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중 대표는 "목재는 자연이 아니라 자원"이라며 적극적 활용을 강조한다.
숲은 말이 없다. 그러나 나무는 긴 세월을 품으며 인간에게 휴식과 주거공간을 내어준다. 누군가는 나무에서 그늘을, 누군가는 먹거리를 얻기도 한다. 김경중 ㈜에이치 대표는 그 속에서 새로운 길을 보았다. 그는 나무를 사랑했고, 그 나무에서 사람과 산업을 살리는 부를 창출하고자 애써왔다.
그는 목재를 ‘자연’이 아니라 ‘자원’임을 강조한다. 다른 선진국처럼 목재를 적극적으로 쓰는 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라는 것이다.
세종시 소정면 소정산단8로 96에 있는 연구소 겸 공장으로 그를 만나러 가는 여정은 쉽지 않았다. 그의 빠듯한 다음 일정을 감안해야 해서 새벽부터 서둘러야 했다.
대나무 가공재를 활용한 다양한 제품을 소개하는 김경중 대표
그는 홍콩에서 13년간 전자·IT 사업을 했었다. 귀국 후 지인의 권유로 목재 산업을 접하게 됐다.
“처음엔 ‘누가 1차 산업을 하겠는가’라는 생각에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직접 보니 가능성이 있더군요. 국산 목재의 활용 가치를 깨닫는 순간, 이 분야야말로 도전할 이유가 충분했습니다.”
그는 국산 목재가 수입산에 밀려 활용되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서 도전 의욕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보다 늦게 뛰어든 목재 사업은 녹녹치 않았다. 초창기 수익도 나지 않고, 투자자와의 갈등도 심했다. 특히 그는 맥빠지게 만든 것은 다른 데 있었다.
“국산 목재를 조달 시장에 올리려다 규제에 막혀 산림청과 조달청을 상대로 2년 가까이 싸우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협회를 만들고 제도 개선에 뛰어들면서 제 업계 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그는 동업 관계에서 갈등이 깊어지면서 “내 색깔대로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래서 2015년 충북 음성에 공장을 세우고 지금의 ㈜에이치티를 설립했다.
이후 충남대 기술지주와 협력하면서 본사를 대전에 두고 연구·개발 중심 회사로 체질을 바꿨다. 하지만 인생은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2017년 충북 음성 공장이 전소되면서 회사에 큰 위기가 닥쳤다.
“빚은 늘고, 당장 생존이 어려웠죠.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은행과 기관을 찾아다니며 대출을 받고, 산림청 현대화 지원사업에도 선정돼 기계를 새로 들였습니다. 무엇보다 특허를 기반으로 한 신용 대출을 받으면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때 ‘기술이 곧 생존’이라는 걸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어반톡 이형철 대표(왼쪽)와 인터뷰 하고 있는 김경중 대표.
이후 회사는 끊임없이 연구하고, 신제품을 개발하는 회사로 탈바꿈했다. 목재회사로는 드물게 지금까지 50여 건의 특허를 확보했고, 연구소를 운영하며 새로운 목재 활용 방안을 실험하고 있다. 이런 개발 역량이 ㈜에이치티를 업계에서 차별화시키는 가장 큰 힘이 되고 있다.
신생 조경·환경 미디어 어반톡㈜ 이형철 대표와 김 대표와의 인터뷰는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다음은 그와 나눈 주요 일문일답이다.
- 협력사와의 관계에서도 차별적인 철학을 갖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네. 저는 독점보다는 상생을 택합니다. 저희가 가진 특허를 협력사에도 개방해 공동 개발할 수 있게 하고, 대신 저희 원자재를 쓰는 조건만 두죠. 그래야 업계 전체가 건강하게 커집니다. 혼자서는 한계가 있고, 네트워크를 통해 파트너를 아군으로 만드는 것이 더 지속가능하다고 봅니다.”
- 경제학을 전공하셨다가 목재공학 박사까지 하신 걸로 유명합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현장에서 산림청, 학계와 부딪히며 제도 개선을 하다 보니 기술적 지식이 절실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경제학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던 거죠. 그래서 충남대에서 목재공학 박사 과정을 시작했고, 무려 7년이 걸렸습니다. 지금은 기술적 근거를 바탕으로 정책 토론이나 강의에 참여할 수 있어 보람을 느낍니다.”
- 현재 집중하고 있는 연구 과제는 어떤 것이 있나요?
“국산 대나무를 활용한 신소재 개발과 프리미엄 활성탄 국산화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거제도와 담양에 질 좋은 대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대나무는 열처리를 거치면 강도가 높고 친환경적입니다. 이를 조경 시설물, 장작, 인테리어 자재로 개발하고 있습니다. 또 활성탄은 수입에 의존하는 품목인데, 이를 국산화해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김경중 대표가 어반톡 관계자들에게 목재 가공 공장을 설명하고 있다.
- 우리나라 산림 정책과 목재 이용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우리나라는 산림 조림에는 성공했지만, 목재 이용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환경단체는 벌목을 무조건 나쁘게 보지만, 목재는 ‘자연’이 아니라 ‘자원’입니다. 경제림과 절대 보전림을 구분해 합리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선진국처럼 목재를 적극적으로 쓰는 나라가 진정한 산림 선진국이라고 생각합니다.”
- 앞으로의 비전과 목표는 무엇입니까?
“국산 목재와 대나무의 가치를 높여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도약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동시에 국민 인식도 바꾸고 싶습니다. 목재는 썩어서 불편한 존재가 아니라, 가장 친환경적이고 순환 가능한 재료입니다. 교육, 연구, 산업이 함께 어우러져야 비로소 우리 산림 산업도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김 대표는 인터뷰 후 공장을 보여줬다. 목재 공장답지 않게 구석구석 청결했다. 제품화 과정에서 나오는 비산 목재 가루를 처리하는 강력한 환기시스템이 가동중이라고 했다. 목재를 증기로 찌는 설비는 직접 만들었다고 했다. 목재를 증기로 찌면 강해진다는 얘기를 들으니 갑자기 옛날 무협지에서 읽은 내용이 갑자기 떠올랐다. 박달나무를 여러 번 쪄서 만든 목검은 칼처럼 단단하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