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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남강댐 현장 점검하는 수공 관계자들 . 한국수자원공사 제공
24일 오전, 남강댐 현장. 평소 푸른 물결이 일렁이던 댐 표면이 온통 갈색과 녹색의 부유물로 뒤덮여 있었다. 마치 거대한 쓰레기장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지난 16일부터 내린 극한 호우의 흔적이 고스란히 떠있었다.
"이 정도 규모는 처음 봅니다." 현장을 지휘하는 한국수자원공사 관계자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남강댐에만 1만7천㎥의 부유물이 떠내려왔다. 전국 18개 댐 전체로는 총 3만3천㎥. 수공 측은 "잠실야구장 내부를 약 1.25m 높이로 가득 채우고도 남을 양"이라고 설명했다.
하천변 초목부터 생활쓰레기까지
댐 표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부유물의 정체가 드러났다. 대부분은 하천변에서 떠내려온 초목류였다. 뿌리째 뽑힌 나무들, 갈대와 억새 같은 수생식물, 그리고 각종 잡풀들이 엉켜있었다. 호우로 불어난 물살에 휩쓸려 온 것들이다.
하지만 자연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플라스틱 병, 비닐봉지, 스티로폼 상자 등 생활쓰레기도 상당량 섞여 있었다. 심지어 자전거 바퀴, 의자 다리 같은 대형 폐기물도 눈에 띄었다. 상류 지역 주민들의 생활 흔적이 홍수와 함께 댐까지 떠내려온 것이다.
"보통 태풍이나 큰 비가 온 뒤에는 이런 일이 생기지만, 이번처럼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양이 몰린 적은 드물어요." 20년 경력의 댐 관리 직원이 설명했다.
선박과 굴착기 총동원한 제거 작업
오전 10시, 본격적인 제거 작업이 시작됐다. 수문 방류가 끝나 작업자 안전이 확보된 남강댐을 시작으로 대규모 수거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먼저 소형 선박들이 댐 표면을 누비며 떠다니는 부유물을 그물로 건져 올렸다. 배 위의 작업자들은 긴 갈고리를 이용해 큰 나무 조각들을 끌어당겼다. 물에 젖은 나무는 예상보다 훨씬 무거워 두세 명이 힘을 합쳐야 겨우 건져낼 수 있었다.
댐 가장자리에서는 굴착기가 활약했다. 물가로 떠밀려온 부유물 더미를 굴착기 버켓으로 퍼내 트럭에 실었다. 한 번에 수 톤씩 처리되었지만,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양이 많았다.
"하루 종일 해도 전체의 10분의 1도 못 치우는 것 같아요." 굴착기 운전자가 고개를 저었다.
폭염 속 조류 번식 우려
작업자들의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부유물 제거 작업은 더욱 힘겨웠다. 하지만 서두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부유물이 썩으면서 물의 영양염류 농도가 높아져요. 여기에 고온까지 겹치면 조류가 급속히 번식할 수 있거든요." 수질 관리 담당자의 설명이다. 실제로 부유물이 많이 몰린 구역은 물색이 탁하게 변해있었다.
조류가 대량 번식하면 물고기가 떼죽음하고, 식수원으로 사용되는 댐의 수질이 크게 악화될 수 있다. 그래서 폭염에도 불구하고 24시간 교대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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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보현산댐에 부유물 처리 현장. 한국수자원공사 제공
쓰레기에서 자원으로의 변신
수거된 부유물은 임시 적치장으로 옮겨져 세심한 선별 작업을 거쳤다. 생활쓰레기와 자연물을 구분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였다.
고사목이나 큰 나무 조각들은 따로 모아 퇴비나 땔감, 톱밥으로 가공할 예정이다. "농촌 지역 주민들에게 지원하면 좋은 자원이 됩니다." 재활용 담당자가 설명했다. 갈대나 억새 같은 초본류도 퇴비 원료로 활용된다.
반면 플라스틱이나 비닐 등 생활쓰레기는 폐기물처리업체에 위탁해 소각하거나 매립할 계획이다. 전체 부유물 중 약 20% 정도가 생활쓰레기로 추정된다고 한다.
"신속한 처리가 관건"
윤석대 한국수자원공사 사장은 현장을 둘러본 뒤 "수질이 악화하지 않도록 부유물을 신속하게 처리하겠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수공은 남강댐 외에도 주암댐(2천㎥), 섬진강댐, 용담댐 등 전국 18개 댐에서 동시에 부유물 제거 작업을 벌이고 있다. 총 동원 인력만 수백 명에 이른다.
"홍수는 지나갔지만 진짜 전쟁은 지금부터입니다." 현장 관리자의 말이다. 무더위 속에서도 묵묵히 계속되는 부유물과의 전쟁. 깨끗한 물을 지키기 위한 이들의 노력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저녁 해가 지면서 하루 작업이 마무리됐지만, 댐 표면에는 여전히 수많은 부유물이 떠있었다. 내일도, 모레도 이 고된 작업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