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대구시 공원녹지포럼이 끝난 뒤 포럼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추상적 경고가 아니다. 도시 한복판에서 체감되는 폭염과 미세먼지, 국지성 호우는 시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며 일상의 균형을 흔든다. 공원과 도시숲이 새롭게 조명되는 이유다.
대구시와 (사)대구경북조경협회(회장 황영도)가 25일 대구서구 문화회관에서 개최한 제7회 대구시 공원녹지포럼은 바로 이 논의를 본격적으로 다룬 자리였다. ‘기후 변화에 적응한 공원과 녹지’를 주제로 열린 이번 포럼에서 전문가들은 도시의 공원이 단순한 휴식 공간을 넘어 기후 위기 대응의 핵심 인프라임을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개회사를 하는 (사)대구경북조경협회 황영도 회장
엄정희 경북대 교수(산림과학조경학부), 박진욱 계명대 교수(생태조경학과), 서정희 대구경북조경협회 부회장, 박정아 대구시 산림녹지관리과 팀장 등 발표자들은 과학적 데이터와 해외 사례,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며 대구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구체적으로 짚었다.
이들의 발표는 도시의 미래와 공원의 존재 이유를 새롭게 정의하는 중요한 메시지로 울려 퍼졌다. 4인의 발표 내용을 5가지 소주제별로 모아봤다.
1. 도시 기후 위기와 녹지의 역할
기후위기의 파고는 도시 공간에서 가장 먼저 감지된다. 공원과 도시숲은 단순한 휴식처가 아니라 도시 생존을 떠받치는 환경 인프라로 부상한다.
첫 발표자로 나선 엄정희 경북대 교수는 기후위기의 현실을 과학적 데이터로 풀어냈다. 그는 “플라타너스 한 그루의 냉각 효과가 건물 그늘보다 훨씬 크다. 여의도 광장을 숲으로 바꿨을 때 지표면 온도가 5도 이상 낮아졌다”고 말하고 “기후 관점에서 나무 한 그루는 조경이 아니라 기후위기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도시숲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미세먼지를 걸러내며, 시민들의 심리적 안정에도 기여한다”면서 “우리가 마시는 공기와 체감하는 온도, 나아가 정신적 건강까지 공원이 책임지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서정희 대구경북조경협회 부회장은 도시의 위기를 ‘불평등의 문제’로도 해석했다. 그는 “기후 변화는 누구에게나 영향을 주지만, 그 피해는 사회적 약자에게 더 크게 다가온다. 회복 탄력성을 키우려면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자연과 공존하는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후적응형 자연기반해법(NBS)은 단순한 환경 개선책이 아니라 우리의 생존 전략”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2. 녹색 인프라로서의 도시 설계 혁신
기후 적응의 성패는 설계에 달려 있다. 공원의 크기, 바람길, 수관 피복률 같은 지표는 도시의 열환경을 결정한다. 해외 사례는 설계와 제도가 결합할 때 공원이 진정한 기후 대응 인프라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엄 교수는 실제 대구 도심의 공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시뮬레이션 결과를 소개했다.
“공원의 크기가 클수록 냉각 거리가 길어지고, 수목 피복률이 높을수록 기온 저감 효과가 뚜렷합니다. 수관 피복률(TCR)이 30%를 넘으면 비용 대비 효과가 급격히 좋아지고, 70%에 도달하면 도시 전체에 체감 가능한 시원함을 줄 수 있습니다.”
그는 “와룡산에서 흘러내리는 바람길을 지키는 것은 단순히 숲을 보존하는 일이 아니라, 대구의 온도를 낮추는 생태적 통풍구를 유지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박진욱 교수는 일본 오사카 ‘우메키타 공원’ 사례를 통해 설계와 제도의 융합을 보여주었다. 그는 “우메키타는 도심 한가운데 조성된 대규모 공원인데, 민관 협력과 금융 제도가 결합해 장기간 추진되었고, 방재 기능, 생태 복원. 경제적 효과까지 동시에 담아냈다”라며 “주목할 점은 그 효과를 수치로 시각화해 시민과 투자자 모두에게 이해시키고 설득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구도 기후 적응형 공원을 설계할 때, 공간적 가치뿐 아니라 경제성과 사회적 편익을 함께 보여주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대구시의 담장 허물기 운동으로 2018년 당시 22년간 30.1km의 담장이 사라지고 36만8천260㎡의 가로공원을 조성하는 효과를 거뒀다.
