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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제비갈매기. 국립생태원 제공
전 세계에 100여 마리만 남은 멸종위기 철새 뿔제비갈매기의 새로운 번식지가 전남 영광군 인근에서 발견돼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발견으로 인해 해상풍력발전 사업에 예상치 못한 제약이 생기면서 재생에너지 개발과 생태계 보전 간 조화 방안을 찾는 것이 과제로 떠올랐다.
'신비의 철새' 뿔제비갈매기, 새 번식지 발견
뿔제비갈매기의 새로운 번식지가 작년 5월 전남 영광군 육산도 인근 무인도에서 확인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뿔제비갈매기는 화려한 머리깃을 가진 대형 바닷새로 '신비의 철새'로 불린다. 워낙 개체 수가 적어 생태에 대해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중국의 불법 알 채집, 태풍에 의한 둥지 소실, 해양오염에 따른 부화율 저하 등으로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해 있으며, 현재 전 세계에 남은 개체는 100여 마리에 불과하다.
그동안 확인된 번식지는 한국 전남 영광군 육산도와 중국 지우산섬·우즈산섬, 대만 마주섬·펑후섬 등 총 5곳에 그쳤다. 육산도에는 매년 6~8마리가 찾아와 번식하고 있다.
추적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된 새 서식지
새로운 번식지는 2016년부터 매년 육산도를 찾아오던 개체 'K00'과 'K11' 부부의 행방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산란기가 지났는데도 이 부부가 육산도에서 보이지 않자, 환경부 국립생태원, 경희대 한국조류연구소, 바닷새연구소 공동 연구진이 인근 섬을 샅샅이 뒤져 근처 무인도에서 이들을 찾아낸 것이다.
발견 당시 부부는 괭이갈매기 무리 속에서 알을 품고 있었으나 번식에는 실패했다. 다행히 이 부부는 올해 육산도로 돌아가 둥지를 틀고 알을 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해상풍력 사업에 예상치 못한 제약
새로운 뿔제비갈매기 번식지 발견은 학계에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재생에너지 업계에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되고 있다. 특히 두산에너빌리티의 자회사인 두산지오솔루션이 9,800억 원을 투자해 이 무인도 일대에 발전용량 160MW 규모의 해상풍력발전단지를 건설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다.
두산지오솔루션은 사업을 그대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작년 11월 제출했던 환경영향평가서 본안을 올해 4월 철회했다. 환경영향평가서 본안 제출은 건설 착수 직전 단계로, 계획대로였다면 올해 첫 삽을 뜰 예정이었다.
회사 관계자는 현재 발전단지 규모를 축소하거나 건설 예정지를 변경하는 등 뿔제비갈매기 번식에 영향을 주지 않는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올해 3월 공포된 해상풍력법이 사업 경제성 측정을 위한 신규 풍황계측기 설치를 원칙적으로 금지해 선택지가 제한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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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갈매기 무리 속에서 포란 중인 뿔제비갈매기 부부. 국립생태원 제공
생태 보전과 재생에너지의 상생 방안 모색
전문가들은 뿔제비갈매기의 번식 패턴과 이동 경로 등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발전사업자와 정보를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하고 있다.
한 생태학자는 "사업자가 필요로 하는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한다면 재생에너지 사업과 생태계 보전이 함께 갈 수 있을 것"이라며 상생 방안의 가능성을 시사했다.이번 사례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재생에너지 확대와 멸종위기종 보호라는 두 가지 중요한 환경 이슈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섬세한 과제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향후 과학적 데이터에 기반한 합리적 해법 도출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