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곡교천 은행나무길 황금빛 가을 정취 절정
X
아산 곡교천 은행나무길. 아산시 제공.
11월의 늦가을 햇살이 따스한 오후, 충남 아산 염치읍 곡교천으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점점 노랗게 물들어간다. 멀리서부터 황금빛 물결이 일렁이는 게 보인다. 곡교천 은행나무길이다.
충무교에 다다르자 예상했던 대로 차량 정체가 시작됐다. 시 관계자의 조언대로 곡교천 야영장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은행나무길로 향했다.
이미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인파로 주차장은 만차 상태. 서울에서 왔다는 한 가족은 "SNS에서 보고 꼭 한번 와보고 싶었다"며 들뜬 표정으로 은행나무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하늘을 덮은 황금빛 캐노피
본격적으로 은행나무길에 들어서자 숨이 멎는 듯한 풍경이 펼쳐졌다. 머리 위로 황금빛 은행잎이 하늘을 가득 채우며 거대한 터널을 만들고 있다. 1973년 심어진 당시 10년생이었던 450여 그루의 은행나무들은 이제 50년의 세월을 견디며 거목이 되어 2.1km 구간을 따라 장엄한 행렬을 이루고 있다.
햇빛이 노란 잎사귀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며 황금빛 빛줄기를 만든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은행잎이 하늘하늘 떨어지고, 사람들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한 중년 여성은 "50년 전 누군가가 심어준 나무 덕분에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니, 감사한 마음"이라며 천천히 나무를 올려다본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
'전국의 아름다운 10대 가로수길'로 선정된 명소답게 평일 오후임에도 은행나무길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연인들은 손을 잡고 노란 낙엽을 밟으며 걷고, 가족 단위 방문객들은 기념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부부, 삼삼오오 모여 산책을 즐기는 어르신들,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지나가는 청년들까지, 세대를 막론한 사람들이 이 가을의 선물을 만끽하고 있다.
곡교천을 따라 이어진 길은 충무교부터 현충사 입구까지 완만하게 뻗어있다. 한쪽으론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물 소리가 들리고, 다른 한쪽으론 노란 은행잎이 카펫처럼 깔려있다. 부산에서 왔다는 사진작가는 "전국의 은행나무길을 다녀봤지만, 이곳처럼 나무가 빽빽하게 터널을 이루는 곳은 드물다"며 연신 카메라 앵글을 조정한다.
차 없는 거리로의 변신을 꿈꾸며
아산시는 현재 차량 통행이 이루어지고 있는 충무교부터 경제진흥원 구간을 2027년 충무교 확장공사에 맞춰 '차 없는 거리'로 조성할 계획이다. 지금도 차량과 보행자가 뒤섞여 다소 위험한 구간이 있는데, 전 구간이 보행 중심 공간으로 바뀌면 더 많은 사람들이 안전하게 이 아름다운 풍경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은행나무길 중간중간 벤치에 앉아 쉬어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평화롭다. 한 할머니는 떨어지는 은행잎을 손바닥에 받으며 "매년 이맘때면 꼭 찾아온다"고 말한다. 50년을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킨 은행나무처럼, 그렇게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해마다 늘어가고 있다.
서둘러야 할 시간
시 관계자는 올해 단풍이 23일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가을의 절정은 짧다. 지금 이 순간에도 황금빛 잎들이 하나둘 땅으로 떨어지고 있다.
해질 무렵, 노을이 지는 하늘과 황금빛 은행나무가 어우러지며 장관을 연출한다. 사람들은 아쉬운 듯 발걸음을 돌리지 못하고 한참을 더 머문다. 누군가는 "내년에 또 올 거예요"라고 말하지만,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움은 지금이 아니면 볼 수 없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곡교천을 따라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에 은행잎이 또 한 장 떨어진다. 50년의 시간이 선물한 이 황금빛 터널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가을 추억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