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3대정원 중의 하나인 오카야마시의 '고라쿠엔 정원'

전 세계 예술가들과 디자이너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일본 세토우치 트리엔날레(Setouchi Triennale) 2025를 맞아 (사)호남디자인산업협회가 특별한 디자인 리서치 투어를 기획했다.

26일부터 29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진행된 이번 투어는 예술과 자연이 공존하는 세토우치 지역에서 디자인의 본질을 탐구하는 시간으로 구성되었다.

세토우치 트리엔날레는 일본 세토 내해 지역의 재생을 위해 시작된 국제 현대미술제로, 올해로 5회째를 맞고 있다. 2010년 시작된 이 예술제는 섬의 인구 감소와 공동화 문제를 예술로 되살린 대표적 성공 사례로 평가받는다. 나오시마, 데시마, 시오도시마 등 여러 섬을 무대로 설치미술과 공연, 지역 주민 참여 프로그램이 어우러지며, 단순한 미술 전시를 넘어 지역 재생과 국제 교류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고라쿠엔 정원은 에도시대 고안했던 회류식 정원으로 길에 따라 변화하는 경치를 돌아볼 수 있도록 조성되었다.

고라쿠엔에서 만나는 일본 정원의 정수

투어의 첫 방문지는 일본 3대 명원 중 하나인 오카야마 고라쿠엔이었다. 1687년 오카야마번 번주 이케다 츠나마사가 조성을 시작해 14년에 걸쳐 완성한 이 회유식 정원은, 아사히강을 배경으로 한 13만㎡ 규모의 웅장한 공간 속에 일본 정원 미학의 정수를 담고 있다.

정원 중앙의 사와노이케(沢の池) 연못을 중심으로 배치된 인공 언덕 유이산, 다실 류텐, 능라정 등의 건축물들은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허물며 조화로운 경관을 연출한다. '고라쿠엔'이라는 이름 자체가 중국 고사성어 '선우후락(先憂後樂)'에서 따온 것으로, '백성의 근심을 먼저 걱정하고 즐거움은 나중에 한다'는 통치 철학을 담고 있어 단순한 감상 공간을 넘어선 의미를 지닌다.

일본정원 중 최초로 잔디밭을 조성하여 물의 흐름과 조화를 이루게 했다.

참가자들은 사계절의 변화를 품은 정원 곳곳을 거닐며 공간 구성의 절묘함과 자연 요소의 배치가 만들어내는 시각적 리듬감을 체험했다. 특히 가을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 정원은 색채의 조화와 공간의 깊이감을 동시에 보여주며 디자이너들에게 색다른 영감을 제공했다.

일본 최초의 사립 서양 미술관인 오하라 미술관

구라시키 미관지구, 전통과 근대의 만남

이어진 구라시키 미관지구 탐방에서는 일본 최초의 사립 서양미술관인 오하라 미술관과 그 정원을 중점적으로 살펴봤다. 1930년 오하라 마고사부로가 설립한 이 미술관은 엘 그레코, 모네, 마네, 르누아르, 고흐, 세잔 등 유럽 근대 미술 작품을 일본에 처음 소개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미술관 정원은 서양식 조경과 일본 전통 정원 양식이 절묘하게 결합된 공간으로, 근대 일본이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면서도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하려 했던 노력을 보여준다. 정원 내 식재 계획과 동선 구성에서도 동서양 조경 철학의 융합 시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미술관 정원은 서양식 조경과 일본 전통 정원 양식이 절묘하게 결합된 공간이다.

구라시키 미관지구 전체는 에도시대 상업도시의 모습을 잘 간직한 전통적 역사경관 보존 지역이다. 흰 벽 창고(쿠라)와 나무 격자창의 상가들이 구라시키강을 따라 늘어선 모습은 물의 흐름과 건축물의 배치가 만들어내는 도시 경관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강변에 늘어선 버드나무는 계절감을 더하며 전체적인 분위기를 부드럽게 연출한다.

일본의 전통 정원은 자연을 축소화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현대 미술과 전통 정원의 대화

이번 투어를 동행취재하는 어반톡의 이형철 대표는 "세토우치 트리엔날레와 전통 정원을 함께 경험하면서 예술과 공간, 자연의 관계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특히 현대 설치미술이 배치된 섬들과 전통 정원이 보여주는 공간 활용법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비교 관찰할 수 있었던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덧붙였다.

20여명의 참가자들은 오카야마 고라쿠엔에서는 자연 요소의 절제된 배치와 시간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변화를, 구라시키에서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포용력을 각각 체험했다. 이러한 경험은 단순한 관광을 넘어 디자인과 공간 기획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학습의 장이 되었다.

세토우치 트리엔날레는 지역 주민의 자긍심 회복과 문화 재생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지역 재생과 문화 예술의 가능성

세토우치 트리엔날레가 추구하는 '지역 주민의 자긍심 회복'과 '지속 가능한 사회·경제 연결망 구축'이라는 목표는 전통 정원이 오랜 시간 지역사회와 맺어온 관계와도 닮아있다. 고라쿠엔이 메이지 시대에 일반에게 개방되면서 시민들의 문화 공간으로 자리잡은 것처럼, 현대의 예술제 역시 지역사회와의 상생을 모색하고 있다.

섬과 정원, 미술관이 어우러진 공간에서 디자인의 본질과 마주한다.

이번 투어는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자연과 인공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 사례들을 제시했다. 참가자들은 미술관이 된 섬들과 건축이 숨 쉬는 정원 공간에서 디자인의 본질과 마주하며, 창조적 영감과 함께 동료 디자이너들과의 네트워킹도 활발히 이뤄냈다.

세토우치 지역의 가을은 예술과 자연이 공존하는 특별한 무대가 되어, 한국 디자이너들에게 새로운 시야와 깊이 있는 인사이트를 선사하는 의미 있는 여정으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