3. 시민과 함께 만드는 적응력
기후 적응은 전문가와 행정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시민이 직접 참여하고 체감할 때 효과는 배가된다. 시민 거버넌스는 기후 변화 대응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열쇠다.
서 부회장은 시민을 기후 적응의 ‘주체’로 규정했다. 그는 “행정과 전문가가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워도 시민이 참여하지 않으면 지속될 수 없다. 옥상 녹화, 마을 단위 정원 가꾸기 같은 작은 실천이 쌓여야 도시 전체의 회복력이 커진다”면서 “시민이 기후 적응의 주체가 되는 순간, 공원과 녹지는 단순한 시설이 아니라 공동체의 자산이 된다”고 역설했다.
박정아 팀장은 “대프리카라는 단어가 생겨날 만큼 무더웠던 대구는 1996년부터 푸른대구가꾸기 사업으로 5,400만 그루 나무를 심은 결과 여름철 최고 낮 기온을 최대 1.3도 내리는데 성공했다”며 “고교 교과서에도 소개된 담장허물기 사업은 당시 시민단체의 협력과 시민들의 참여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담장허물기, 옥상녹화 등 당시로서는 혁신적 사업을 펼쳐 전국적인 모범사례를 제시한 이같은 지역사회 녹화운동 성공에는 민관 협력 거버넌스 구축이 반드시 필요했다”고 강조했다.
4. 문화·교육 자원으로서의 녹지
공원은 기후 대응의 기능적 공간을 넘어 문화와 교육의 장이 된다. 계절을 느끼고 역사를 기억하는 체험은 도시 정체성을 만든다.
박 팀장은 산림청이 탄소 흡수원 증진 실행으로 정원 조성을 포함시킨 것에 주목했다. 그는 “정원이 단순히 녹지 확장을 넘어 국민 삶의 질 향상, 지역 경제 활성화, 환경 생태적 가치 증진에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병원, 도서관과 같은 공용 시설 안에 실내 정원을 조성하여 녹색 생활 공간과 탄소 흡수원을 확충합니다. 인구 감소 지역에는 시내 정원을 조성함으로써 정주 여건 개선과 지역 활력도 상승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박 교수는 우메키타 공원이 경제적·사회적 효과를 동시에 창출한 사례를 설명했다.
“공원이 들어선 뒤 부동산 가치가 상승했고, 시민 건강이 개선되며 의료비가 줄었으며, 관광객 유입과 지역 자부심까지 높아졌습니다. 이는 공원이 단순한 녹지가 아니라 도시를 움직이는 엔진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는 이어 “숲과 공원이 문화와 경제, 교육의 플랫폼으로 기능할 때 도시의 미래는 훨씬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엄 교수는 공원의 문화적 가치를 짚었다. 그는 “캠퍼스 숲길을 거닐며 학생들이 사계절을 체험하는 모습, 국채보상운동 기념공원이 시민들에게 지역의 정체성을 환기시키는 모습은 단순한 조경의 차원을 넘어선다. 공원은 문화와 역사, 교육을 담아내는 무대”라고 말했다.
5. 정책·제도 혁신과 미래 비전
조성만큼 중요한 것은 관리다. 제도적 장치와 재원 마련 없이는 공원의 효과는 반감된다. 정책·거버넌스의 혁신이 기후 적응 도시의 미래를 좌우한다.
박 교수는 제도와 재원 문제를 언급하며 “우메키타 공원에 국책은행까지 참여할 수 있었던 건, 경제적 효과를 수치로 입증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공원의 가치와 편익을 명확히 제시한다면 민간 투자와 금융 자본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서 부회장은 거버넌스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자연 기반 해법을 제도와 정책 안에 녹여내야 한다. 단기적 성과에 머물지 말고, 장기적 기후 적응 정책으로 뿌리내릴 때 공원과 녹지는 진정한 미래 자산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엄 교수는 냉정한 현실을 지적했다. 그는 “대구·경북은 헥타르당 관리 예산과 인력이 전국 최하위다. 관리가 부실하면 공원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결국 시민의 신뢰를 잃게 된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