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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도시 개발 사업이나 도로·도시철도 건설 공사는 사전에 세계유산영향평가(HIA)를 받아야 할 전망이다.
서울 종묘 앞 고층 재개발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세계유산영향평가 제도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서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의 향방에도 적잖은 변화가 예상된다.
국가유산청은 이달 18일부터 「세계유산의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재입법 예고한다고 16일 밝혔다.
이는 지난해 11월 개정된 세계유산법의 후속 조치로, 그간 권고 수준에 머물렀던 세계유산영향평가를 제도적으로 의무화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세계유산 영향 우려 사업, 계획 단계부터 평가 대상
개정안에 따르면 세계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토·지역계획, 도시 개발 사업, 산업·항만 재정비 사업, 국가가 추진하는 도시철도 등 교통시설 건설 사업은 세계유산영향평가 대상에 포함된다.
특히 개발계획 부지 안에 세계유산지구가 포함될 경우에는 사업 규모와 관계없이 평가를 받아야 하도록 규정했다.
종묘 일대가 최근 공식적으로 세계유산지구로 지정된 만큼, 종묘와 마주한 세운4구역 재개발은 제도의 직접적인 적용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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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검토 단계에서 ‘건물 높이·이격 거리’까지 명시
개정안은 영향평가 이전 단계에서의 사전 절차도 구체화했다.
사업 시행자는 사업 위치와 면적, 총사업비뿐 아니라 구역 내 건축 예정 건물의 최고 높이, 세계유산 구역과의 이격 거리 등을 담은 ‘사전검토요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는 종묘의 경관 훼손 논란의 핵심 쟁점인 고층 건축물 높이를 제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향후 평가 과정에서는 경관·환경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영향, 세계유산 가치에 미치는 직·간접적 영향의 범위와 규모까지 종합적으로 검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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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4구역 재개발, 승인 지연 또는 계획 변경 가능성
이 같은 제도가 시행될 경우 세운4구역 재개발은 일정 지연이나 계획 변경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유네스코는 이미 지난달 세운4구역의 고층 개발이 종묘의 세계유산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를 공식 외교 문서를 통해 우리 정부에 전달했다.
유네스코 측은 세계유산영향평가 실시와 함께 검토가 완료될 때까지 관련 사업 승인을 중단할 것을 권고했지만, 서울시는 이에 대해 공식 회신을 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법적 근거가 마련될 경우, 향후 사업 인허가 과정에서 중앙정부 차원의 개입 여지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토지주 “재산권 침해” 반발…갈등 격화 우려
문제는 세운4구역 재개발을 수년째 기다려온 토지주와 상인들의 반발이다.
이미 장기간 사업 지연으로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아온 상황에서, 추가적인 영향평가와 계획 조정이 현실화될 경우 반발은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일부 토지주들은 “세계유산 보호라는 명분 아래 민간 재산권이 과도하게 제한되고 있다”며 집단 대응 가능성도 시사하고 있다.
반면 문화유산 보호 단체와 전문가들은 “세계유산은 일단 훼손되면 회복이 불가능한 공공자산인 만큼, 개발 논리보다 보존 원칙이 우선돼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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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앞 재개발 논란 질의에 답하는 허민 국가유산청장
“개발과 보존의 조정 시험대 될 것”
국가유산청은 이번 개정안을 통해 세계유산영향평가기관 지정, 평가서 검토 및 보완·조정 절차, 세계유산영향평가지원센터 운영 근거까지 함께 마련할 방침이다.
또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밖이라도 문화유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경우 필요한 조치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별도 고시 제정도 준비 중이다.
전문가들은 세운4구역 사례가 향후 국내 세계유산 인접 개발의 기준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문화유산 정책 전문가는 “이번 제도는 단순히 한 지역 개발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개발과 보존의 균형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조정할 것인지에 대한 시험대”라며 “사회적 합의 없이 밀어붙일 경우 갈등 비용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유산 보존이라는 국제적 책무와 도심 재생, 재산권 보장이라는 국내 과제가 충돌하는 가운데, 세운4구역 재개발을 둘러싼 논쟁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