 보여주는 분기점이다. 과거 재난 대응이 사후 복구와 임시방편에 치중했다면, 이제는 예방 중심의 선제적 대응, 취약계층 보호, 그리고 사회 전체의 협력을 통한 지속가능한 대응 체계 구축이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환경을 활용한 혁신적 해법들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국환경공단과 국토안전관리원이 이번 토론회에 참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도시 열섬현상 완화를 위한 녹지 확충, 빗물 활용 시스템 구축, 친환경 건물 설계 등 자연 기반 해법(Nature-based Solutions)이 폭염 대응의 새로운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환경을 활용한 스마트 대응, 지속가능한 해법의 열쇠

전문가들은 이번 토론회를 통해 환경 친화적 폭염 대응 방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존의 에어컨 가동 증대나 임시 냉방시설 설치 등 에너지 집약적 대응책은 오히려 온실가스 배출을 늘려 장기적으로는 폭염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는 공공주택 단지 내 스마트 그린 인프라 구축 사례를 발표하며, 수직정원, 옥상녹화, 투수성 포장재 활용 등을 통해 단지 내 온도를 2-3℃ 낮추는 효과를 얻었다고 보고했다. 이는 단순히 냉방비를 절약하는 차원을 넘어, 도시 전체의 열환경을 개선하는 근본적 해법이라는 평가다.

한국환경공단 역시 도시 물순환 시스템과 연계한 자연 냉각 방안을 제시했다. 도시 하천 복원, 빗물 저장 시설 확충, 투수성 포장재 확대 등을 통해 도시 전체의 수분 순환을 활성화하고, 이를 통한 자연 냉각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안이다. 이러한 접근은 폭염 대응뿐만 아니라 도시 홍수 방지, 대기질 개선 등 다중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현장 근로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정책에 반영하려는 노력도 '위에서 아래로' 내려보내는 기존 정책 방식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배달업, 건설업, 운송업 등 폭염에 직접 노출되는 업종 종사자들의 경험과 제안이 정책 수립 과정에서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자연 기반 해법의 실제 적용, 도시 곳곳에서 효과 입증

환경을 활용한 폭염 대응 방안은 이미 실제 현장에서 그 효과를 입증하고 있다. 한국농어촌공사는 농촌 지역 저수지와 수로 시설을 활용한 미기후 조절 시스템을 소개했다. 기존 농업용 수리시설을 활용해 주변 온도를 낮추고, 농촌 마을의 열섬현상을 완화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도시 지역에서는 한국전력공사와 한국에너지공단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그린 에너지 통합 관리 시스템'이 주목받고 있다. 태양광 패널에 식물을 결합한 '아그리볼테익(Agrivoltaics)' 시설, 건물 외벽 녹화를 통한 자연 냉각, 지열을 활용한 냉방 시스템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시설들은 에너지 생산과 동시에 주변 온도를 낮추는 이중 효과를 제공한다.

특히 한국환경공단이 발표한 '도시 바람길 조성 프로젝트'는 도시 전체의 열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도시 외곽의 차가운 공기가 도심으로 자연스럽게 유입될 수 있도록 건물 배치와 녹지 조성을 계획적으로 설계하는 것이다. 이는 인공적인 냉방 시설에 의존하지 않고도 도시 전체의 온도를 낮출 수 있는 지속가능한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속가능한 폭염 대응, 환경과 기술의 융합이 답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토론회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지속적인 소통과 협력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더 나아가 환경을 활용한 자연 기반 해법과 첨단 기술의 융합이 미래 폭염 대응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극한 기상현상이 일상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폭염 대응은 이제 여름철 한시적 과제가 아니라 연중 준비해야 할 상시 업무가 되었다. 특히 에너지 소비를 늘리는 기존 대응 방식에서 벗어나, 자연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지속가능한 해법 개발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기후변화학회 관계자는 "앞으로의 폭염 대응은 단순히 더위를 피하는 것을 넘어, 도시 환경 자체를 변화시키는 근본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자연 기반 해법과 스마트 기술의 융합을 통해 에너지 효율성과 환경 친화성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100여 기관 전문가들이 모여 찾은 해법들이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할지는 앞으로의 과제다. 하지만 폭염이라는 재난 앞에서 사회 전체가 하나의 목소리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한 것만으로도, 이번 토론회는 충분한 의미를 갖는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이 여름, 정부와 지자체, 민간기업과 시민사회가 함께 만들어가는 폭염 대응 체계가 얼마나 견고하고 효과적인지 시험대에 오른다. 그 결과는 곧 우리 사회의 재난 대응 역량을 보여주는 척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