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초등학교 학생들이 김길수 회장의 나무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 김길수 제공
전남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마을 입구를 지키고 선 수령 600년의 느티나무 아래로 화순군 천태초등학교 학생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퍼졌다. 조용하던 마을 당산(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던 언덕이나 성역)은 순식간에 아이들의 놀이터로 변했다. 뙤약볕에서 일하던 마을 어르신들은 오랜만에 들려오는 아이들의 청량한 웃음소리에 이끌려 정자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소나무가 느티나무를 찾아간 까닭
이날 특별한 할아버지가 아이들과 함께했다. 사단법인 한국정원조경연합회 김길수 공동연합회장(필명 목공[木公])이다. 조경 전문가이자 수필가인 그는 아이들에게 나무의 의미를 전하기 위해 600년 느티나무를 찾았다.
그는 '목공(木公)'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소나무 송(松)자의 획을 풀어 만든 이름으로, 광주마을학교 최봉익 교장이 "소나무가 지닌 철학을 전수하라"며 지어주었다. 소나무처럼 꼿꼿하게, 그리고 오래도록 자리를 지키며 삶의 가치를 후세에 전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소나무'라는 아호까지 가진 그가 왜 소나무가 아닌 느티나무를 찾았을까. 소나무의 곧은 절개 못지않게, 사람들을 모으고 그늘을 드리우며 공동체를 지켜온 느티나무의 포용력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서이다. 혼자 우뚝 서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라는 느티나무들의 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다.
대초리 느티나무의 오랜 역사를 전해주고 있는 김길수 회장. 김길수 제공
할아버지들의 '아주 오래된 나무 이야기'
왁자지껄하던 아이들이 학교 지도 선생님의 안내로 느티나무 아래에 모였다. 심드렁하던 표정은 대초리 이장 할아버지가 정자나무 이야기를 시작하자 사뭇 달라졌다.
자연을 의인화하고 좋아하는 시기의 아이들에게 느티나무는 이미 '할아버지 나무'였다. 마을 이장 할아버지와 느티나무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들이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에 아이들은 귀를 쫑긋 세웠다. 나무가 자신이 살아온 오랜 역사를 직접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느티나무는 한글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이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소나무 할아버지 김 길수 회장도 입을 열었다. "여러분이 사용하는 한글이 1446년에 태어났으니, 이 나무는 그보다 훨씬 더 오래전부터 여기 있었던 거죠."
그저 '큰 나무'였던 존재가 '역사의 증인'으로 다가온 순간, 아이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느티나무의 모습은 결코 완벽하지 않았다. 허리는 굽었고, 옹이는 썩어 검버섯이 피어 있었다. 병과 해충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주암댐이 생기며 마을이 이주할 때도 홀로 그 자리를 지켰던 나무는 세월의 무게를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무는 여전히 푸른 잎을 자랑하며 넓은 그늘을 만들어냈다. 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 나누는 공간이 되어주었다.
"나무의 주름진 껍질과 상처 하나하나가 모두 이야기입니다." 소나무 할아버지의 설명이 이어졌다. "마을에 기쁜 일이 있을 때도, 슬픈 일이 있을 때도 이 나무는 묵묵히 그 자리에서 지켜봤어요."
"이 나무가 마을보다 먼저 이 자리에 있었는지, 마을과 함께 태어났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나무가 우리 마을의 터줏대감이라는 거죠." 이장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소나무 할아버지의 설명이 곁들여진다. "옛날에는 이런 나무 밑이 마을의 중심이었어요.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다투기도 하고, 또 화해하기도 했죠. 요즘으로 치면 마을회관이자 공원이고 놀이터였던 셈입니다."
느티나무는 괴목(槐木), 규목(槻木), 귀목(櫷木)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모두 신령스러움의 뜻을 담고 있다. 사람들을 모으고, 갈등을 해소하며, 공동체를 하나로 이어주는 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느티나무는 우리 삶에 보배 같은 존재입니다." 소나무 할아버지의 목소리에는 어느덧 힘이 실렸다. "살아서는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 같은 숲이 되고, 죽어서는 아름다운 무늬를 지닌 가구가 되어 우리 곁에 머물러요. 자연과 인간은 따로 떨어진 게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겁니다."
처음엔 학교 밖 수업이라는 설렘에 들떠 있던 아이들이었다. 정작 나무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표정이 진지해졌다. 바람에 느티나무 가지가 흔들렸다. 마치 아이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것 같았다.
느티나무 아래에서의 생태교육은 자연과의 공존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김길수 제공
마음속에 심어진 씨앗
"아이들이 당장 모든 걸 이해하지는 못할 겁니다." 김길수 회장은 당산나무 아래에서의 교육 이후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 때의 경험은 마음 한구석에 씨앗으로 남을 거예요. 나중에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이 느티나무처럼 묵묵히 견뎌내는 힘이 되어줄 겁니다."
그는 조오현 스님의 시 '고목 소리 들으려면'을 떠올렸다. 속살은 썩고 가지는 부러졌지만,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는 고목의 모습이 600년 느티나무와 닮아 있었다.
"정자에 모인 초등학교 학생들은 숲을 보고 자라며 자연을 간직한 마음을 갖게 될 겁니다." "당산나무를 보는 체험은 마음에 스며들어 훗날 회귀 본능으로 분명 돌아올 거예요. 공존하는 자연에서 숲과 인간의 공간이 따로 없다는 무형의 법칙이 존재하니까요." 확신에 찬 김회장의 말에 긴 여운으로 남는다.
600년을 산 느티나무 한 그루가 오늘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그 나무 아래를 지나간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작지만 단단한 씨앗 하나가 심어졌다. 언젠가 그 씨앗이 싹을 틔워, 자연과 공존하는 또 다른 세대를 만들어낼 것이다.
김길수의 자전 에세이 '목공(木公)의 그림자(2021년 작)' 김길수 제공
[편집자주]
이 기사는 자전적 에세이 '목공(木公)의 그림자'를 펴낸 김길수 작가가 최근 발표한 수필 '대초리 느티나무'를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평생 식물과 함께 살아온 조경 전문가이자 한국정원조경연합회 공동연합회장이기도 한 김 작가는 나무를 통해 삶을 이야기하고,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성찰하는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 '대초리 느티나무' 편은 600년을 살아온 나무가 어린 세대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담담하게 풀어내며, 세대 간의 소통과 자연 교육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느티나무는 느릅나무과의 낙엽활엽교목으로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한다. 높이 26m, 지름 3m까지 자라며 수명이 길어 마을 당산나무로 많이 심어졌다. 고급 가구재로 쓰이며, 특히 조선시대에는 최고급 목재로 대접받았다. 전국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느티나무가 다수 있으며, 대부분 수백 년의 수령을 자랑한다. 마을 공동체의 중심이자 주민들의 쉼터로 기능하며, 민간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