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중인 병원 옥상에서 대회 출전을 위해 연습에 한창인 김은성 군. 훈련동영상 캡처
환자복을 입었지만 줄넘기 실력은 예사롭지 않다. 더블 언더를 시도하는 높은 점프력· 양팔로 바닥을 짚고 펼치는 고난도의 아크로바틱 기술도 매끄럽다. 선수 못지않은 수준급이다.
항암 주사를 맞고 기진맥진했던 몸일지라도 줄넘기 연습 시간만 되면 병원 옥상에서 자신의 기량을 점검하며, 기술의 완성도를 높여가고 있다. 소아암과 싸우는 김은성 군의 일상이다.
화성 동탄 반송중학교에 다니는 은성 군은 오는 29일, 세종정부청사 체육관에서 열리는 'MG새마을금고와 함께하는 KBSN배 전국 줄넘기 왕중왕 최강전'에 출전한다. 30초 번갈아 뛰기부터 3중 뛰기, 왕중왕전 팀 토너먼트, 8자 종목에 도전장을 내민 그에게 줄넘기는 단순한 운동이 아닌, 삶의 희망이다.
김은성은 국가대표선발전 3중뛰기에서 2위에 올랐던 실력파다. 파워점핑줄넘기 반송동점 제공
초등학교 방학, 운명처럼 만난 줄넘기
은성 군의 소아암 투병은 10년 전부터였다. 2015년 8월 첫 발병 후 2년간 치료를 받았고, 올해 1월 재발로 다시 항암치료를 하고 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 구토와 설사가 심하고, 장기간 입원하면 근육이 빠지고 체력도 떨어져요. 하지만 은성이는 치료받지 않는 날엔 매일 줄넘기를 해서 건강하게 치료를 이겨내고 있어요."
어머니의 설명이다. 실제로 은성 군은 대회 준비를 위해 퇴원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체육관으로 향한다. 치료의 고통보다 '빨리 나아서 대회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하다.
줄넘기와의 인연은 우연히 시작됐다. 초등학교 방학 때 시간을 보낼 곳을 찾다가 줄넘기 교실을 접하게 된 것. 기술을 하나씩 배우고 성공할 때마다 느끼는 성취감이 은성군을 사로잡았다.
"어렸을 때 투병으로 체구가 작아 격렬한 몸싸움이 없는 줄넘기가 잘 맞았어요. 그래서 더 흥미를 갖게 된 것 같아요."
은성 군은 "줄넘기를 하면 아프다는 생각이 사라져요. 그리고 언젠가 제 모습을 본 친구들이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투병중인 환자답지 않게 그의 목소리엔 또래보다 훨씬 단단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김은성은 초등학교 때 줄넘기를 시작했다. 파워점핑줄넘기 반송동점 제공
"차라리 게임이나..."에서 "열심히 응원"으로
부모의 마음은 복잡했다. 처음엔 무리하는 아들이 안타까워 "차라리 가만히 앉아서 하는 게임이나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항암 주사를 맞고 누워 있다가도 줄넘기 갈 시간이 되면 벌떡 일어나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줄넘기가 은성군에게 치료를 이겨내는 가장 큰 힘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이제는 열심히 응원해주고 있습니다. 은성이 담당 교수님도 대회 일정을 체크하시면서 치료 일정을 조절해주고 응원도 하고 계세요."
병원 의료진까지 은성 군의 도전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아픈 환자가 아닌, 꿈을 향해 달려가는 한 소년을 보는 것이다.
입원 중에도 은성군의 연습은 계속된다. 병원 옥상에 올라가 환자복을 입은 채 홀로 줄넘기를 돌린다. 퇴원하면 체육관에서 동료들과 함께 땀을 흘린다. 대회 출전 모습을 담은 사진 속 그의 표정은 누구보다 진지하고 당당하다.
"29일 대회에서 꼭 입상하겠다"는 은성군의 다짐은 강렬하다. 10년간의 투병이 그를 꺾지 못했듯, 대회 무대에서도 그는 자신만의 리듬으로 힘차게 줄을 돌릴 것이다.
병원 의료진까지 은성 군의 꿈과 도전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파워점핑줄넘기 반송동점 제공
"용기있는 은성 군의 도전, 지역사회에도 큰 울림"
이번 대회 공식협찬사인 MG새마을금고는 한 해 약 700억원을 지역사회에 환원하며 장학금 지원, 금융교육, 생활체육, 문화복지시설 운영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MG새마을금고 관계자는 "어린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달한다는 취지로 이번 대회를 후원하게 됐다"며 "은성군처럼 힘든 과정을 극복하려는 아이들에게 줄넘기는 단순한 운동을 넘어 '희망의 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들 한 명 한 명의 도전이 지역사회에도 큰 울림을 전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줄넘기 줄이 공중에 그리는 궤적처럼, 은성 군의 도전도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고 있다. 병마를 이겨내는 힘이 거창한 곳에 있지 않다는걸,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향한 순수한 열정 속에 있다는 걸 그는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29일, 세종정부청사 체육관에서 펼쳐질 은성군의 도전. 그의 줄넘기가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로 전해지길 기대한다.
병마를 딛고 29일 대회에서 필승을 다짐하는 '김은성'. 파워점핑줄넘기 반송동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