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


괴산으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고교 동창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가 운영하는 ‘다시봄 목공방’에서 하루를 보낼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하지만, 출발부터 순탄치 않았다. 대중교통 파업으로 복잡한 전철 안에서 지연된 시간에 쫓기다가 결국 예정된 버스를 놓쳤다. 한 시간 늦게 출발한 9시 50분 괴산행 시외버스. 이 모든 난리통에도 마음 한구석엔 친구와 만날 기대가 가득했다.

12시쯤 괴산터미널에 도착하니, 세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문경에서 샤인머스캣 농장을 운영하는 친구와 포항 구룡포에서 올라온 친구까지.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에 웃음꽃이 피었다. 괴산 읍내에서 삼겹살 정식을 나누며, 옛 추억과 근황을 주고받는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각종 목공도구로 가득한 공방


다시봄 목공방: 나무에 새겨진 철학

읍내에서 조금 떨어진 다시봄 목공방은 작지만 아늑한 공간이었다. 목공 친구는 정교한 손길로 나무를 다듬으며 살아왔다. “목공은 삶을 조각하는 일이야.” 그는 말했다. 목공방 구석구석에는 그의 철학이 녹아 있었다. 우린 그의 설명을 들으며 작업대를 둘러보고, 나무 결에 손끝을 스쳤다. 그곳에서 나무가 어떻게 단순한 소재를 넘어 사람과 사람을 잇는 가구가 되는지 직접 느낄 수 있었다.

목공의 진짜 마법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데 있다. 공방의 공구들을 이것저것 둘러보다 잠시 탁자에 둘러앉은 우릴 마주 보며 목공 친구는 말했다.

“탁자는 사람을 모으는 거야. 식사든 대화든, 여기서 삶이 움직이는 거지.”

그 말처럼 탁자는 단순한 가구가 아니다. 가족이 모여 식사를 나누고, 연인이 손을 잡고 미래를 이야기하며, 친구가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는 중심에 항상 탁자가 있었다.

나무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다. 우리가 태어날 때 흔들리는 나무 요람으로 시작해, 마지막 안식처로 돌아가는 관이 되어주는 존재. 하지만 목공이란 단순히 나무를 깎고 붙이는 기술을 넘어선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빚어내는 예술이자, 세상을 움직이는 혁신이었다.

목공은 단순한 수공예가 아니다.


오늘날 목공은 단순한 수공예가 아니다. 재활용 나무로 만든 가구는 환경을 지키는 상징이 되었고, 장애인을 위한 맞춤 가구는 삶의 질을 높이는 도구로 자리 잡았다. 전통 기법을 이어가는 장인이 있는가 하면, 3D 프린터로 나무를 다루는 현대적 목수들도 있다. 목공은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우리를 잇는다.

목공이란 단순히 나무를 깎고 붙이는 기술을 넘어선다.


나무는 변한다. 씨앗으로 시작해 나무가 되고, 목재가 되어 우리의 손에 닿는다. 그리고 목공은 그 변화를 아름답게 빚어낸다. 의자, 문, 탁자, 집, 심지어 예술 작품까지. 한 그루의 나무가 삶을 바꾸고, 한 목공 장인의 손길이 세상을 바꾼다. 그는 대한민국의 청정마을 괴산에서 다시봄 목공방을 열고 오늘도 나무꾼의 철학을 다듬어 가고 있다.

포항에서 온 친구가 가져온 과메기를 꺼내며 한마디 했다. “목공도 좋지만, 이럴 땐 낮술 한잔 해야지.” 과메기를 안주 삼아 나눈 낮술은 목공방의 한나절에 깊은 여운을 더해 주었다. 나무와 친구, 그리고 따뜻한 대화 속에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문경의 농막: 땅과 함께 숨 쉬는 삶

알알이 열린 샤인머스캣


해가 기울 무렵, 우린 다른 친구의 농장이 있는 문경으로 향했다. 그곳은 포도와 고추, 그리고 사과대추가 주렁주렁 달린 작은 낙원이자, 그의 땀과 열정이 담긴 공간이었다. 비닐하우스 옆 농막에 앉아 차 한잔을 나누며, 농사꾼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농사는 기다림의 예술이야.” 그는 말했다. 샤인머스캣이 열리기까지 최소 2년. 매일같이 손길을 더하고 자연과 끊임없이 대화해야 한다는 그의 말에는 땅과의 동행에서 오는 깊은 철학이 담겨 있었다. 그는 단순히 농작물을 키우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샤인머스캣을 “작은 행복의 묶음”이라 부르며, 자연과 인간을 연결하려는 그의 마음은 우리를 감동시켰다.

비닐하우스와 고추


한 송이의 샤인머스켓, 한 알의 사과대추를 손에 넣기까지 농부는 얼마나 많은 싸움을 치러야 하는가. 시간과 체력, 대지와 비, 바람, 그리고 서리에 맞서는 싸움. 그러나 그 싸움 끝에는 땅이 주는 위대한 선물, 자연이 주는 보답이 있다. 대한민국 문경에는 그 고단한 싸움을 삶의 낙으로 바꿀 줄 아는 시인 같은 농부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흙 냄새를 맡으며 자랐다. 아버지가 키우던 감나무 밑에서 놀던 그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과 여름날 내리치는 소낙비를 똑같이 사랑했다. 그러나 농사일이 낭만적이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은 건 그가 오랜 직장을 퇴임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귀농한 지 일 년 반, 그동안 씨를 뿌리고 묘목을 심고 새순을 가지치기하며 끊임없이 손길을 쏟았다. 여름에는 폭염과 싸우고 겨울에는 서리와 싸우며 한 걸음씩 나아갔다. 그는 사과대추라는 생소한 과일에도 도전하고 있다. “대추는 왜 작아야만 할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이 특별한 대추는 크기가 사과만 하고 당도가 높아 한 번 맛본 사람은 절대 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작물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기온, 습도, 토양 상태가 조금만 틀어져도 작황이 나빠졌다. 실패가 거듭되었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국내 최초로 유기농 사과대추 인증에 도전하고 있다. 조만간 그의 대추는 문경의 대표 특산물이 될 것이다.

고즈늑한 농촌 풍경


농부는 땅을 가꾸고, 작물을 키워내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그는 지역 농부들과 협동조합을 만들어 농산물 가공 사업에도 도전할 생각이다. 이 과정에서 농촌의 일자리도 늘어나고, 도시 소비자와 농촌 생산자가 직접 연결되는 새로운 유통 구조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그는 농부이자 시인이자, 세상을 바꾸는 혁신가이다.

포도 알마다 웃음꽃이 피기를 바란다는 마음으로, 매년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문경의 한적한 농로 양쪽, 그의 농장에서는 매년 '포도 축제'가 열릴 것이다.

작은 혁명가들

친구들은 나무를 다듬으며 땅을 가꾸며, 각자의 자리에서 세상을 조금씩 바꾸고 있었다. 그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목공예품과 농작물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삶의 철학이자 예술이었다.

그날 밤, 우리는 문경의 조용한 농장에서 포도밭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무의 결에서 시작된 하루가 대지의 숨결로 끝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