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 한 마리가 메리골드에서 꽃가루를 묻히며 꿀을 찾고 있다. 이재순 제공
생명이 생명을 살리는 순환의 현장인 나비가 꽃에서 수분매개활동을 하는 장면. 이재순 제공
꽃잎 위에 앉은 벌이 가느다란 다리로 노란 꽃가루를 묻히며 꿀을 찾고 있다. 바로 옆 꽃에서는 나비가 긴 주둥이를 깊숙이 넣어 꿀을 빨아 올린다. 수천 년간 이어져 온 완벽한 공생의 순간. 하지만 이 평범해 보이는 장면이 오늘날 우리 도시에서는 점점 보기 드문 풍경이 되어가고 있다.
최근 경기정원문화박람회에서 국립수목원이 공개한 '폴리네이터 정원'은 바로 이 잃어버린 장면들을 되찾기 위한 초대장이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뒤덮인 도시에서 갈 곳을 잃은 벌과 나비들. 그들을 다시 우리 곁으로 불러들이는 일이 왜 중요한지, 사진 속 그들의 분주한 날갯짓이 말해주고 있다.
2025 경기정원문화박람회에서 국립수목원이 공개한 '폴리네이터 정원'
사라진 윙윙거림의 의미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봄날 정원에서 들리던 벌의 윙윙거림은 너무나 당연한 배경음이었다. 나비가 꽃에서 꽃으로 날아다니는 모습은 평범한 일상의 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도시에서 이 작은 생명들을 만나기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도시개발은 그들의 서식지를 앗아갔다. 끝없이 펼쳐지던 들판은 아스팔트로 덮였고, 다양한 야생화가 피어나던 공터는 단일 수종의 조경수로 채워진 공원으로 변했다. 농약과 살충제의 무분별한 사용은 그나마 남아있던 개체 수마저 급격히 감소시켰다. 기후변화는 이들의 생활사와 식물의 개화 시기를 어긋나게 만들었다.
수분매개체들의 감소가 왜 문제일까? 답은 우리 식탁에 있다. 전 세계 식용작물의 약 75%가 수분매개체에 의존한다. 사과, 배, 딸기, 호박, 수박은 물론이고 커피와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까지, 우리가 즐기는 수많은 먹거리가 이 작은 생명체들의 노동으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경제적 가치만으로 그들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것은 충분치 않다. 수분매개체는 생태계 전체를 떠받치는 핵심 기둥이다. 그들이 매개하는 식물들은 다른 곤충의 먹이가 되고, 그 곤충들은 다시 새와 소형 포유류의 먹이사슬을 구성한다. 하나의 종이 사라지면 그와 연결된 수십, 수백 개의 생명 고리가 흔들린다.
평택시 농업생태원의 폴리네이터 정원(Pollinator Garden).
정원이라는 피난처
'폴리네이터 정원(Pollinator Garden)'은 단순한 전시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복원하려는 시도이자,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실험실이다. 국립수목원이 제시하는 이 정원은 자생식물과 밀원식물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계절마다 수분매개체들이 찾아올 수 있는 먹이와 서식처를 제공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정원이 거창한 규모일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아파트 베란다의 작은 화분, 주택 마당의 조그만 화단, 학교와 회사 건물 옥상의 자투리 공간도 충분히 수분매개체의 쉼터가 될 수 있다. 토종 야생화 몇 그루, 허브 식물 몇 포기만으로도 우리는 그들을 위한 '징검다리'를 놓을 수 있다.
폴리네이터 정원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가꿈'의 방식을 바꾸는 일이다. 완벽하게 정리된 잔디밭 대신 조금 어수선해 보이더라도 다양한 식물이 자라는 공간을, 해충을 박멸하는 대신 천적과의 균형을 고려하는 관리를, 단일 수종의 대량 식재 대신 계절마다 꽃이 피는 여러 종의 혼식을 선택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것은 우리가 자연과 맺는 관계를 재정의하는 작업이다. 자연은 인간의 필요에 따라 통제하고 관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다. 벌과 나비는 단지 '예쁘게 보이는' 존재가 아니라, 지구 생태계라는 거대한 직조물을 함께 짜나가는 필수적인 실이다.
긴 빨대 모양의 입(주둥이)으로 꽃에서 꿀을 빨아먹고 있는 나비. 이재순 제공
작은 날갯짓의 울림
앞으로 경기정원문화박람회의 폴리네이터 정원을 거닐다 꽃에 앉은 벌과 나비를 만난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잠시 멈춰 서보자. 그 작은 몸체가 꽃가루를 묻히며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 속에서 우리는 생명의 경이로움을 목격할 것이다. 오랫동안 진화해온 완벽한 공생, 그 섬세하고도 강인한 연결고리를 볼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특별한 기술이나 막대한 예산이 아니다. 그저 그들을 위한 공간을 조금 내어주는 것, 우리의 정원과 도시에 다시 그들을 초대하는 것이다. 폴리네이터 정원은 그 첫걸음이 어떤 모습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곤충의 수분매개활동은 식물이 씨앗과 열매를 맺고 번식을 돕는 데 필수적이다. 이재순 제공
갈 곳을 잃은 수분매개체들의 귀환. 그것은 단순히 벌과 나비가 돌아오는 것을 넘어, 우리가 잃어버렸던 자연과의 균형을, 생명에 대한 겸손을, 공존의 지혜를 되찾는 일이다. 그 작은 날갯짓 소리가 다시 울려 퍼질 때, 우리의 도시는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정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