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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진주 본사 사옥 모습. 한국토지주택공사 제공
정부가 9·7 공급대책에서 즉각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공공택지 민간 매각을 중단하고 직접 시행으로 전환하기로 함에 따라 시장도 혼란에 빠졌다.
현재 조성 중인 3기 신도시를 비롯해 수도권 공공택지 상당수의 민영 분양주택이 사라지게 되면서 당장 청약통장 가입자들은 청약 자격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건설업계는 연간 약 4만호에 달하던 공공택지 민간 분양용지가 모두 민간참여 공공주택 사업으로 전환되면서 '적정 공사비'를 요구하고, 중소 건설사들 사이에는 사업 존폐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LH 직접시행 전환, 공공택지내 민영주택은 없다…청약 대기자들 "청약자격 바뀌나" 불안
9일 국토교통부와 건설업계에 따르면 이번 9·7대책에서 LH 직접 시행으로 전환해 민간참여 공공주택 사업(이하 민참사업)으로 공급될 택지는 주로 수도권 3기 신도시가 주축이 될 전망이다.
3기 신도시 가운데 2019년 1차로 지정된 남양주 왕숙·왕숙2, 하남 교산, 인천 계양, 고양 창릉, 부천 대장지구 등 5개 지구는 토지 보상이 마무리되며 2023년부터 민간에 공동주택용지가 분양됐지만 아직 미매각된 용지가 남아 있다.
2022년에 2차 3기 신도시로 지정된 광명 시흥지구와 의왕·군포·안산, 화성 진안, 화성 봉담3, 인천 구월2 공공주택지구는 아직 보상도 안된 사업 초기 단계로 민간에 매각 전인 주택용지들이 많다.
이와 함께 화성 동탄·파주 운정 등 2기 신도시 일부와 중소 공공택지에도 민참사업 전환 물량이 포함돼 있다.
국토부는 오는 2030년까지 수도권에서 LH 직접 시행 전환으로 5만3천호, 용적률 상향 등 토지이용 효율화 조치로 7천호 등 총 6만가구를 민참사업으로 내놓을 방침이다.
이들 주택은 민간이 건설하지만 유형상 모두 공공주택으로 분류된다.
현재 신도시 등 공공택지 조성은 택지개발촉진법이 아닌 공공주택특별법을 따르면서 건설 주택의 35% 이상은 공공임대로, 30% 이상은 공공분양으로 공급해야 한다. 공공분양·임대 물량 전체로는 건설주택의 50%를 넘어야 한다.
그런데 앞으로는 절반도 안 됐던 민간 물량이 사라지면서 공공택지에 건설되는 주택 전체가 공공주택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정부는 공공주택 물량 증가를 감안해 공공분양 물량 상한을 완화하는 내용의 시행령 개정도 추진한다.
공공택지내에서 민영 아파트로 공급돼야 할 물량이 대거 공공주택으로 바뀌면서 당장 신도시 분양을 기다리던 청약 대기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LH 민참사업은 민간이 짓고, 민간 건설사의 브랜드를 붙이지만 유형상 공공주택이어서 청약자격도 LH 공공분양과 같다.
현재 수도권 공공주택의 청약자격은 무주택가구 구성원으로 주택청약종합저축 가입 기간이 1년, 매월 납입금이 12회 이상이어야 하고 소득과 자산기준 등도 따진다.
같은 공공택지여도 민간 건설사가 공급하는 아파트는 월납입 기준 없이 지역별·면적별 예치금 이상이면 가능하고 소득 및 자산기준 등을 따지지 않는 것에 비해 까다로운 조건이 적용되는 것이다.
과거 청약통장을 주택종합저축으로 전환하지 않았다면 공공주택은 청약저축 가입자만 가능하고, 청약예·부금 가입자는 청약이 불가하다.
공공주택은 민영주택에 비해 신혼부부 등 특별공급 물량도 많다.
이 때문에 신도시 민영 아파트 분양을 기다리던 청약 대기자들은 공공주택으로 청약자격이 바뀌면 당첨 가능성이 낮아지는 게 아니냐며 불안해하고 있다.
경기도 하남에 거주하는 한 직장인은 "하남 교산이나 남양주 왕숙신도시에 분양될 민영아파트 분양을 기다리고 있는데 공공주택으로 바뀌면 1순위 자격이나 경쟁에서 밀릴 수 있고, 소득·자산 기준도 따질 텐데 청약이 가능할지 난감하다"며 "청약 전략을 수정해야 하는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청약 대기자들은 당초 민간 분양 주택용지에 배정됐던 전용 85㎡ 초과 중대형 아파트 물량이 그대로 민참사업으로 공급될지, 분양 대신 임대 전환 물량이 늘어나는 게 아닌지도 우려한다.
