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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 와불. 연합뉴스
'운주사에 내리는 가랑비는 / 가을의 단풍잎으로 구르고 / … / 한 세기가 지나는 것은 구름 하나가 지나는 것 / 부처님들은 또 다른 시간과 공간을 꿈꾼다 / …'
프랑스 소설가로, 2008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장 마리 르 클레지오(1940∼ )가 2001년 전라남도 화순 운주사를 방문한 뒤 지은 시의 일부이다.
◇ 푸른 눈의 예술가들이 반한 한국의 미
독일 사진작가이자 조각가인 요헨 힐트만(1935∼)은 "현대의 어떤 예술도 그만큼 나를 감동시키지 못했다"며 운주사 천불천탑에 대한 소감을 밝힌 바 있다.
전남대학교 교환 교수로 와 한국 문화를 깊이 연구했던 그는 독일에서 운주사를 주제로 한 사진전을 열고 '미륵, 한국의 성스러운 돌들'이라는 책을 펴냈다.
그의 저작은 1997년 한국에서 '미륵―운주사 천불천탑의 용화세계'(학고재)라는 제목으로 출판됐다.
천불천탑은 운주사의 수많은 석불과 석탑을 지칭한다.
운주사에는 고려 시대에 조성돼 1천년 가까운 세월을 견뎌온 석불 100여기, 석탑 20여기가 남아있다.
머리나 몸체만 남은 불상을 합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난다.
석불상은 높이 10m에 이르는 거불에서부터 수십 ㎝의 소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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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부처와 돌탑은 해발 100m 정도의 야산 골짜기와 등성이에 흩어져 있으면서, 몇 개의 무리로 집단 배치돼 있기도 하다.
이 석불석탑군은 원래 200기 이상, 어쩌면 수백기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되나 오랜 세월 지나는 동안 부서지거나 유실되고 도난당해 지금에 이른다.
그 옛날 운주사에 실제로 천개의 불상과 천개의 석불이 존재했던 것은 아닐까.
운주사에 얽힌 전설은 그런 상상을 자극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는 천불천탑의 '천'(千)은 '많음'을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더 이상 채울 수 없이 가득하다'는 의미다.
벽안의 예술가들은 운주사에서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천불천탑은 여느 사찰의 석탑, 부처님상과 다르다. 전형적인 불상·불탑 형식에서 벗어나며, 소박하고 거칠다.
불상은 평면적이고 토속적인 얼굴에다, 돌기둥처럼 길쭉한 몸통, 어색하고 균형 잡히지 않은 팔과 손을 하고 있다.
혹자는 못난이 부처님이라고까지 부른다.
불상은 입불, 좌불, 마애불, 쌍배불좌상, 와불 등으로 다채롭다. 탑은 네모반듯한 모양, 원반형, 원구형, 모전(벽돌처럼 쌓은 탑) 계열, 석주형이며 3층, 5층, 7층, 9층으로 다양하다.
탑신에는 한국 전통 탑에서는 보기 드문 마름모(◇), 교차선(×), 사절선(< >), 수직선(∥) 등의 기하학적 무늬가 새겨져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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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중에서 제일 초라한 오층무소유탑은 속칭 '거지탑'이라고 일컬어진다.
몸체 곳곳이 부서지고 일부러 못생긴 석재들만 모아놓은 듯 볼품없다.
탑은 부처를 상징한다. 성스럽고 근엄한 부처님보다는 보잘것없는 중생이나 살림살이가 넉넉지 못한 서민을 떠올리는 이 탑은 관람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이 탑 아래 주저앉아 몇 시간이고 명상에 잠기는 방문객도 있다고 운주사 주지 무안 스님은 전했다.
르 클레지오나 힐트만은 투박한 천불천탑에서 어질고 순한 한국인의 얼굴이나 토속미, 나아가 보편적인 사람의 온기나 냄새를 느꼈던 것일까.
◇ 풀리지 않은 천불천탑 미스터리
천불천탑을 누가, 왜 만들었나. 여러 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흥미로운 학설이 다각도로 제기됐지만 그 존재 이유에 관해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운주사 창건이나 석탑석불군 조성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전형에서 벗어난 수많은 돌탑과 돌부처가 무슨 이유로 이곳에 있는지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불가사의한 천불천탑 중에서 첫 번째로 꼽히는 미스터리는 와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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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명칭은 와형석조여래불이다. 불상이 새겨진 바위는 누워 있지만, 이 바위에는 서 있는 부처와 앉아 있는 부처가 조각돼 있다.
좌불이나 입불이 누워 있는 와형 불상은 세계에 유례가 없다. 두 불상은 약 12m, 10m 크기이다.
이 와불은 큰 바위에 새겨진 뒤 일으켜 세워지려 한 것 아닌가 추측되고 있다.
200t이나 되는 바위 본체에서 불상을 떼어내기 위해 결을 따라 바위를 깨뜨리려 한 흔적이 실제로 남아 있다.
옛 설화는 와불의 신비를 더한다.
신라말 도선국사는 하루에 천불천탑을 세우면 새 세상이 도래한다는 계시를 실현하기 위해, 석공을 총동원해 불사를 벌였는데 철없는 동자승이 새벽닭 우는 소리를 내는 바람에 1천번째 불상을 세우지 못했으며, 그때 세우지 못한 불상이 이 와불이라는 것이다.
와불의 수수께끼는 칠성바위의 경이로 이어진다.
