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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비행기가 왔어요" 연합뉴스

"한국에서 비행기가 왔습니다."

최근 이바라키 공항에 도착했을 때 들었던 이 말은 지역 분위기를 확연히 보여줬다.

공항 테라스에는 한국발 항공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무전기로 기체의 진입 방향을 주고받는 항공 마니아들까지 눈에 띄었다.

에어로케이 항공기가 착륙하자 이들은 스마트폰을 꺼내 촬영했고, 조종석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도 보였다.

세계 여러 공항을 다녀본 기자였지만 조종사의 얼굴을 정면에서 또렷하게 본 곳은 이바라키 공항이 처음이었다.

입국 수속은 순식간이었다.

작은 시골 공항을 연상시킬 만큼 규모가 작았고, 국제선 승객은 한국에서 온 에어로케이가 유일했다.

관광 안내 부스에서 3번 승강장에서 도쿄행 버스를 타라는 안내를 받고 버스에 올라탔다.

이바라키에서 소비한 돈은 버스비와 편의점에서 쓴 간식비가 전부였지만, 버스에 20명 가까운 승객이 함께 오르는 모습에서 국제선 한 편이 지역 교통망을 어떻게 살려내는지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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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행 리무진 버스. 연합뉴스

일본 국토교통성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한·일 전체 항공 운항 편수는 코로나 이전의 90%까지 회복했지만, 지방 공항은 70%를 넘기지 못하고 있다.

이 회복을 견인하는 주력은 한국 저비용항공사(LCC)다.

이바라키를 비롯해 도쿠시마·구마모토·오이타 등 지방 중소 공항들은 국제선 재개의 절반 이상을 한국 노선에서 끌어올리고 있다.

최근 일본 전국지사회 소속 지사·부지사 10명이 한국을 찾아 "일본 소도시로 와 달라"고 호소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도쿠시마현 지사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한국 관광객이 10배 늘었다"고 밝혔다.

이 흐름의 배경에는 장기화한 엔저가 있다.

엔화가 900원대 초반대에서 1천원대 초반에 머물며 일본 여행의 체감 비용이 크게 낮아졌고, 특히 지방 도시는 도쿄·오사카보다 물가 부담이 적어 '가성비 여행지'로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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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전기까지 동원해 항공기 착륙 모습 살피는 일본 항공마니아. 연합뉴스

엔저가 수요를 만들고, LCC가 공급을 확장하며, 지방 공항과 상권이 회복되는 구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있다.

이 변화는 일본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부산을 기반으로 일본 소도시 네트워크를 넓혀온 에어부산은 2017년 오이타를 시작으로 가고시마·미야자키·구마모토·도야마에 부정기편을 띄우며 접근성을 높였다.

특히 부산-마쓰야마 정기편은 최근 2년간 14만 명이 이용하며 평균 탑승률 80% 중반대를 기록해 안정적인 노선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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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슈이치 나가노현 지사가 지난 1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다음 여행은 일본 소도시로' 공동 설명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주 7회로 증편된 데 이어, 나가사키에도 첫 부정기편을 띄워 90%대 탑승률을 기록하며 내년 3월까지 운항을 늘렸다.

마쓰야마의 도고 온천, 마쓰야마성, 나가사키의 하우스텐보스와 온천 지대 등은 짧은 비행시간에 일본 특유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근거리 소도시 여행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에서 출발하는 LCC 한 편이 일본 지방 도시의 숙박·식음·교통망을 다시 움직이는 동력이 되는 셈이다.

전국지사회 소속 지사들을 수행 취재한 도치기 지역 신문 기자의 "이바라키현과 인접한 도치기현에서도 이바라키현의 국제선 취항에 무척이나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연합뉴스