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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삼척 대체산업 예타 통과. 연합뉴스 제공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견인한 강원 폐광지역이 2026년 병오년을 맞아 석탄산업 전환지역으로 새롭게 도약한다.

지난 6월 말 삼척 도계광업소 폐광을 끝으로 75년 국영 탄광의 마침표를 찍은 도내 폐광지역은 올해 '포스트 마이닝 시대'로 나아갈 수 있는 빗장을 열었다.

이제 석탄산업을 대체할 미래 전략산업이 본궤도에 올라 옛 산업화의 영광을 뛰어넘을 부활의 날갯짓을 시작한다.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폐특법)이 일부 개정됨에 따라 내년 4월부터는 '폐광지역'이라는 명칭도 '석탄산업 전환지역'으로 변경된다.

석탄산업 합리화 조치 이후 가속도가 붙은 쇠락의 길을 멈춰 서게 할 대체산업, 그리고 조기 폐광 지원사업의 실패를 거울삼을 수 있는 과제를 살펴본다.

◇ "막대한 공적자금 투입한 조기 폐광 지원사업의 실패를 거울 삼아야"

1989년 정부의 석탄산업 합리화 조치 이후 지난 30여년간 막대한 공적자금 투입에도 도내 4개 폐광지역 인구는 당시의 38% 수준으로 격감했다.

30일 강원특별자치도와 강원연구원 탄광지역발전지원센터 등에 따르면 폐특법 시행으로 재정지원이 본격화한 1995년부터 지난해까지 30여년간 태백·정선·영월·삼척 등 4개 폐광지역에 투입된 공적자금은 3조8천370억원에 달한다.

합리화 조치라는 미명 아래 석탄산업에 철퇴를 내린 정부는 조기 폐광 지원사업으로 막대한 공적자금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대대적인 폐광사태에 따른 인구 유출은 막지 못했다.

김원동 강원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의 '강원도 폐광지역 변화의 가속화와 지적 기반 구축의 모색'(사회통합연구 6권 3호·2025)에 따르면 4개 폐광지역의 인구는 올해 9월 기준 16만7천870명이다. 이는 석탄산업 합리화 조치 직전인 1988년 44만1천270명의 38% 수준으로 격감한 수치다. 1988년 기준 도내 인구 비중을 보면 4개 폐광지역 인구는 도내에서 4명 중 1명(25.5%)이었으나 최근에는 10명 중 1명(11.1%)으로 쪼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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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광지역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됐지만 지역소멸의 가속화를 막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지난 30년간의 '조기 폐광 지원사업'은 리조트 중심의 개발 사업에 치중한 나머지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다. '강원랜드만 남겼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2000년 개장한 강원랜드는 국내 유일의 내국인 출입이 가능한 카지노라는 이점 때문에 성장했다. 하지만 이 같은 독보적 지위는 다른 시도로부터 늘 도전받아왔다.

물론 공적자금은 폐광지역의 열악한 정주 환경 개선과 기반 시설 확충 등 여러 부문에도 투자됐지만 인구 유입을 유도할 근본적인 대체 산업 정착에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폐광에 따른 인구 유출 저지와 신규 인구 유입을 유도할 만한 대체산업과 짜임새 있는 공공재원 투입 없이는 폐광지역의 소멸을 막기 어렵다는 교훈을 남겼다.

◇ 대표적 대체산업은…태백 청정 메탄올·삼척 중입자 가속기

핵심은 석탄산업을 대체할 미래 전략산업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구축해 나가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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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서 지역 대체산업 설명하는 이상호 태백시장

태백은 2032년까지 1조원대 투자를 통해 석탄도시에서 무탄소 청정에너지 도시로 전환한다는 전략이다.

시는 지난해 6월 폐광한 장성광업소 부지를 활용한 청정메탄올 산업 중심의 미래자원 클러스터 조성사업에 거는 기대가 크다.

올해 8월 20일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한 이 사업에는 2026년부터 2030년까지 민자 986억원과 국도비 2천554억원 등 총 3천540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한다.

청정메탄올 생산기지뿐만 아니라 핵심광물 산업단지(354억원), 철암역 인근의 메탄올 광물 물류 시설(779억원), 근로자 주택단지(699억원) 조성 사업비까지 포함하면 총사업비는 5천300억원대로 늘어난다.

