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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하게 보이는 반구대 암각화 속 동물들

울산에 있는 한반도 선사문화의 정수 '반구천의 암각화'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마침내 이름을 올리자 지역 사회에서는 "시민의 염원이 드디어 이뤄졌다"고 환영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울산시는 세계적인 역사 문화유산 반열에 오른 바위그림 보존·관리 수준을 더욱 높이는 동시에 이를 활용한 관광 활성화 방안 마련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많은 사업비가 들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정부 지원을 최대한 끌어낸다는 게 울산시 구상이다.

"세계유산 품은 문화도시로"…긴 '수난' 견딘 성과

유네스코는 1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제47차 세계유산위원회를 열어 반구천의 암각화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반구천의 암각화는 우리나라가 보유한 17번째 세계유산이 됐다. 이는 국가유산청이 2010년 반구천의 암각화를 세계유산 신청 잠정 목록에 올린 지 15년 만이다.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린 현장에서 등재 결정을 지켜본 김두겸 울산시장은 "반구천의 암각화는 울산의 자랑이자 한반도 선사문화를 대표하는 귀중한 유산"이라며 "이제 울산은 세계유산을 품은 문화도시답게 유산을 잘 보존하고 가치를 널리 알리면서, 울산의 문화 경쟁력을 높이고 문화관광 기반도 제대로 다지겠다"고 약속했다.

낭보를 접한 울산시민들도 자랑스럽다는 반응을 보인다.

동구에 거주하는 회사원 명성윤(37)씨는 "울산은 대외적으로 산업도시로만 알려진 것 같아 아쉬움이 있었는데, 이번에 역사 유산이 전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게 돼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명씨는 "특히 반구천의 암각화가 비가 많이 오면 물에 잠기는 수난의 역사를 견디고 이뤄낸 성과라는 점에서 더 대단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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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천과 반구대 암각화

사연댐 건설로 수몰 반복 훼손…수위 낮추려 수문 설치 추진

그동안 울산에서는 반구천의 암각화를 보전하기 위한 노력이 다각도로 이어졌다.

반구천의 암각화 중 하나인 국보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12월 당시 동국대학교 문명대 교수팀에 의해 발견됐다. 그런데 그보다 6년 앞선 1965년 암각화를 끼고 흐르는 대곡천 하류 지점에 사연댐이 건설된 영향으로, 큰비가 올 때마다 불어난 하천에 암각화가 잠기는 일이 반복됐다.

차수벽 설치부터 생태 제방 구축, 터널 형태로 물길 변경, 카이네틱 댐(가변형 임시 물막이) 설치 등 암각화를 물에서 건져내기 위한 여러 방안이 검토됐는데, 모두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거나 오히려 암각화 주변 경관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로 무산됐다.

결국 사연댐 수위를 조절해 침수를 방지하는 미봉책에 의존하고 있지만, 하천에 잠겼다가 물 밖으로 노출되는 일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이에 환경부와 울산시 등은 사연댐 수위를 낮게 유지하고자 여수로(댐 수위가 일정량 이상일 때 여분의 물을 방류하는 보조 수로)에 너비 15m, 높이 7.3m의 수문 3개를 설치하는 사업을 현재 진행 중이다. 수문을 통해 물을 빼내는 방식으로 암각화가 물에 잠기지 않도록 하려는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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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탐방로·세계암각화센터 등 추진…"디지털 K-콘텐츠화 필요"

울산시는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소중한 바위그림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나아가 역사관광 명소로 조성하는 사업에 속도를 낸다.

시는 현재 반구천 일원 문화유산과 경관 명소를 연결하는 역사문화 탐방로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2030년 완료를 목표로 하는 이 사업에는 175억원이 투입된다.

3개 코스 총 11.6㎞ 구간의 탐방로 개설과 함께 주차장 설치, 습지 경관 개선, 휴게공간 조성, 옛길 복원·정비 등이 진행된다.

또 시는 올해 5월 반구천의 암각화 일원에 대한 종합정비계획 수립 용역에 착수했다.

내년 3월 수립되는 이 정비계획에는 암각화를 중심으로 자연유산 보존과 관광자원 활용 방안 등을 포함하는 종합적인 계획이 담길 예정이다. 이를 통해 반구천의 암각화 일원을 보존 중심의 관리 체계로 전환하는 동시에 지속 가능한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특히 시는 '반구천 세계암각화센터' 건립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암각화 연구·보존·전시·교육을 아우르는 거점 역할을 할 이 시설 설립을 위해 국비 확보에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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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전문가들은 반구천 일원을 관광 명소화하는 노력과 함께, 한반도 바위그림의 가치를 널리 확산시키는 방안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국내 암각화 연구 분야 권위자인 전호태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명예교수는 "유적을 구경하고 일대 풍광을 느끼며 트레킹하는 것은 물론 의미가 있지만, 현장에서 직접 보고 암각화 내용을 이해하려는 전통적 관광 방식에는 분명 한계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암각화 내용과 가치를 주제로 한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를 만들어 여러 분야에 활용한다면 공간적 제약 없이 확장성을 지닌 새로운 'K-콘텐츠'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