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저에서 방출된 메탄의 상당 부분이 바닷물 속에서 소멸돼 대기까지 도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실험적으로 확인됐다. AI 생성 이미지
심해에서 분출되는 메탄이 대기로 유입돼 지구온난화를 가속한다는 기존의 통설을 뒤집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해저에서 방출된 메탄의 상당 부분이 바닷물 속에서 소멸돼 대기까지 도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실험적으로 확인되면서, 기후변화 예측의 불확실성을 줄일 중요한 과학적 근거가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부산대학교는 정동주 해양학과 교수가 미국 로체스터대 연구진과 공동으로 수행한 연구를 통해, 수심 500m보다 깊은 해저 가스하이드레이트 분해 지점과 탄화수소 자연 누출지에서 발생한 메탄이 대부분 해수에 용해되거나 미생물에 의해 소비돼 대기로 직접 유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규명했다고 16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해양 메탄이 곧바로 지구온난화를 증폭시킨다는 이른바 ‘메탄-기후변화 악순환’ 가설에 중요한 수정을 요구하는 성과로 주목받고 있다.
심해 메탄, 바다에서 대부분 소멸...‘메탄-온난화 악순환’에 제동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약 80배 강한 온실효과를 지닌 기체로, 지구온난화의 주요 변수로 꼽힌다. 특히 해저 가스하이드레이트와 퇴적층에 저장된 막대한 양의 메탄이 해수 온도 상승으로 대기 중에 대량 방출될 수 있다는 우려는 과학계와 정책 당국의 경계 대상이었다.
연구팀은 미국 멕시코만 해역의 해저 탄화수소 자연 누출지를 대상으로, 메탄에 포함된 방사성 탄소 동위원소를 정밀 분석해 해수 표층부터 심층까지 메탄의 이동 경로와 기원을 추적했다.
그 결과, 심해에서 방출된 메탄은 바닷물에 대량으로 녹아들거나 미생물에 의해 산화돼, 바다 표면까지 도달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최초로 실험적으로 확인됐다.
이는 심해 메탄이 곧바로 대기로 유입돼 지구온난화를 가속한다는 기존 가설이 과도한 단순화였음을 보여준다. 기후변화 모델에서 해양 메탄의 역할을 보다 정교하게 재설계해야 할 필요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대기 유입은 미미하지만, 해양 탄소순환엔 영향”
다만 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해저 메탄의 기후 영향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정동주 교수는 “해저 메탄의 직접적인 대기 유입은 매우 제한적이지만, 해수 속에서 미생물에 의해 메탄이 산화되면 이산화탄소로 전환된다”며 “이는 해양 내 이산화탄소 농도를 높여, 바다가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심해 메탄은 대기보다는 해양 탄소순환을 통해 간접적으로 기후 시스템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는 해양을 단순한 ‘완충지대’가 아닌, 기후변화의 능동적 변수로 재인식해야 함을 의미한다.
한국은 대기 중 메탄 농도가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나라로, 다양한 메탄 발생 경로를 종합적으로 이해해야 정확한 기후 대응 전략을 세울 수 있다. AI 생성 이미지
대기 중 메탄 증가 속도 세계 최고 수준...“한국, 메탄 연구의 최전선 될 조건 갖춰”
이번 연구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한국의 현실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대기 중 메탄 농도가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나라”라고 지적했다.
한반도는 강과 호수, 연안습지, 갯벌, 만(灣) 등 메탄 발생이 활발한 자연환경이 잘 발달해 있을 뿐 아니라, 간척지·양식장·농경지 등 인공 환경도 밀집돼 있다.
육상과 해양을 아우르는 다양한 메탄 발생원이 공존하는 구조다. 이는 기후위기 대응 차원에서 메탄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관리할 필요성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 교수는 “해저 메탄뿐 아니라 내륙 수계, 연안, 습지, 농업 부문 등 다양한 메탄 발생 경로를 종합적으로 이해해야 정확한 기후 대응 전략을 세울 수 있다”며 “이를 위해 정부 차원의 장기적이고 적극적인 연구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후정책 정밀화 이끄는 ‘기초과학의 힘’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가 기후변화 대응에서 ‘과학적 근거’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고 평가한다. 과장된 공포나 단순화된 가설이 아니라, 실제 자연에서 벌어지는 과정을 정밀하게 규명해야만 효과적인 정책과 대응 전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심해 메탄을 둘러싼 논쟁에 과학적 균형점을 제시한 이번 연구는, 기후위기 시대 한국이 메탄 연구의 중요한 거점으로 도약할 수 있는 가능성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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