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결실은 늘 의외의 자리에서 피어난다.
조선 중기의 송강 정철과 고산 윤선도는 그 대표적인 예다. 정철은 시와 산문, 시조와 가사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천재성을 발휘한 문인이었다.
하지만, 그 문장력이 가장 강렬하게 드러난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상소문이었다. 그는 임금과 관료의 잘못을 직설적으로 지적하고, 정적의 잘못을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파고들며 붓으로 정국을 흔들었다.
그의 상소문은 단순한 탄원이 아닌 하나의 정치적 수필이자, 붕당정치의 도화선이 되는 문학적 문서였다.
대표적인 예가 선조 재위 시절에 올린 《탄핵상소》이다. 정철은 동인의 핵심 인물인 이이, 성혼의 노선을 비판하며 서인의 입장을 강하게 주장했다.
이 상소는 붕당을 분화시키는 불씨가 되었고, 이후 동서 분당이라는 조선 정치사의 큰 전환점을 만든다.
그의 글은 아름다운 수사와 절제된 문장, 날카로운 현실 인식이 어우러진 정치 문학의 정수라 할 만하다.
고산 윤선도 역시 상소와 정치적 직언으로 인해 유배를 반복한 인물이다. 광해군 때 북인의 공격을 받았고, 인조반정 이후에도 관직을 멀리하며 유배 아닌 유배의 삶을 살았다.
그러다 우연히 정착하게 된 완도 보길도에서 그는 새로운 문학의 경지를 연다. 자연과 고요 속에서 써 내려간 《어부사시사》는 계절을 따라 살아가는 어부의 삶을 노래하며, 세속을 벗어난 인간 존재의 자유와 평화를 담는다.
고산의 시조는 자연에 귀의한 지식인의 내면 고백이자, 정치적 상처 위에 피어난 치유의 문학이다.
정약용도 빼놓을 수 없다. 신유박해로 강진에 유배된 그는 오히려 그곳에서 실학의 기틀을 다지는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목민심서》, 《흠흠신서》 같은 실용 문헌은 조선 후기 행정과 형법 개혁의 청사진을 제시했고, 《자찬묘지명》에선 스스로의 삶을 냉철하게 성찰했다. 그의 글은 유배지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열린 정신으로 탄생한 '실학적 산문 문학'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조선의 문인들은 상소문과 유배기, 정치적 수사 속에서 뜻하지 않게 문학의 한 장르를 열어젖혔다. 그들의 글은 정치적 무기가 되었고, 동시에 시대의 풍경과 인간의 내면을 담은 문학적 기록으로 남았다. 이는 문학의 세렌디피티, 즉 우연히 발견한 문학의 얼굴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뜻밖의 문학은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오늘 우리 일상 속에서도 문학의 세렌디피티를 발견하곤 한다. 축사, 덕담, 추모사, 주례사, 혹은 어떤 영상 자막처럼 우연히 빛나는 글들 속에 숨어 있다.
페이스북에 올린 고교 선배의 전언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동기가 며느리를 보는 날, 시인이기도 한 신랑의 아버지는 축사를 통해 신랑 신부에게 "부모에 대한 도리같은 것에 얽매이지 말고 자신의 삶을 살아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고백, 자신도 모르게 자식들에게 효도 같은 것을 기대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는 솔직한 회한이 전해졌다. 결혼식장 스크린에 띄운 시도 깊은 여운으로 남았다.
시인은 자녀의 결혼식을 "귀하고 귀한 우주적 사건"이라 명명했다.
또 다른 기억도 떠오른다. 고교 동기 아들의 결혼식장. 프랭크 시나트라의 재즈팝송 'Fly Me to the Moon'을 축가로 멋지게 부른 신랑 후배가 옆 테이블에 앉아 있어 밴드 이름을 물었더니 '장덕철'이라 했다.
집에 와서 검색해 보니 '장중혁, 덕인, 임철' 3인조 밴드였고, 복면가왕에도 출연한 덕인이 바로 그 친구였다.
지하철 두 번 갈아타고 버스 한 번 더 타고 도착한 결혼식은 충분히 값진 시간이었다.
화사한 꽃향기와 은은한 샹들리에 조명 아래서 하객들의 축복을 받은 신랑 신부는 아름다웠고, 사회자의 유쾌한 진행과 신랑 아버지가 준비한 영상과 유려한 덕담, 친구의 축사와 축가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잘 어우러진 토크 콘서트 같았다.
특히 신랑 아버지의 덕담 몇 마디는 잊히지 않는다:
"오늘은 미국 독립기념일인데, 우리 아들이 나의 식민지에서 독립하는 날이기도 하다. 하지만 꿈 깨라. 너는 독립이 아니라 새 가정이라는 또 하나의 식민지 영토의 노예가 되길 선택했을 뿐이다. 아들아, 결혼해줘서 고맙다. 더 이상 너는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생각을 버려라. 며늘아, 우리 아들과 결혼해줘서 고맙다. 우리 아들은 절대로 결혼 못할 줄 알았다. 지금까지 내가 떠맡았던 양육의 짐을 너한테 넘긴다. 이제부터 주말에 널 혼자 두고 남편이 친구 녀석들과 윈드서핑을 가버리는 무모한 자유를 허용하지 않아도 좋다."
우연하고 사적인 자리에서 나온 말들이 때론 정철의 상소문만큼 강한 울림을 남긴다. 이것이 바로 문학의 또 다른 얼굴이다. 고요한 결혼식장에서, 스크린에 흐르는 자막 한 줄에서, 우리는 뜻밖의 문학을 발견한다.
나는 말하고 싶다. "진심이 깃든 글에는 문학이 숨어 있다"고. 세렌디피티의 문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