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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과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이 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제3차 고위당정협의회 결과 및 정부조직 개편 방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2025.9.7 uwg806@yna.co.kr
환경부가 설립 45년, 부 승격 31년 만에 환경에 더해 에너지 정책까지 맡으면서 기후위기 컨트롤타워로 거듭날 전망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정책 추진에 속도가 날 것이라는 기대와 환경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서 본령을 잃을 수 있단 우려가 함께 나온다.
◇ 자원산업·원전수출 제외 에너지 부문 산업부서 환경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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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당정은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 부문 중 자원산업과 원자력발전 수출을 제외한 부분을 환경부에 넘겨 환경부를 '기후에너지환경부'로 확대 개편하겠다고 발표했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날 관련 브리핑에서 "탄소중립은 국가 차원 과제로서 강력한 컨트롤타워의 중요성이 강조돼왔지만, 현행 분산된 체계로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실질적 총괄이 어렵다는 평가를 받아왔다"면서 "일관성 있고 강력한 탄소중립 정책을 추진하고자 기후에너지환경부로 개편하겠다"고 말했다.
누구나 기후변화를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극한 기상현상이 반복되고 이에 기후변화를 완화할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이 '국가적으로 가장 중요한 일'이 되면서 기후 정책을 담당하는 부처에서 에너지 정책도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온실가스 배출량 대부분이 에너지 생산과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산업 부문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작년 온실가스 배출량 6억9천158만t(잠정치)의 31.5%(2억1천830만t)는 발전 등 에너지를 생산하는 영역인 '전환 부문', 41.3%(2억8천590만t)는 산업 부문에서 배출됐다.
그간 환경부 안팎에서는 야심 찬 기후 목표를 세우려 해도 산업부라는 벽에 막힌다는 지적이 많았다.
앞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과 11차 전기본을 세울 때 환경부와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가 전원 구성에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라고 요구했지만, 산업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기후 정책과 에너지 정책을 한 부처가 맡게 하자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다.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2021년 부총리급 기후에너지부 신설을 제안했다.
이번 22대 국회에서도 환경부를 기후에너지환경부로 확대하는 법안 1건과 환경부 기후탄소정책실과 산업부 에너지정책실을 합쳐 기후에너지부를 신설하는 법안 3건 등이 이미 발의됐다.
◇ OECD 38개 회원국 중 '기후·에너지' 통합은 17개국 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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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제주시 한경면 신창리 해상 풍력단지. 한국남부발전풍력센터
다만 한 부처가 기후 정책과 에너지 정책을 모두 담당하는 것이 세계적으로 '절대적 대세'라고 하기는 어렵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기후, 환경, 에너지를 한 부처에서 맡는 국가는 14개국이다. 기후와 에너지는 한 부처가 담당하나 환경은 별도 부처가 맡는 경우는 덴마크·네덜란드·영국 등 3개국이다.
기후·환경 또는 기후와 에너지를 한 부처가 맡는 경우가 OECD 회원국 절반에 못 미치는 것이다.
나머지 21개국은 환경과 기후를 담당하는 부처와 에너지 담당 부처가 분리돼있다.
기후환경에너지부에 찬성하는 쪽은 영국 사례에 주목한다.
영국은 작년 9월 30일 마지막 남은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면서 주요 7개국 중 처음으로 '탈(脫)석탄'에 성공했는데 '에너지안보·탄소중립부'(DESNZ)라는 기후·에너지 통합 부처의 강력한 정책 집행이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국회미래연구원은 5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영국과 덴마크, 독일, 네덜란드 등 4개국에서 기후와 에너지 정책을 모두 담당하는 부처 신설 후 5년간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률이 평균 18%로 부처 신설 전 5년간(평균 5%)보다 크게 높아졌다고 밝혔다.
기후환경에너지부를 우려의 시선으로 보는 쪽에선 독일을 주목한다.
독일은 현 정부 들어 연방경제기후보호부(BMWK)에서 기후변화 대응 기능을 분리하고 '연방경제에너지부'(BMWE)로 되돌렸다.
독일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는 BMWK가 '처음 설계부터 잘못됐다'면서 기후와 산업을 한 부처에서 맡으면 두 영역 모두에서 전문성을 잃는다는 취지로 지적했다.
◇ 기업·정부 개발사업 통제할 부처가 '진흥' 맡았단 비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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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에너지환경부를 두고도 비슷한 우려가 나온다.
규제 부처로서 역할도, 에너지 산업 진흥 부처로서 역할도 제대로 못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가 각종 개발사업을 추진할 때 환경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서 환경부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정부는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를 전국 산업 거점에 공급하기 위한 대규모 전력망인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 사업을 추진 중인데, 이런 사업의 경우 앞으로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사업 주체이면서 사업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주체가 될 전망이다.
현재도 개발사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최소화하는 '환경영향평가제'를 두고 환경부의 협의 동의율이 90%를 넘어 유명무실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환경부가 스스로 주체인 사업의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수행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많다.
문재인 정부 때 '물관리 일원화'에 따라 물 업무 전반을 맡게 된 환경부가 윤석열 정부 때 댐 신설을 추진한 것이 기후에너지환경부가 '환경부로서 본령'을 잃었을 때 미래를 보여준다는 분석도 있다.
기후와 에너지, 물 분야에 부처의 역량이 집중되면서 '자연', '자원순환' 등의 영역은 등한시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환경부 내에서도 나온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모순된 역할'을 해야 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예컨대 최근 여름마다 전기요금 누진 구간을 완화해 부담을 줄여주는 일이 반복되는데,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이 일을 맡으면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도록 유도해야 하는 부처가 전기를 부담 없이 사용하도록 돕는 꼴이 될 수 있다.
산업계에서는 기후에너지환경부가 규제에만 초점을 맞춰 '에너지 정책을 통한 산업 진흥' 역할이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런 우려는 여당 내에서도 거세게 쏟아지고 있다.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환경부 주요 기능은 기후변화 대응, 환경 보존을 위해 기업과 다른 부처 정책을 규제·통제하는 것"이라면서 "이런 부처에 에너지 산업 육성 기능을 추가하는 것은 물과 기름을 섞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