국토부는 구체적인 공급 유형(분양·임대) 및 물량을 비롯해 분양(청약) 대상까지 연내 LH 개혁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발표하겠다는 입장이다. 청약 제도 전반에 걸친 제도 개선도 예고했다.
국토부는 이날 배표한 설명자료에서 "LH 직접시행 전환은 새로운 방식인 만큼, 청약 등 관련 제도 개편과 병행해 시행할 계획"이라며 "현재 가동 중인 LH 개혁위원회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종합적인 제도 개편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직접 시행 물량은 민영주택 대기자들이 청약할 수 있는 방안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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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양가 딜레마…건설업계는 "적정 공사비 보장돼야 참여"
부동산 업계에서는 LH 직접 시행 사업의 성패를 가를 변수 중 하나로 분양가와 적정 공사비를 꼽는다.
정부는 LH 직접 시행의 긍정효과 중 하나로 분양가 인하 효과를 기대한다.
그동안 공공주택이나 공공택지내 민영주택 모두 기본형 건축비가 정해진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됐지만 민간은 택지비가 감정가로 공급돼 LH 공공주택(조성원가)보다 높고, 건설사들의 택지비 기간 이자나 연체료 등의 가산비도 분양가에 추가됐다.
자재도 LH는 저렴한 관급자재를 사용하지만 민간은 사급자재를 사용해 분양가 인상 요인이 된다.
심지어 LH는 공공성 때문에 공공주택의 분양가를 상한제 금액의 80∼90% 수준으로 낮게 책정해왔다. 같은 공공택지에서도 공공주택과 민영주택의 분양가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나 앞으로 민간 물량이 LH 직접 시행으로 전환되면 민간의 이윤과 택지비 기간이자 등 가산비가 감소해 종전보다 분양가를 낮출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반론도 있다.
LH 민참사업은 통상 분양주택의 경우 LH와 민간 건설사가 분양수익을 나눠 갖는 이익 공유형으로, 임대주택의 경우 건설사가 공사비만 받는 단순 도급형으로 진행되고 있다.
건설사 입장에서도 직접 분양했을 때보다 시행 이익은 줄지만 토지대금을 납부하기 위한 높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 이자 부담이나 미분양 리스크가 없어 나쁠 게 없는 사업이다.
그러나 앞으로 분양가를 종전 민참사업보다 낮추거나, 민간 이익을 줄이고 LH 이익을 높이는 쪽으로 사업구조를 전환하면 건설사의 참여율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기존 LH 민참사업 물량을 제외하고도 추가로 도급 물량이 크게 늘어나는 것인데 적정 공사비와 이윤이 보장되지 않으면 참여 건설사가 많지 않아 사업이 장기간 표류할 수도 있다"며 "정부 계획대로 공급 촉진하려면 민간의 적정 이익도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분양가가 떨어진다고 장담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LH 재무구조도 고려 대상이다.
LH는 그동안 민간 택지분양에서 얻은 수입으로 공공임대와 공공분양주택 건설 적자를 메우는 '교차보전'을 해왔다. 그럼에도 오랜 기간 적자에 시달렸다.
LH의 2025∼2029년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에 따르면 올해 부채가 170조원에 달하고, 2027년에는 219조5천311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런데 앞으로 택지분양을 중단하면 LH는 주요 수입을 민참사업을 통한 시행 이익에 의존해야 하고, 막대한 재정투입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정부 재정투입을 줄이려면 결국 공공주택의 분양가를 올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도 국무회의 자리에서 공공택지내 건설사의 수익과 함께 수분양자의 '로또 분양' 문제점을 언급한 바 있다. 시장에서 채권입찰제 도입 가능성이 거론되는 이유다.
주택업계의 한 관계자는 "공공주택의 분양가를 크게 높일 수 없다면 계약자의 분양 이익을 환수하기 위해 과거 판교신도시처럼 막대한 시세차익이 예상되는 곳에 채권입찰제를 도입해 채권으로 LH 손실을 일부 보전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이 경우 분양계약자들은 실질 분양가가 오르면서 반발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중소 건설사들은 공공택지 분양 사업이 사라지면서 생존을 걱정하고 있다. 그간 민참사업은 공모방식으로 진행되며 10대 건설사를 비롯해 중대형 건설사들이 독식해왔기 때문이다.
LH가 최근 5년간 민간에 공급해온 공동주택용지 물량은 연평균 4만호에 달하는데 다수는 중소 건설사들이 매입했다.
대한주택건설협회 관계자는 "민참사업 공모에서 가점을 받기 위해 중소건설사를 끼워넣기도 하지만 지분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며 "중소건설사가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