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서식하는 꽃사슴.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제공

제주특별자치도가 제주 한라산 일대에 서식하는 외래종 꽃사슴을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하는 조례 개정안이 10일 열린 제주도의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이번 개정은 기후에너지환경부가 꽃사슴을 유해야생동물로 신규 지정하는 내용이 시행규칙에 반영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가 지난해 3월 발표한 조사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꽃사슴 등 사슴류는 겨울철 국립공원 인근 마방목지에서 약 190여 마리가 확인됐고, 중산간 목장지대 등에서 10~20마리씩 집단을 이뤄 총 200~250마리 수준으로 분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보고서는 사슴류가 노루에 비해 체구가 2~5배가량 크고 뿔이 커 먹이·서식지 경쟁에서 우위를 점함으로써 고유종인 노루뿐 아니라 오소리·족제비·도롱뇽 등 토종 생물군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제주에는 국내 고유종인 대륙사슴이 서식했으나 1910년대 모두 멸종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제주에 사는 사슴류는 대부분 일본 규슈 야쿠시마 지역에 서식하는 꽃사슴(야쿠시마꽃사슴)과 유전자 서열이 비슷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일부는 대만에서 유입된 대만꽃사슴 개체로 추정되고 있다.

왜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했나

당국이 꽃사슴을 유해야생동물로 분류한 핵심 배경은 첫째, 서식밀도 증가에 따른 생태계 영향을 들 수 있다. 외래종 사슴류의 개체 수가 늘어나면서 토종 식생 피해(보고서상 25종 이상 식물 피해 기록 등)와 토종 포유류의 서식지·먹이 경쟁 악화가 우려된다는 점이다.

둘째, 농림·생활 피해 우려다. 특정 지역에서 밀도가 높아질 경우 농작물·목초지 등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정책적 판단. 시행규칙은 ‘서식밀도가 높아 농림수산업과 생활에 피해를 주는 경우’를 유해야생동물 지정 근거로 규정하고 있다.

당국은 이러한 근거를 바탕으로 중앙(기후에너지환경부)과 지방(제주도) 차원에서 법·조례를 정비해 관리 근거를 마련했다고 설명한다.

서울 도심에 나타난 맷돼지.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제공


지정되면 어떤 조치가 가능한가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되면 지방자치단체와 관계 기관은 피해 예방·대응을 위해 다양한 행정·현장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첫째, 피해방지단 운영과 포획·구제를 허가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은 ‘유해야생동물 피해방지단’을 구성·운영할 수 있으며, 법령과 조례에 따라 피해 발생 시 피해방지단이 포획·구제(총포 사용 포함) 활동을 하도록 허가할 수 있다.

실제로 여러 지자체는 멧돼지·고라니 등 유해야생동물에 대응하기 위해 피해방지단을 운영해 포획·제거 활동을 벌여왔다.

둘째, 먹이주기 금지·제한과 과태료 부과를 할 수 있다.
조례 개정안에는 집비둘기 등 일부 유해야생동물에 대해 먹이주기 행위를 금지하거나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 포함됐다. 이미 서울 등 일부 지자체는 공원·한강공원 등에서 비둘기 등에게 먹이를 주면 최대 1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규정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셋째, 추적·검사 등 방역 조치 병행이 가능하다.
특히 멧돼지 등 가축 전염병(예: ASF) 위험과 연계되는 경우 포획 후 검사를 병행하는 지자체 사례도 있다. 지방 차원의 포획·검사 체계는 공중보건·농업 피해 예방 목적이 강하다.

“포획·살처분으로 직결” 우려 — 동물권 단체 반발

동물 단체들은 조례안 가결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단체들은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되면 지방자치단체장이 허가한 피해방지단이 총포 등을 이용해 포획·사살할 수 있게 되어 실질적으로 살처분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며 과학적 근거와 피해 실태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결정을 내린 것은 정당성이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집비둘기. 국립중앙과학관 제공


국내에는 어떤 동물이 이미 ‘유해야생동물’인가

유해야생동물 제도는 피해 예방·관리 대상 동물을 지정해 지역사회 안전과 농림 피해를 줄이려는 목적을 가진다. 중앙·지방에서 지정·관리하는 대표적 사례는 다음과 같다.

멧돼지는 전국적으로 대표적 유해종으로 인정되며, 지자체별 피해방지단 가동·포획·보상금 지급·야간 수렵 허용 등 강력한 관리 조치가 이뤄진다. 포획 과정에서 안전 문제와 과도한 사살 우려도 제기되어 왔다.

고라니·너구리는 농작물 피해를 이유로 포획·구제 대상에 포함된 사례가 많다. 일부 지자체는 피해 보상과 함께 방지망, 야간 순찰 등 예방 조치를 병행한다.

집비둘기·까치·참새 등은 대량 서식으로 문화재·건물 훼손이나 위생 문제가 발생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먹이주기 금지·제한과 과태료 규정이 도입되었다. 서울시의 공원 먹이주기 금지 조치가 대표적이다.

환경부 시행규칙상 유해야생동물 목록에는 ‘서식밀도가 높아 농림수산업에 피해를 주는 종’ 등 여러 유형이 명시돼 있으며, 구체적 종 목록은 중앙부처 공표와 지자체 조례를 통해 반영된다.

유해야생동물 피해방지단원들의 활동 모습. AI 생성 이미지


쟁점과 남은 과제

제주도의회의 이번 조례 가결은 현장 피해 예방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행정적 의미가 있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첫째, 과학적 근거와 투명한 데이터 제시가 부족하다. 동물권 단체가 지적한 것처럼 지정 근거(생태·피해·사회·경제적 분석)의 공개와 독립적인 검증 요구가 남아 있다. 보고서와 추가 용역 결과가 향후 쟁점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인도적이고 안전한 포획 및 구제 절차가 마련돼야 한다. 피해방지단 활동 과정에서 인명 사고·과잉 살처분 등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안전규정·교육·민원 대응 체계 강화가 필요하다. 이미 멧돼지 포획 현장에서는 안전 문제와 윤리 논란이 제기돼 왔다.

셋째, 예방 중심의 관리 전략이 필요하다. 단순 구제(포획·제거)에 앞서 서식 밀도 관리, 생태복원, 주민 협력·교육, 피해 보상 등 종합적이고 단계적인 정책 설계가 요구된다.

제주도 조례안 가결로 꽃사슴은 법·조례상 관리 대상이 되었고, 지자체 차원의 피해 예방·대응 장치가 가동될 수 있게 됐다. 다만 지정의 타당성, 대응 방식의 인도성·안전성, 그리고 장기적 생태관리 계획 마련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