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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합동감식을 위해 소방, 경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지난 26일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발생한 화재는 우리나라 행정 전산망을 사실상 마비시켰다.
주민등록부터 우정사업본부 금융 서비스, 각종 행정 업무가 동시에 멈추면서 국민 생활 전반에 큰 혼란이 이어졌다.
'인공지능(AI) 3대 강국'을 외치던 정부가 정작 자국 전산 인프라 안전에는 허술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AI 시대에도 전산실 화재 한 번으로 행정이 무너진 현실은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 '카톡 먹통' 교훈 외면한 정부, AI 조기경보 체계 부재 드러나
이번 국정자원관리원 화재는 무정전 전원장치(UPS)의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2022년 카카오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와 정확히 닮은꼴이다.
당시에도 전원 장치 발화로 카카오톡을 비롯한 서비스가 장시간 중단됐다. 카카오는 사고 이후 전력·냉각 설비에 AI 기반 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하고, 데이터센터 이중화를 강화하는 등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하지만 정부 전산망은 3년 전 민간 사고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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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서울 시내 한 우체국 앞에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인한 우편ㆍ금융 서비스 차질 안내문이 붙어있다.
정부는 올해까지 공공 정보시스템 9천여 개를 민간·공공 클라우드로 전환하는 디지털플랫폼정부 핵심 과제를 추진 중이었지만, 여전히 상당수 시스템은 이중화가 미흡한 상태였다.
전문가들은 민간의 경우 각종 사고를 계기로 AI 기반 안전 투자를 확대했지만, 정부는 경직된 예산 편성 및 조달 절차 탓에 기술 혁신에 뒤처졌다고 지적한다.
◇ 민간·해외는 AI로 '조기경보'…정부는 여전히 '미흡'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주요 클라우드 기업들은 이미 AI 기반 이상 탐지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온도, 전력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발열이나 전력 이상 신호를 조기에 감지하고 냉각 시스템 문제를 사전에 파악해 대응한다.
해외에서는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가 AI 운영 자동화(AIOps)를 도입해 전력·냉각 효율을 최적화하고 이상 징후를 실시간으로 예측한다. 실제로 2023년 미국 애리조나주 구글 데이터센터에서는 전력 계통 이상을 AI가 사전에 감지해 대규모 장애를 막은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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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정부의 전산 인프라는 여전히 서버와 스토리지를 중심으로 한 수동 관리 체계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국가 핵심 인프라임에도 민간 기업보다 더 높은 수준의 안전 관리를 확보하지 못했던 것이다.
한 데이터센터 관계자는 "정부 전산은 국가 핵심 인프라인 만큼 민간보다 더 높은 수준의 안전 관리가 필요하다"며 "특히 UPS 배터리, 냉각 장치 같은 고위험 설비에는 AI 조기경보 체계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 AI가 재난 대응 '속도'를 바꾼다
물론 AI가 모든 화재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열폭주처럼 예측이 어려운 급격한 발화 상황에서는 AI 역시 '사후 탐지' 역할에 그칠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AI는 완벽한 방어가 아니라 인적 대응 시간을 단축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보조 장치라고 입을 모은다. 조기경보 확률을 높이고 상황 전개를 빠르게 감지하는 AI는 재난 관리의 '속도' 자체를 바꿀 수 있는 핵심 기술이다.
2022년 카카오 먹통 사태와 이번 국정자원관리원 화재는 모두 AI와 이중화 체계가 안전 관리의 핵심임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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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밤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불에 탄 리튬이온 배터리를 소화수조로 옮기고 있다.
정부는 이번 사태 직후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화재를 계기로 정부 시스템 전반의 AI 기반 안전 관리 체계 도입이 시급해졌다. 특히 민간의 선진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예산과 조달 절차의 경직성을 완화하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해외 주요 데이터센터가 AI를 통해 대규모 장애를 예방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 정부 역시 AI 시대에 걸맞은 인프라 혁신이 시급하다.
'AI 강국'을 외치기 전에 정부 시스템부터 AI 안전망으로 무장돼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번 화재가 남긴 숙제 중의 하나일 것이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