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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키트 나눔 대상자 찾아가는 연탄은행 직원들.연합뉴스

서울 노원구 상계동 산 161번지 일대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은 대부분 오래되고 낡았다. 북쪽으론 수락산, 남쪽으론 불암산이 보이는 고지대 오르막 골목을 따라 형성된 달동네로도 불린다.

30도를 웃도는 한여름 뜨거운 열기는 지붕과 벽을 타고 집 안까지 스며드는 곳. 장맛비도 제대로 내리지 않은 기록적 폭염에 거주민들은 집에 있어도, 밖에 나가도 더위를 피하기 어려워 보였다.

지난 11일, 사회복지법인 밥상공동체·연탄은행과 함께 이 골목을 찾았다. 취약계층 연탄 나눔으로 알려진 연탄은행이 마련한 '폭염 재난키트'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150개의 키트에는 여름용 차렵이불과 옷에 냉감 효과를 주는 쿨링스프레이, 양우산, 이온 음료 분말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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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용 차렵이불을 받은 할머니. 촬영 연합뉴스 정윤주

직원과 자원봉사자 10여 명은 세 팀으로 나뉘어, 한 집 한 집 문을 두드렸다. 모기장을 친 채 문을 열어놓고 더위를 견디는 어르신들이 이들을 맞았다. "올해는 너무 더워서 겁이 났는데, 이렇게 도와주시니 좋아요." 키트를 받아 든 58세 최모씨는 웃으며 말했다. 85세 안모 할머니는 쿨링스프레이 사용법과 양우산 펼치는 법을 배우며 "우산도 튼튼하고, 스프레이도 시원해서 좋다"며 미소 지었다. "하루에 옷을 두 번씩 갈아입을 만큼 땀이 많아요. 얼마 전 침대에서 떨어져 허리도 아프고 움직이기 힘든데, 이렇게 직접 찾아와 주시니 정말 도움이 됩니다."

연탄은행은 물품과 함께 '물을 자주 마시기', '체온을 시원하게 유지하기', '더운 시간대에는 휴식하기' 등 폭염 행동 요령이 적힌 안내문도 전달했다. 또 어르신들에게 폭염이 건강과 안전에 어떤 위협이 되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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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은행으로부터 폭염 대비 재난 키트 받은 여성.연합뉴스

달동네로도 불리는 이 지역은 고령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많다. 에어컨이 있지만, 대부분 전기요금이 부담돼 마음껏 틀지 못한다고 어르신들은 하소연했다. 노인은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져 더위에 더 취약하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온열질환 사망자 238명 중 60세 이상이 156명으로 3명 중 2명꼴이다. 그런 만큼 이날 전달된 폭염 재난키트는 어르신들이 여름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최소한의 안전망인 셈이다.

연탄은행 채예은 간사는 "어르신들은 폭염이 재난이고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잘 안 하신다"며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제품과 정보를 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원봉사자 고승현씨는 "집 구조나 환경이 생각보다 더 열악했다"며 "키트가 어르신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