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조경 프로젝트가 세계조경가협회 어워즈서 대상과 최우수상을 동시 석권했다. CA조경 제공
CA조경기술사사무소가 세계조경가협회(IFLA) 주관 '2025 아시아·태평양 지역 조경 어워즈(IFLA APR LA Awards 2025)'에서 두 프로젝트로 대상과 최우수상을 동시 수상하며 한국 조경계의 위상을 드높였다.
대상(Outstanding Award)을 받은 '새로운 광화문광장'과 최우수상(Excellence Award)을 받은 '세운상가 녹지축 기본계획'은 각각 '역사 보존형'과 '생태 회복형'이라는 서로 다른 접근으로 서울 도심 재생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상(Outstanding Award)을 받은 CA조경의 '새로운 광화문광장'. CA조경 제공
예기치 못한 발견, 설계의 핵심 자산이 되다
'새로운 광화문광장'은 단순한 광장 재조성을 넘어 서울의 역사적 정체성을 공간적으로 구현한 프로젝트다. 2018년 국제설계공모에서 CA조경, 유신, 선인터라인, 김영민 서울시립대 교수 컨소시엄이 제안한 '깊은 표면(Deep Surface)' 개념은 광장 표면 아래 숨겨진 역사적 층위를 드러내는 것을 핵심으로 했다.
이 개념이 가장 극적으로 실현된 공간이 '시간의 정원'이다. 2020년 10월부터 2021년 6월까지 진행된 광화문 앞 월대 복원 과정에서 예기치 않게 발견된 조선시대 사헌부 터와 배수로, 우물 등의 유구는 설계팀에게 예상치 못한 도전이었다. 공사 중단 위기로도 이어질 수 있었던 이 상황을 설계팀은 오히려 서울의 역사적 층위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핵심 공간으로 전환시켰다.
과거 흔적이 현재와 공존하는 구성으로 도심 재생의 새로운 모델로 평가받았다. 안상순 제공
지하 1.2m 깊이에 조성된 전시 공간에는 사헌부 문터와 담장, 행랑 유구가 그대로 보존됐다. 유구와 광장의 단차를 활용해 벽면에서 물이 흐르는 '시간의 벽천'을 조성하고, 그 사이로 광화문과 북악산을 조망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과거의 흔적이 현재의 광장과 공존하는 이 독특한 구성은 역사 도심 재생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광장의 물리적 구성 역시 역사성과 일상성을 동시에 담았다. 광장 시점부에서 시작되는 물길에는 조선 건국 이후 주요 사건들이 새겨져 있어 걸으면서 역사를 체험할 수 있다. 이 물길을 따라 바닥 분수, 한글 분수, 터널 분수, 명랑 분수 등 다양한 형태의 수 공간이 이어지며 여름철 도심의 열기를 식히고 시민들에게 놀이와 휴식의 장소를 제공한다.
2022년 8월 개장 이후 광화문 광장은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성우 제공
광장 서측에는 기존 5차선 도로를 전환한 도심 숲이 조성됐다. 차량 중심 공간을 시민이 머무를 수 있는 일상적 녹지로 바꾼 이 변화는 광장이 단순히 '지나가는 공간'이 아닌 '머무르는 공간'으로 기능하도록 만든 핵심 요소다. 2022년 8월 개장 이후 광장은 서울 도심의 공간 문화를 새롭게 정의하며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종묘와 남산을 잇는 과감한 도시 전략
최우수상(Excellence Award)을 받은 '세운상가 녹지축 기본계획' 컨셉. CA조경 제공
최우수상을 받은 '세운상가 녹지축 기본계획'은 도심 재생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노후화된 건물을 개별적으로 리모델링할 것인가, 아니면 과감하게 철거하고 도심에 새로운 생태 구조를 만들 것인가.
CA조경, 미래E&D, DA건축으로 구성된 설계팀은 후자를 선택했다. 세운상가 일대 8개 블록 중 노후 건물군 4개 블록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약 1km 길이, 폭 60m 이상의 중앙 녹지축을 조성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단절됐던 종묘와 남산을 잇는 이 녹색 회랑은 서울 도심에 새로운 생태 연결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낙후된 세운상가 일대를 '서울의 새로운 초록 거점'으로 재탄생시키는 장기 전략이다.
전체 면적의 30% 이상을 개방형 녹지로 설계된 세운상가 녹지축계획안 예시도. CA조경 제공
주변 블록 개발 계획도 주목된다. 업무·문화·주거가 결합된 복합개발을 추진하되, 전체 면적의 30% 이상을 개방형 녹지로 확보하도록 설계했다. 개발 압력이 높은 도심에서 이처럼 대규모 공공녹지를 확보하는 계획은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장기적으로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핵심 전략이라는 점에서 국제적 평가를 받았다.
세운상가 녹지축 계획은 2008년부터 논의되기 시작해 여러 차례 계획이 수정되며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최근 서울시는 세운상가군을 단계적으로 철거해 약 5만㎡ 규모의 도심공원을 조성하고, 민간부지 내 개방형 녹지까지 포함해 총 13만 6000㎡(광화문광장의 3배 이상) 규모의 녹지를 확보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국제 조경계가 인정한 한국의 혁신
1948년 설립된 세계조경가협회(IFLA)는 80여 개 회원국이 참여하고 있다. CA조경 제공
1948년 설립돼 약 80여 개국이 참여하는 세계조경가협회는 이번 시상에서 두 프로젝트가 보여준 '역사 보존과 현대적 공공공간의 조화', '생태 연결성 회복을 통한 도시 재생'이라는 차별화된 접근을 높이 평가했다.
특히 광화문광장의 경우 지하 유구 발견이라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오히려 설계의 핵심 요소로 전환한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이, 세운상가 녹지축은 노후 건물 철거를 통해 종묘-남산을 잇는 생태 회랑을 만드는 과감한 도시 전략이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종묘-남산을 잇는 생태 회랑을 만드는 과감한 도시 전략이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CA조경 제공
조용준 CA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은 "두 프로젝트는 각각 역사 보존형 공공공간 재생과 생태 회복형 도시 재생이라는 서로 다른 접근을 보여준다"며 "이번 수상은 CA조경이 꾸준히 추진해온 공공 프로젝트의 전문성과 도시환경 개선 역량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결과"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앞으로도 다양한 공공 조경 프로젝트를 통해 현대 도시가 직면한 환경·사회·생태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지속적으로 기여하겠다"고 덧붙였다.
*IFLA APR LA Awards 2025
세계조경가협회(IFLA)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주관하는 조경 분야 최고 권위의 국제 시상식. 아시아·태평양 지역 조경가들의 성과를 국제적으로 알리기 위해 매년 개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