운주사 서쪽 산 중턱에 지름 2∼4m의 대형 석재 원반 7개가 북두칠성 모양으로 배치돼 있다.
원반들의 크기는 북두칠성을 구성하는 일곱 개 별의 밝기에 정확하게 비례한다.
이 때문에 칠성바위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별 등급 데이터로, 귀중한 천문학 관련 인류 유산으로 평가된다.
칠성바위를 기준으로 할 때 북극성의 자리에 해당하는 곳에 와불이 누워있다. 이런 배치는 북두칠성에 의지해 복을 기원하는 칠성 신앙과 천문의 표현이 천불천탑이라는 분석을 낳았다.
운주사 방문객은 연간 30만명가량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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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스테이 관에서 하룻밤 묵는다면 밤하늘을 올려다볼 일이다.
도시의 빛 공해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리라.
한반도에서도 이처럼 무수한 별을 관측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설탕 가루를 뿌려놓은 듯 촘촘하게 박힌 별들이 놀랍다.
이곳에 칠성바위가 놓인 것이 우연이 아닌 듯싶다.
천불천탑은 그 모양이 같은 것이 하나도 없지만 특히 석조불감, 발우탑, 원형다층석탑은 색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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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석조불감 안에는 두 돌부처가 벽을 사이에 두고 등을 대고 앉아 있다.
불감은 불상을 모셔두는 작은 감실이다. 대부분 실내에 설치된다.
돌로 만들어진 거대한 야외 불감은 달리 유례가 없다.
떡시루를 겹쳐 쌓은 듯한 모양의 원구형 석탑은 발우탑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7층이었으나 위쪽의 돌 3개가 떨어져 나가 현재 4층이다. '발우'는 절에서 스님들이 사용하는 밥그릇을 말한다.
양산 통도사에 1개 층으로 된 발우탑이 있지만 여러 층으로 된 발우탑은 드물다. 기단, 몸체, 옥개석이 모두 원형인 원형다층석탑도 한국에서 유일하다.
석불석탑군의 다양성 및 조형성, 특이한 공간 구성 등으로 인해 운주사는 개별 불상이나 석탑이 문화재로 관리되고 있을 뿐 아니라 사찰 일원이 사적으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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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불감, 원형다층석탑과 절 입구에 높이 선 구층석탑은 국가유산 보물이다.
운주사에 들어서면 절집이 아니라 큰 야외 조각공원을 찾아온 듯한 착각이 든다.
천불천탑은 한국에서는 물론 다른 불교 전래국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불교 문화재로 평가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 더 좋은 세상을 염원하는 석불 제작은 계속된다
천불천탑에는 모든 사람이 잘 사는 이상향의 도래를 염원하는 간절한 소망이 서려 있다고 여겨진다.
매년 운주사에서는 이 꿈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축제가 열리고, 축제 참가자들은 그 희망을 담아 석불 한 구를 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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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의 축제에서 제작된 불상들이 운주사 입구에 전시돼 있었다.
민초의 얼굴을 한 부처님들이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된 예는 여럿이다.
송기숙의 소설 '녹두장군'과 황석영의 '장길산'에서 천민들이 새로운 세상을 열려 한 혁명의 성지로 운주사가 등장한다.
"세상의 모든 천민이여 모여라. 모여서 천불천탑을 세우자." 신분제 철폐를 꿈꾸던 의적을 주인공으로 삼은 대하소설 '장길산'의 마지막 장인 '운주 미륵'에 나오는 구절이다.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 달고 돌아왔다'로 시작하는 정호승의 시 '풍경 달다'는 널리 애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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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에 쓴 정호승 시인의 시 '풍경 달다'. 연합뉴스
◇ 천태산과 나주호
1530년에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운주사는 천불산 속에 있는데 절의 좌우 산허리에 석불석탑이 1천개씩 있으며, 석실이 있어 두 석불이 등을 마주 대하고 앉아 있다'라고 쓰여 있다.
천불산이라는 이름의 산은 현재 없다.
천불산으로 지목되는 천태산에 올랐다. 무등산이 뻗어 내린 줄기인 천태산 자락은 운주사가 있는 산등성이로 이어진다.
천태산 정상에는 해발 510m라고 표시된 정상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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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산 동쪽 기슭에 천년고찰인 개천사가 있어 이 봉우리는 천태봉 혹은 개천봉으로 불린다는 설명이 정상석 뒷면에 쓰여 있었다.
개천사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길 중간에는 천연기념물인 '화순 개천사 비자나무숲'이 있었다.
이 숲에는 1천 그루 이상의 비자나무가 자라는 것으로 조사됐다.
나무들의 수령은 대체로 100∼300년이고, 가장 오래된 나무의 나이는 450년으로 추정됐다.
비자나무숲은 뛰어난 풍광과 치유 효과로 인해 현대인의 안식처로 주목받는다.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비자나무숲은 개천사, 백양사(장성), 금탑사(고흥) 사찰림과 제주도 평대리 비자림, 해남 녹우당 비자나무숲이다.
제주도를 제외하면 모두 전남에 있다.
화순에서는 중국 적벽 못지않게 아름답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화순적벽,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고인돌 유적지가 손꼽히는 여행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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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멍'(넋 놓고 물 바라보기)을 좋아하는 여행객이라면 운주사에서 자동차로 10여분 걸리는 거리에 있는 나주호 탐방을 빼놓으면 서운할 것 같다.
고요한 숲과 잔물결이 찰랑이는 호수 사이에 난 둘레길은 올해 여름 개통된 '신상'(신상품)이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