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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시립미술관 조감도. 춘천시 제공
춘천시의 핵심 역점사업들이 강원특별자치도의 예산 심사에서 잇달아 반려되거나 전액 삭감되면서 두 기관 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 도청 신청사 이전을 둘러싼 행정복합타운 논란과 맞물리면서 단순한 행정적 이견을 넘어 지역 발전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시립미술관 건립 '빨간불'...작품 64점 vs 100점 논쟁
7일 춘천시에 따르면 지역 예술계의 오랜 숙원사업인 시립미술관 건립이 강원도의 '공립 미술관 설립 타당성 사전 평가'에서 반려 통보를 받았다.
강원도는 미술관 등록요건 미충족을 주요 사유로 제시했다. 현행법상 미술관 등록에는 작품 100점 이상을 갖춰야 하지만 춘천시는 64점에 그친다는 것이다. 또한 기본계획서에 설립 규모의 인구 대비 적정성 검토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개관 시점 요건 적용은 왜곡된 해석"
이에 대해 춘천시는 강하게 반발했다. 시 관계자는 "개관 시점 요건을 사전 평가에 적용한 것은 왜곡된 해석"이라며 "미술관 건물조차 없는 상태에서 작품을 먼저 확보하라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춘천시는 현재 보유한 64점이 2종 미술관 등록요건(60점 이상)을 이미 충족하며, 개관 예정인 2029년까지 1종 미술관 요건인 100점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충주시립미술관이 23점만으로 사전 평가를 통과한 전례를 들며 형평성 논란을 제기했다. 시는 "도가 지적한 규모 검토 미기재 부분도 용역 보고서에 포함돼 있다"며 "이른 시일 내 재신청하겠다"고 밝혔다.
호수지방정원 도비 지원 '0원'...다른 시군은 배정
강원도는 춘천시의 또 다른 역점사업인 '호수지방정원 조성 사업'의 내년도 도비 지원 예산도 전액 삭감했다.
호수지방정원은 2023년 강원도 공모를 통해 선정돼 그동안 도비 지원을 받아왔던 사업이다. 시는 내년 사업비로 도비 14억6천300만원을 신청했으나, 내년도 보조사업비 통보에서 해당 사업비가 '0원'으로 책정됐다.
춘천시는 같은 공모에 선정된 인제군(10억원), 양구군(15억원), 강릉시(10억원) 등은 도비가 배정됐다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강원도 관계자는 "부지 관련 절차 등이 이뤄지지 않아 검토가 더 필요하다"며 "행정 절차 등이 제대로 이뤄지면 다시 검토해 추경 예산 때 반영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배경에 깔린 행정복합타운 갈등
이런 가운데 지역사회 일각에서는 최근 강원도와 춘천시가 도청사 이전 협의에서 행정복합타운을 두고 빚어진 갈등이 이번 예산 삭감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을 제기하고 있다.
강원도는 내년 상반기 춘천시 동내면 고은리에 신청사 착공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강원개발공사가 함께 추진하는 행정복합타운 개발사업을 춘천시가 반려하면서 양측이 정면 충돌했다.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지난달 "행정복합타운 사업 없이는 도청 신청사 건립도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도는 행정복합타운이 신청사 건립의 필수 전제조건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육동한 춘천시장은 "신청사 건설은 이미 시설결정과 실시계획 인가가 완료됐다"며 "행정복합타운은 별개 사안으로 보완 후 재접수가 가능하다"고 맞섰다.
시는 지난 9월 행정복합타운 개발 제안서를 반려하면서 △원도심 공동화 대책 미흡 △재원조달 불안정성 △기반시설 적합성 부족 등을 사유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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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소재 실용화센터가 들어설 예정인 춘천 상중도. 춘천시 제공
전문가들 "정치 논리에 지역 발전 발목 잡혀"
일각에서는 이번 갈등의 배경에 강원지사와 춘천시장의 정당이 다른 점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잃고 있다.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국민의힘 소속으로 2022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됐고, 육동한 춘천시장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두 사람은 같은 선거에서 여야 대결 구도로 각자의 자리에 올랐다.
지역정치권 관계자는 "광역과 기초 단체장의 정당이 다를 경우 예산과 정책 협의 과정에서 불필요한 마찰이 생기기 쉽다"며 "하지만 지역 발전을 위해서는 정당 논리를 넘어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강원도의회도 지난달 김진태 도지사와 육동한 시장 간 갈등 해소를 위한 협의체 구성을 제안한 바 있다. 여야가 함께 참여하는 중립적 협의 기구를 통해 정치적 이견을 넘어서자는 취지다.
"지역 발전에 여야가 어디 있나"
한 지방행정 전문가는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지방정부 차원에서는 정당색을 최대한 배제하고 실용적으로 협력하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도 지역 현안만큼은 초당적으로 접근하는 성숙한 정치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춘천시의회 한 의원은 "시립미술관이나 호수정원은 특정 정당의 사업이 아니라 시민 모두를 위한 사업"이라며 "정치적 계산보다는 사업의 타당성으로만 평가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강원도와 춘천시의 갈등 해소를 위해서는 정당 논리를 넘어선 실용적 협력이 절실하다. 도민과 시민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고, 행정적 합리성에 기반한 소통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