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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시가 문을 연 스마트경로당은 겉보기에는 여느 경로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 안에서는 눈에 띄지 않게 작동하는 인공지능(AI)이 어르신들의 일상과 안전, 건강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화재나 가스를 감지하고, 어르신의 활동 패턴을 학습하며, 프로그램 참여도까지 분석하는 이른바 ‘보이지 않는 돌봄’이다.
포항시는 15일 노인들의 생활·안전·학습을 통합 지원하는 스마트경로당을 개설하고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 시는 올해 3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기존 경로당 25곳에 스마트경로당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지난달부터 시범 운영을 거쳐 이날 공식 개소했다.
단순한 스마트화가 아닌 ‘지능화’...센서 뒤에 숨어 있는 AI
스마트경로당에는 화재·가스 감지 센서, 자동 신고 시스템, 화상 교육 시스템 등이 설치돼 있다. 표면적으로는 ‘스마트 시설’이지만, 실제 핵심은 이 데이터를 분석하는 AI 기술이다.
화재나 가스 감지의 경우, 단순히 기준치를 넘으면 경보를 울리는 방식이 아니다.
AI는 평소 경로당의 온도 변화, 취사 시간대, 환기 패턴 등을 학습한 뒤 평소와 다른 이상 징후가 포착되면 위험 상황으로 판단한다. 이를 통해 일상적인 연기나 냄새로 인한 오작동을 줄이고, 실제 위험에는 더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움직임이 줄었다”는 신호...사고를 예측하는 돌봄 기술
AI는 경로당 내 활동 데이터를 통해 어르신들의 생활 패턴도 분석한다. 출입 빈도, 체류 시간, 활동량 변화 등이 축적되면, 갑작스러운 움직임 감소나 장시간 무활동 상태를 위험 신호로 인식한다.
이는 낙상이나 건강 이상을 사전에 포착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기존의 복지가 ‘신고 이후 대응’이었다면, 스마트경로당의 AI는 ‘징후를 먼저 알아채는 복지’에 가깝다.
포항시 관계자는 “어르신이 직접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도, 시스템이 먼저 이상을 감지해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고 설명했다.
AI는 경로당 내 활동 데이터를 통해 어르신들의 생활 패턴도 분석한다. AI 생성 이미지
화면 너머에서 이어지는 수업...AI가 설계하는 맞춤형 여가
스마트경로당의 또 다른 축은 화상 시스템을 활용한 건강·여가 프로그램이다. 실버체조, 요가, 노래교실, 웃음치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정기적으로 운영되며, 여러 경로당이 동시에 연결된다.
여기에도 AI가 개입한다. 프로그램 참여율, 반응도, 출석 빈도 등의 데이터가 축적되면 AI는 경로당별 선호도를 분석해 어떤 프로그램이 효과적인지 파악한다.
이를 바탕으로 다음 달 프로그램 편성이나 시간 조정이 이뤄진다.
즉, 프로그램은 ‘일괄 제공’이 아니라 ‘경로당별 맞춤형’으로 진화하고 있다. 어르신들이 자연스럽게 더 많이 참여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버튼 대신 말로”...디지털 장벽을 낮추는 AI
고령층에게 가장 큰 장벽은 기술 그 자체다. 포항시 스마트경로당은 이를 고려해 음성 인식 기반 기술 도입도 염두에 두고 있다. 화면을 누르지 않아도 “운동 프로그램 틀어줘”, “오늘 일정 알려줘”와 같은 음성 명령으로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는 AI가 단순한 관리 도구를 넘어, 어르신과 기술을 연결하는 ‘번역기’ 역할을 하게 된다는 의미다. 디지털 복지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접근성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판단이 반영됐다.
스마트경로당은 이제 ‘노인의 쉼터’를 넘어, 지능형 생활 안전망으로 진화하고 있다. AI 생성 이미지
AI는 판단, 사람은 돌봄...‘스마트경로당 매니저’의 역할
포항시는 2026년부터 스마트경로당 매니저를 노인 일자리 형태로 배치할 계획이다. 이 매니저는 시설 관리와 프로그램 운영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AI가 데이터를 분석해 문제를 알려주면, 실제 현장에서 어르신을 살피고 소통하는 역할은 사람이 담당한다. 포항시가 지향하는 모델은 ‘AI가 사람을 대체하는 구조’가 아니라, AI와 사람이 역할을 나누는 복지 체계다.
디지털 복지의 실험장, 경로당...고령사회 대응 전략으로 확장
포항시의 스마트경로당은 단순한 시설 개선을 넘어, 초고령사회에 대비한 실험적 모델로 평가받는다. 경로당은 이미 어르신들이 가장 익숙하게 이용하는 생활 공간이기 때문에, 돌봄·건강·학습 기능을 자연스럽게 결합할 수 있는 최적의 플랫폼이다.
AI 기반 데이터는 향후 노인 복지 정책의 근거 자료로도 활용될 수 있다. 어떤 지역에 시설이 더 필요한지, 어떤 프로그램이 건강 개선에 효과적인지 등 정책 판단이 경험이 아니라 데이터에 기반해 이뤄질 수 있다.
“포항형 디지털 복지의 핵심 모델”
이강덕 포항시장은 “스마트경로당은 어르신의 여가·학습·건강·안전을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포항형 디지털 복지의 핵심 모델”이라며 “기술이 앞서는 복지가 아니라, 사람을 더 세심하게 돌보는 복지를 구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포항시의 스마트경로당은 화려한 기술을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AI를 경로당 구석구석에 배치해 어르신의 하루를 조용히 받쳐준다. 말하지 않아도 먼저 살피고, 요청하지 않아도 먼저 반응하는 공간. 스마트경로당은 이제 ‘노인의 쉼터’를 넘어, 지능형 생활 안전망으로 진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