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호우로 범람한 울산 태화강. 연합뉴스 독자 손주영 제공
2025년 여름, 한반도는 200년 만의 폭우를 맞았다.
도시의 공원과 가로수는 뿌리째 뽑히고, 등산로는 무너졌으며, 산은 스스로를 지탱하지 못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무너진 것은 아니다. 자연은 때로 재난을 견디는 해법을 품고 있다.
‘살아 있는 인프라’를 만드는 사람, '대한민국 1호 조경 커뮤니케이터' 차민성 실장에게 그 실마리를 물었다.
“문제는 비가 아니라, 물이 빠지지 않는 구조입니다”
Q. 이번 폭우로 자연환경 피해가 심각합니다. 원인을 어떻게 보십니까?
차민성 실장
“이번 비는 단순한 폭우가 아니라 기후재난입니다.
문제는 ‘얼마나 많이 왔느냐’보다 ‘물이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는 데 있어요.
도시의 공원, 학교 운동장, 가로수는 물론, 산속 등산로까지 모두 침수되거나 무너졌습니다.
자연을 위한 설계가 없었다는 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입니다.”
“식물은 침묵 속에서 신호를 보냅니다”
폭우가 식물에게는 어떤 영향을 줍니까?
차실장 : “식물은 말을 하지 않지만 ‘신호’를 보내죠. 잎이 노랗게 변하고, 뿌리는 썩습니다.
특히 도시에서는 화분, 녹지대, 가로수 등 ‘작은 생태계’가 더 빨리 손상돼요.
물이 빠지지 않고 고이면 뿌리는 산소를 못 받고 썩기 시작합니다. 이걸 '과습 스트레스'라고 하죠.”
“살아남는 식물에는 설계가 있습니다”
조경적으로 어떤 해법이 있습니까?
차실장: “첫째는 배수 설계입니다. 자갈이나 모래로 배수층을 만들고,
뿌리 주변의 흙 구조를 공기층으로 설계해야 합니다.
둘째는 식재 선택이에요. 로즈마리, 라벤더, 월동형 다년초 같은 식물은 장마에 약하기 때문에
습도 내성이 강한 종 중심으로 식재를 바꿔야 하죠.
셋째는 지형의 흐름을 읽는 겁니다. 물길이 모이는 지점은 피하거나 분산시켜야 합니다.”
“등산로는 자연 속 길이 아니라, 자연을 지키는 길이어야 합니다”
산림 훼손과 등산로 붕괴도 심각했는데, 그 원인은요?
차실장 : “등산로가 단순한 ‘산길’이라고 생각하는 게 문제입니다.
많은 등산로가 물길을 고려하지 않고 깔려 있어, 폭우가 나면 그 길로 물이 집중돼 흙이 쓸려 내려갑니다. 결국 산사태로 이어지죠.”
“산에도 조경적 설계가 필요합니다.
계단식 구조로 물을 천천히 흘려보내고, 유도 홈이나 측구를 설치해 배수를 돕고,
경사면은 토종 식생으로 덮어 뿌리로 흙을 잡아주는 것이 기본입니다.
자연을 방치하는 게 아니라 지켜줄 구조를 만들어야 해요.”
“우리는 자연을 가꾸는 게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합니다”
조경이 이번 기후재난 속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차실장: “조경은 단순히 ‘꾸미는 것’이 아닙니다.
기후위기를 견디는 생태 기반 인프라, 다시 말해 ‘살아 있는 방어선’이에요.
공원과 숲, 등산로, 학교 운동장조차도 물과 흙, 식물을 연결해 기후 충격을 흡수하는 시스템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학교 운동장에 투수성 포장을 도입하거나,
도시 공원에 빗물 정원이나 저류조를 설치하면 도시 전체의 물순환이 달라집니다.
이게 바로 조경이 만드는 자연 기반 해법(Nature-based Solutions)입니다.”
잘 설계된 자연이 재난을 견딘다
차민성 실장은 말했다.
“식물은 이번 폭우와 같은 기후 재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대신 우리가 그들에게 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줘야 해요."
"재난은 자연을 제대로 활용하는 설계로도 줄일 수 있습니다. 자연은 스스로 회복할 수 있지만, 우리가 난개발과 같은 생태계를 외면한 설계로 그 회복을 방해하지는 말아야겠죠.”
우리는 이제 ‘기후위기를 견디는 도시’, ‘살아남는 생태계’를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200년 만의 기록적 폭우는 그 신호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