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빈의 '푸른 도시, 서울의 공원' 표지 이미지. 이유출판 제공
당연한 일상이 된 서울의 녹색 공간들
서울숲, 월드컵공원, 경의선숲길... 이제는 당연한 듯 우리 곁에 있는 서울의 대표 공원들. 하지만 이 녹색 오아시스들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푸른도시, 서울의 공원』)은 서울시 푸른도시국장을 두 차례 역임한 최광빈 전 국장이 40여 년간의 공직 생활을 통해 일궈낸 서울 공원 조성의 생생한 기록이다.
비 맞은 나무껍질 색에 담긴 자연 철학
백령도라는 작은 섬에서 태어난 소년이 어떻게 서울 녹지 행정의 전설이 되었을까. 책 곳곳에는 자연에 대한 저자의 깊은 애정과 철학이 스며있다. 특히 그가 20여 년간 고집한 '기와 진회색'은 그의 자연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비 온 뒤 물기를 머금은 나무껍질을 닮은" 이 색깔을 공원 시설물에 일관되게 적용한 것은 단순한 미적 선택이 아니었다. 인공물이 자연을 압도하지 않고, 오히려 숲을 더 돋보이게 하려는 배려의 철학이었다.
4일 만에 결정된 서울숲, 쓰레기장에서 탄생한 월드컵공원
서울숲 조성 과정은 저자의 과감한 행정력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35조 원 가치의 거대한 땅을 단 4일 만에 공원 조성으로 결정한 과정에는 개인의 욕망을 뛰어넘는 도시의 비전이 담겨있었다. 또한 쓰레기 매립장이었던 월드컵공원 일대를 200만 제곱미터 규모의 초대형 공원으로 탈바꿈시킨 것은 환경 복원과 도시재생의 모범 사례가 되었다.
작지만 긴요한 도시의 숨구멍
저자는 대형 공원뿐만 아니라 '작지만 긴요한 소공원'에도 남다른 애착을 보였다. "출근길에 생각도 정리하고, 점심시간에 잠시 동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도시의 숨구멍으로 여기며, 쌈지공원과 마을마당 조성에 힘썼다. 이는 백령도 소년 시절부터 품어온 자연에 대한 그리움과 사람들이 자연 속에서 쉬어가는 모습에 대한 따뜻한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다.
보신주의를 뛰어넘은 소신과 열정
책은 또한 공원 조성 과정의 현실적 어려움도 솔직하게 담아낸다. 부서 간 갈등, 예산 확보의 어려움, 토지 보상 문제, 각종 민원과 협박까지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도 꺾이지 않은 소신이 인상적이다. 체비지로 팔릴 뻔한 토지를 공원으로 전환하기 위해 고위 간부에게 "제가 벌어놓은 자금에서 투자해 달라"고 직언하는 대목에서는 공무원의 보신주의를 뛰어넘는 열정을 엿볼 수 있다.
최광빈 전 서울시 푸른도시국장. 헤럴드 경제 사진 캡처
현장을 누빈 도시 디자이너의 세심함
저자는 현장의 명장들을 기록한 수첩을 항상 들고 다니며 즉석에서 자문을 구하고 해결책을 찾았다. 펜스의 재료와 색깔, 안내판 하나에도 도시의 품격과 시민의 시선을 고려했던 세심함은 단순한 행정가를 넘어 도시 디자이너의 면모를 보여준다.
오세훈과 박원순, 두 시장 시절 모두 푸른도시국장을 역임한 것은 그의 전문성과 일관된 철학이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퇴직 후에도 노원구 힐링도시국장으로 5년간 활동하며 동막골 '수락 휴', 불암산 힐링타운 조성에 참여한 것은 자연에 대한 그의 변함없는 사명감을 보여준다.
소명 의식이 만든 도시의 변화
『푸른도시, 서울의 공원』은 단순한 회고록을 넘어 한 사람의 소명 의식이 어떻게 도시 전체를 바꿀 수 있는지 보여주는 감동적인 기록이다. 백령도 섬 소년의 자연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 서울 시민 모두의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진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공공 영역에서 일하는 이들에게는 큰 영감을, 일반 독자들에게는 우리가 누리는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