이와 함께 태백 연구용 지하연구시설(URL) 사업에는 2032년까지 6천475억원 중 시비 119억원을 제외한 대부분이 국비로 투자된다. 예타 면제 사업으로 선정돼 준공 시기를 2년가량 앞당길 수 있다.

향후 건설할 고준위 방폐장과 비슷한 깊이인 지하 약 500m에 연구시설을 만들어 각종 실험을 하는 곳이다. 고준위 방폐장 건설에 필요한 각종 기술을 연구하지만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나 사용후핵연료 같은 물질은 전혀 반입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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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용 지하연구시설(URL) 조감도. 연합뉴스 자료사진

시는 이 사업을 통해 4천262억원의 직접·생산 유발 효과와 사업 기간 1천660여명의 고용 증대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한다.

청정 메탄올 클러스터와 URL 사업으로 1조원이 넘는 막대한 사업비가 투자되는 셈인데, 태백시는 이를 토대 삼아 산업지도를 새로 그려나간다는 포부다.

삼척은 꿈의 암 치료기로 불리는 '중입자 가속기'를 활용한 암치료센터 건립에 나섰다. 이를 통해 의료와 관광, 대학이 연계한 첨단 의료산업 클러스터로 거듭난다는 포석이다.

예타를 통과한 이 사업에는 3천603억원이 투자되며, 내년 정부 예산에 45억원이 반영돼 사업 추진에 속도를 내게 됐다.

삼척시 도계읍 흥전리 일원 12만4천609㎡ 부지에 중입자 가속기 암치료센터와 80병상 규모의 올(ALL) 케어센터, 헬스케어 레지던스 등을 조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중입자 가속기를 통한 암 치료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소인 탄소 원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해 나온 에너지를 암세포에 정확히 충돌시켜 파괴하는 최첨단 치료법이다.

시는 전국 거점 국립대 중 유일하게 보건과학대학이 있는 강원대 도계캠퍼스를 '암 특성화 보건과학대학'으로 육성하는 방안을 고민하던 중 이 사업에 착안했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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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중입자 가속기 설명 듣는 삼척시 방문단. 삼척시 제공

이 사업이 연착륙하면 '마지막 국영 탄광' 도계광업소가 있던 도계지역은 약 1조4천800억원의 경제효과와 1만8천500명의 고용효과를 통해 첨단 의료 도시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한다.

이밖에 영월은 텅스텐과 마그네슘 등 희귀금속 자원을 활용한 새로운 성장 엔진 탑재에 나선다.

정선군은 카지노 중심에서 복합관광·체류형·연결형 도시로 전환하는 큰 그림을 그린다.

◇ 장밋빛 포부에 그치지 않으려면…"지역 기반 컨트롤타워 필요"

석탄산업 전환지역의 대체 산업이 장밋빛 포부에 그치지 않으려면 지역을 기반으로 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는 조기 폐광지원 사업으로 30년간 3조8천억원을 투입했음에도 이렇다 할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실패한 것에 대한 교훈에서 출발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처럼 석탄산업 전환지역의 대체 산업을 총괄적·체계적으로 지원할 '지역 특화형 사령탑'이 그것이다.

폐광지역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종합적인 시각에서 설계하고, 체계적 연구를 통한 현실성 있는 정책으로 지역주민과 곧바로 연결하는 가교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더해 도내 유·무형의 석탄 문화유산 발굴과 기록 사업을 체계적이고 지속해 기획·추진할 제도적 토대로 대체산업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물론 기존 강원연구원 내 탄광지역발전지원센터 등 탄광지역 관련 연구기관이 있지만 조직이 작고 지역·주민과 동떨어져 있는 만큼 보다 독립적이며, 지역을 기반으로 한 특화형 연구원의 설립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유럽의 산업화를 견인한 대표적 석탄 생산국인 독일이 '포스트 마이닝' 시대를 준비하고 체계적으로 추진하는 중심에 '보훔 폐광연구센터'가 큰 역할을 한 것처럼 유사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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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보훔 석탄박물관. 연합뉴스 제공

김원동 강원대 명예교수는 "석탄산업 전환지역 안에 터를 잡은 연구원의 전문가들이 수시로 지역의 구석구석까지 삶의 현장을 샅샅이 누비면서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는 독자적인 토대가 필요하다"며 "이 같은 몸부림은 폐광지역의 위기 상황을 반전시켜 미래로 나아갈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