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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평창동 김종영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조각가 백연수 개인전 '끝나지 않은 장면'. 김종영 미술관 제공
나무는 살아 있는 조각 재료라 불린다. 베어진 순간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건조 작업을 하지 않으면 갈라지고 터지며 뒤틀리기 때문이다. 건조 작업을 거친 뒤에도 계절이 지나며 수축과 이완이 이어져 형태가 달라지고, 산소에 노출돼 변색하기도 한다.
목조 가구의 경우 이런 변화를 막기 위해 유약을 발라 공기나 습기와의 접촉을 막는다. 하지만 조각가 백연수(51)의 목재 조각 작품은 이런 식의 마무리 작업을 하지 않고 나무를 그대로 노출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나무가 변하는 모습까지 작품을 만드는 과정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작가의 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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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백연수가 9일 서울 평창동 김종영 미술관에서 자기 작품 '끝나지 않은 장면 1'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5.9.10. laecorp@yna.co.kr
나무를 깎고 채색해 나무 안에 숨겨진 모습을 끄집어내는 조각가 백연수의 개인전 '끝나지 않은 장면'이 서울 평창동 김종영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9일 전시회장에서 만난 작가는 "시간이 갈수록 나도 변하고 주변 환경도 변하는 것처럼 나무도 조금씩 변하는 것이 좋아 나무로 작품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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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백연수 개인전 '끝나지 않은 장면'에 전시 중인 2019년 작 바나나(왼쪽)와 아몬드브리즈의 모습. 연합뉴스
이번 전시는 총 3개의 전시실로 구성돼 있으며 작가의 작품 세계 변화를 좇아간다.
2층 2전시실은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사물들을 나무 조각으로 재현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2019년 작 '바나나'는 나무를 깎고 색을 칠해 바나나를 있는 그대로 묘사한 작품이다.
그런데 조각을 놓는 좌대를 따로 만들기보단 나무 한 통의 윗부분은 바나나로 만들고, 아랫부분은 나무 좌대로 만들어 좌대와 사물을 한 몸으로 만들었다. 바나나 조각이 놓였다기보단 나무에서 바나나가 피어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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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백연수 개인전에서 전시 중인 연작 '사물의 조형 연구' 작품들 모습. 연합뉴스
3층 3전시실은 작가의 '사물의 조형 연구' 연작들이 전시돼 있다. 하나의 나무를 사용해 여러 개의 두루마리 휴지가 쌓여 있는 모습을 조각했다.
작가는 "두루마리 휴지는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어느 회사 제품이든 모두 똑같이 원통형의 모습이고, 처음이나 다 썼을 때 모습도 두께만 달라질 뿐 모양은 그대로다"라며 "단순하지만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완전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어 작품을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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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백연수 개인전에서 전시 중인 2025년 작 '끝나지 않은 장면 1'. 연합뉴스
1층 1전시실은 작가의 최근 작업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나무가 가진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나무 안에 숨겨진 모습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이다.
전시회 제목과 같은 '끝나지 않은 장면 1'이라는 제목의 연작은 커다란 통나무 형태를 그대로 살린 채 무수한 돌기 모양의 나뭇조각들이 튀어나온 모습이다. 나무 안에 숨겨져 있는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모습을 시각화했다.
작가는 "우리가 보는 나무는 가지가 뻗어나가는 모습이지만 나무 안의 단단히 숨겨진 내용은 볼 수 없어 내부에 숨겨져 있는 형태를 보여주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며 "작업하면서 변하는 감정을 작품에 반영하고, 이후에도 반영될 수 있도록 열린 상태로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11월 2일까지이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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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백연수 개인전에서 전시 중인 2025년 작 '드러나는 것'.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