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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단체 케어, 한국동물보호연합 등 동물단체들이 22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로 비둘기 등 특정 야생동물에 대한 먹이 주기를 금지할 수 있도록 한 개정 야생생물법을 두고 동물권 단체들이 “동물 학대에 해당한다”며 22일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도시 환경 관리와 동물권 보호라는 두 가치가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해당 제도의 실효성과 헌법적 정당성에 대한 논쟁도 본격화되고 있다.

유해야생동물이란 무엇인가...“도심 피해를 기준으로 한 관리 대상”

현행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야생생물법)은 사람의 생명·신체 또는 재산에 피해를 주거나 줄 우려가 있는 야생동물을 ‘유해야생동물’로 규정한다.

개정법과 하위 규정에서 예시로 언급되는 유해야생동물은 ▲집비둘기(서식 밀도가 높아 분변으로 인한 건축물 부식, 문화재 훼손, 위생 문제 유발) ▲까치(소음 민원, 전선 훼손, 공격성 문제) ▲까마귀류(쓰레기 훼손, 농작물 피해) ▲도심 고라니·멧돼지(인명 사고 및 농경지 피해) 등이다.

이 가운데 비둘기는 ‘도심 상시 서식 종’이라는 점에서 개체 수 관리의 핵심 대상으로 지목돼 왔다.

‘먹이 주기 금지’ 정책의 취지와 실효성

환경부와 지자체는 먹이 주기 금지 정책이 비둘기 개체 수 증가의 주요 요인인 인위적 먹이 공급을 차단하기 위한 최소한의 관리 수단이라는 입장이다.

도심 비둘기는 천적이 거의 없고, 시민의 상습적인 먹이 주기로 번식률이 높아지며, 이로 인해 개체 수가 자연 조절 범위를 넘어선다는 설명이다.

정책 당국은 “먹이 주기 금지는 비둘기를 즉각적으로 죽이기 위한 조치가 아니라, 인위적 밀집을 완화해 장기적으로 개체 수를 안정화하는 관리 수단”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포획·살처분보다 비폭력적인 방식이라는 점도 근거로 제시된다.

다만, 먹이 주기 금지가 실제 개체 수 감소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국내 장기 연구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점에서 실효성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지자체는 어떤 조례로 규제하나...“과태료 최대 100만 원”

개정 야생생물법(2025년 1월 24일 시행)은 지자체장이 조례를 통해 유해야생동물에 대한 먹이 주기를 제한·금지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유해야생동물 먹이 주기 금지에 관한 조례를 만들어 지난 1월부터 비둘기·까치 등 유해야생동물에 먹이 제공을 금지하고, 위반 시 최대 100만 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서울 외에도 수도권과 대도시를 중심으로 유사 조례 도입이 확산되는 추세다.

시민단체의 반론

동물권단체들은 이 제도가 사실상 ‘동물 아사(餓死)를 유도하는 정책’이라고 강하게 반발한다.

케어, 한국동물보호연합, ‘승리와 평화의 비둘기를 위한 시민 모임’ 등은 이날 헌법재판소 앞 기자회견에서 "비둘기는 이미 인간의 도시 구조에 적응한 준가축화된 생명체"라며 "먹이 주기 금지는 인간이 만든 환경에서 생존 기반을 끊는 행위"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대안으로 불임 먹이(피임 사료) 정책을 제시한다.
실제로 스페인 일부 도시에서는 불임 먹이 도입 후 비둘기 개체 수가 약 55% 감소했고,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시에서도 약 50% 감소 효과가 있었다는 해외 사례를 근거로 든다.

헌법소원의 핵심 쟁점...“공익 vs 기본권, 어디까지 허용되나”

동물단체들이 제기한 헌법소원의 핵심은 다음 네 가지다.

첫째, 생명권 침해: 먹이 차단은 간접적 생명 박탈 행위이다.

둘째, 행복추구권 침해: 시민의 돌봄·공존 행위까지 처벌함은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

셋째, 과잉금지 원칙 위반: 덜 침해적인 대안(불임 먹이)이 있음에도 전면 금지는 위헌이다.

넷째, 평등 원칙 문제: 특정 종만 ‘유해야생동물’로 낙인찍는 것은 무리다.

이에 대해 정부와 지자체는 “동물의 생명권은 헌법상 인간 기본권과 동일 선상에서 보호되는 개념이 아니며, 공공위생과 안전이라는 중대한 공익을 위한 최소한의 규제”라고 맞서고 있다.

공존의 해법은 무엇인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먹이 주기 전면 금지와 무제한 허용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불임 먹이 도입 ▲서식 밀도 관리 ▲시민 교육 ▲과학적 모니터링을 결합한 통합적 도시 야생동물 관리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향후 도시 야생동물 정책의 방향뿐 아니라, 동물권이 헌법적 보호 영역으로 어디까지 인정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