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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한국의 10대 수출 품목은 반도체와 자동차, 무선통신기기, 선박, 석유제품, 컴퓨터, 합성수지, 철강판, 자동차부품, 영상기기였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올해 10대 수출 품목은 이 중에서 컴퓨터와 영상기기가 빠지고 디스플레이와 정밀화학 원료가 새로 편입했을 뿐 나머지 8개 품목은 20년째 그대로다.
2005년 미국 증시에서 시가총액 기준 10대 기업은 엑손모빌, 제너럴일렉트릭(GE), 마이크로소프트(MS), 씨티은행, 월마트 등이었는데 올해 순위를 보면 엔비디아, 애플, 아마존 등이 상위를 차지했다. 20년간 10대 기업 순위에 남아있는 것은 MS 한 곳뿐이었고 나머지 9개 기업이 모두 새로 10위 안에 진입한 기업이다. 같은 기간 자산총액 기준 한국의 10대 기업은 삼성, SK, 현대차 등 그대로였고 HD현대, 농협 등 2곳만 새로 진입했다.
이렇게 수 십년간 정체된 산업 구조에 대한 경고음은 오래전부터 울리고 있었다. 새로운 기술 개발이나 혁신, 신산업 육성 없이 오래전 제품과 산업에 안주한 결과 경쟁력과 수익성이 떨어져 여러 산업과 기업이 급속히 위기로 빠져들고 있다. 미국발 관세와 내수 침체로 인한 내우외환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경쟁력을 잃은 산업구조로 인해 수익성이 떨어진 산업이 한두 개가 아니다.
올 상반기 국내 매출 상위 500대 기업의 영업이익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5.9% 늘었지만, SK하이닉스 한 기업을 빼면 1.7% 감소했다. 기업 수익성에도 양극화가 극심해졌다는 뜻인데 첨단 기술개발과 경쟁력 확보에서 밀리면 국제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국내 제조업은 수 십년간 그 구조와 기술, 상품 등이 변하지 않고 정체돼 있었는데 그동안 중국 산업과 제품이 무서운 속도로 추격해 우리 자리를 빼앗고 있다. 국내 제조업체 10곳 중 8곳의 주력 제품 시장이 레드오션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는 우리 제조업의 정체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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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왼쪽에서 일곱번째)과 국내 석유화학 기업 최고경영자들이 2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석유화학업계 사업재편 자율협약식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의 사업재편 협약을 계기로 또다시 구조조정의 계절이 돌아왔다. 구조조정(Restructuring·構造調整)은 기업의 사업구조나 조직의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바꾸는 작업이다. 성장성이나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은 줄이거나 없애고, 중복된 것은 합치며, 당장 필요하지 않은 부동산 등의 자산은 팔아 자금을 마련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일부 기업의 도산이나 실업자 양산 등 부작용이 발생하고 그 때문에 반발이나 저항도 발생한다. 하지만 고통과 저항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구조조정을 통해 효율성과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나 산업으로 거듭나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다. 10년 전, 20년 전의 기술과 사업구조로는 무섭게 뒤쫓아오는, 아니 이미 많은 분야에서 우리를 추월해버린 중국 등에 밀릴 수밖에 없다.
올해 초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대폭 낮춰 잡으면서 "이게 우리의 실력이며 구조개혁을 하지 않았으니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 구조조정이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산업이나 기술을 육성하지 않아 주력업종의 경쟁력은 떨어졌고 노동력도 고령화가 심각해졌으니 예전과 같은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외환위기 직후 구조조정의 선봉에 섰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시장에 맡기되 나서야 할 문제라면 늦어선 안 된다"고 했다. 이번 석유화학 산업의 위기는 늦었지만 산업구조 개편의 첫 단추를 꿰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 제조업 전반에 걸쳐 경쟁력을 진단하고 신기술 개발로 중장기 먹거리를 키워내는 산업구조 개편의 청사진이 필요한 시점이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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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0일 "석유화학 업계가 뼈를 깎는 각오로 사업재편에 나서준다면 정부도
최선을 다해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