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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군 소원면 천리포수목원 설립자 민병갈 박사 흉상
국내 최초 사립수목원인 천리포수목원의 역사를 담은 기록물이 국가유산 등재를 코앞에 두고 제동이 걸렸다.
18일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문화유산위원회 근현대문화유산분과는 최근 회의에서 '태안 천리포수목원 조성 관련 기록물'의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을 보류했다.
올해 3월 등록 예고를 거쳐 각계 의견을 수렴했지만, 최종 등재 명단에 오르지 못한 것이다.
보류 사유는 '수량 불일치'
위원회는 회의록을 통해 "등록 대상 변경 요청을 반영해 해당 기록물을 재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제가 된 것은 기록물의 정확한 수량이다. 국가유산청은 기록물 수량을 '2종 각 1식'이라고만 명시했으나, 검토 과정에서 실제 수량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태안군 관계자는 "처음 신청 당시에는 기록물 수가 많지 않았으나, 이후 일괄 신청 과정에서 수량이 맞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도 "기록물 수량 확인 과정에서 오차가 발생했다"며 "신청 당시와 비교해 다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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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5월 업무일지. 국가유산청 제공
천리포수목원과 등록 대상 기록물
충남 태안반도 서북쪽 해안에 위치한 천리포수목원은 미군 장교 출신으로 귀화한 고(故) 민병갈(칼 페리스 밀러, 1921∼2002)이 1970년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수목원이다.
국가유산청이 등록을 추진했던 기록물에는 설립자 민병갈이 작성한 토지 매입 증서, 업무 일지, 식물 채집·번식·관리 일지, 해외 교류 서신 등이 포함됐다. 이 자료들은 1946년부터 1989년까지 작성된 것으로, 수목원 조성과 운영 과정을 담고 있다.
올해 등재는 사실상 불가능
이번 보류 결정으로 천리포수목원 기록물은 올해 안에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 어렵게 됐다.
'근현대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국가유산청장은 예고 종료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문화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등록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천리포수목원 기록물은 지난 4월 17일 등록 예고 기간이 끝난 상태다.
국가유산 등재를 위해서는 등록 예고와 심의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진행해야 한다.
국가유산청 측은 "관련 자료의 양이 방대해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며 "향후 재조사를 거쳐 등록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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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1975년 식물 번식 일지, 1973년 식물 관리 일지. 국가유산청 제공
강화되는 등록문화유산 검증
국가등록문화유산은 건설·제작·형성된 지 50년 이상 지난 근현대 문화유산 중 보존과 활용 가치가 특별히 인정되는 유산을 등록하는 제도다.
최근 등록문화유산에 대한 검증이 한층 엄격해지고 있다. 2005년 등록된 '진주 하촌동 남인수 생가'는 근거 자료의 신뢰성 부족으로 등록이 말소됐고, '은제이화문화병'은 왕실 유산이 아닌 일본 제품으로 밝혀져 논란을 빚었다.
올해 6월에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 포위망을 뚫고 미군을 구출하는 데 투입된 것으로 알려진 '미카형 증기기관차 129호'도 국가등록문화유산 지위를 박탈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